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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녹취

유다서 1장 17~25절

“주 앞에 흠 없이 설 수 있는 자가 되자”

00:00 – 01:47

무더운 날씨에 이 자리에 오신 여러분, 말씀으로 놀라운 축복이 여러분에게 임하기를 축원합니다.

오늘의 본문말씀이 있는 이 유다서는 한 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본서의 저자는 예수님의 동생 유다입니다.

유다라는 이름의 뜻은 '찬송'이라는 뜻인데 동명이인이 참 많습니다.

동명이인이 많은 중에 예수님의 동생 유다가 AD70년에서부터 80년 사이에 기록했다라고도 합니다.

또 연대를 조금 다르게 말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이 소아시아 지역, 수리아 지역에 흩어져 있는 성도들에게 부탁한 말씀입니다.

이들은 이방인이 아니에요. 십자가 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여러 지역에 흩어져서 고난을 받고 있는 자들에게 유다가 편지를 써 보낸 내용입니다.

본문에 마지막 때라고 하는 말씀을 보면 그 지역, 그 시대에 해당되는 말씀이라기보다도 세상 끝날에 주님 맞이할 자들에게 필요하고 해당되는 말씀인 줄로 믿습니다.

01:47 – 03:21

바로 여러분들에게 이 말씀이 해당되는 줄로 믿습니다.

마지막 때가 왔으니 이 말씀을 우리는 마음에 새기며 살펴봐야 될 줄로 압니다.

1절에서 16절까지 보면 주님 오실 때 (성도들에게) 거짓 선지자들을 경계하라고 부탁을 했고, 17절에서 23절까지는 사탄의 세력들이 은밀하게 교회에 침투하고 성도들에게 접근하여 거짓으로 미혹을 하고 넘어지게 할 때에 성도들이 잘 이겨 나가도록 부탁한 말씀이 있습니다.

이 거짓 선지자들이 혼란을 일으키면 말씀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성도들은 흔들릴 수가 있고 넘어질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24절, 25절에는 성령으로 끝을 맺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제가 봉독해 드린 17절 이하의 모든 말씀 중에는 사도들이 미리 말한 말씀을 기억하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사도들이 미리 말한 말을 기억하라고 하는 것은 잊지말라고 부탁한 말씀입니다.

오늘 여러분들에게 이 말씀이 해당되는 줄 압니다.

03:21 – 05:05

'에스카프 크로론' 이런 마지막 때가 올 때에 경건치 아니한 자들이, 신앙에 굳게 서지 아니한 자들이 자기 정욕대로 행하고 또 '기롱'하는 일이 있을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제 한문 성경에는 '나무랄 기', '조롱할 롱' 이렇게 기록이 돼 있습니다.

원어는 '엠파이타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쓸데없는 말, 실없는 말, 조롱, 희롱 그리고 농락을 잘 쏟아내는 자들을 경계하라는 의미입니다.

이런 자들이 나타나서 성도를 미혹할 때에 절대 넘어져서는 안 된다고 부탁했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로 11절 한 절에 세 사람의 이름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가인 같은 사람이 일어난다고 그랬습니다. 하나님 앞에 진실하게 제사 드리는 아우를 죽인 가인, 예배를 훼방하며 참 제사를 드리는 자를 못 살게 하는 이런 가인같은 자들이 교회에 들어와서 해방을 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요한1서 3장 12절에 보면 '가인같이 행하지 말아라.

저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그 아우를 죽였느니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05:05 – 06:05

오늘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 이 마지막 때는 육은 죽이지 못해도 영을 죽이는 사탄의 역사가 많다고 했습니다.

둘째는 발람의 교훈을 받아들이는 자가 있다고 그랬습니다.

발람같은 사람이 접근할 때에 잘 이기기를 바랍니다.

물질 때문에 고향 가는 자들을 넘어지게 하고 미혹하고 저주하는 발람 선지자 같은 자가 있을 것이다라고 합니다.

요한계시록 2장 14절에 버가모 교회에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세상 끝날에 물질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진리로부터 탈선되는 자들이 발람의 사상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06:05 – 07:49

베드로후서 2장 15절 16절에 보면, 불의의 삯을 바라고 불의의 재물에 마음을 빼앗겨 나귀에게 책망받은 일이 있습니다.

이 미련한 자들이 마지막 때에 교회에 침투할 것입니다.

그다음에 고라 같은 자가 나타날 것입니다. 이 고라는 출애굽 때 지도자를 원망하고 대적하고 반란을 일으킨 주동자입니다.

이 사람들은 성령도 없고 성령의 체험도 없고 세상적이며 육체적입니다.

자기들끼리 당을 짓고 진리를 대적하고 고집하는 자들이 고라 같은 자들이요, 발람 같은 자들이오, 가인 같은 자들입니다. 이 같은 자들이 마지막에 많이 일어날 것이라 그랬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 어쨌든 여러분들은 말씀에 굳게 서기를 바랍니다.

어떤 자가 오더라도, 어떤 자가 비슷한 소리를 한다 해도 진리가 아니면 용납해서는 안 됩니다.

마지막 때에 진리라고 하는 이 말씀은 생사를 좌우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래서 이 유다서 20절에 보면 '거룩한 믿음 위에 자기를 건축하는 자가 되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07:49 – 09:14

여러분, 집을 짓는 것은 건축한다는 것이지만은 '자기'를 어떻게 건축하는 것입니까?

자기를 어떻게 건축해야 되는 것인가요? 이 건축한다는 것은 '쌓아올리다, 세우다, 집을 짓다'라고 하는 것인데, 신앙으로 말씀의 틀 위에 건축하는 자가 돼야 합니다.

여러분, 이 말씀을 듣고 말씀을 따르고 말씀대로 살고 애쓰는 자들이 건축하는 자들입니다.

오늘도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집을 찾아온 것은 주님 맞이할 수 있는 집을 짓기 위해서 이 자리에 온 줄로 압니다.

여러분, 믿음은 금보다 귀하다고 그랬습니다. 말씀으로 다져진 믿음과 신앙 위에 주님 맞이할 집을 지어야 합니다.

여러분, 정말로 신앙으로 말씀의 집을 잘 짓는 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마태복음 7장 24절 25절에 보면 예수께서 '내 말을 듣고 지키는 자는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지혜로운 자와 같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은혜 시대 종이 아닙니다.

09:14 – 10:36

예수님께서 은혜 시대가 안 왔는데도 율법의 안식일을 바꿔버렸습니다.

은혜 시대가 온 것 같이 지켰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 아직 신원의 날이 오지 않았지만 신원의 날이 온 것 같이 여러분은 믿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정말로 신앙의 집을 잘 지어야 돼요. 말씀의 집을 잘 지어야 돼요.

은혜 시대 영혼 구원은 '집을 짓는다' 이런 말이 필요가 없습니다.

그저 예수 이름으로 구원받는 것으로 만족하면 됩니다.

정말로 여러분, 유다가 우리에게 참 좋은 말씀을 주었습니다.

그가 예수님의 동생이지만 예수님께 덕을 끼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죽은 다음 부활하시고 그리고 성령 강림할 때 '이거구나 이거구나 이것이 진리구나'라고 깨달으면서 예수님의 말씀을 전파하는 제자가 되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 이 말씀에 확신이 없고 이 말씀을 확 붙들지 못했을지라도 낙심할 이유는 없습니다.

선구자가 못 될지라도 마지막에 역사는 할 수 있을 줄 믿기를 바랍니다.

10:36 – 11:13

그래서 우리는 말씀 위에 말씀 위에 영생할 수 있는 집을 짓는 자가 되어야 환란 날에 주님을 맞이할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은혜 시대 때는 '어떻게 하면 잘 죽는가? 어떻게 해야 내가 편안히 죽어서 주님 맞이할 것인가?' 이것에 꼴똘해 왔습니다.

이것이 은혜 시대의 구원이예요. 은혜 시대는 잘 죽는 것이 복입니다.

11:13 – 12:39

그래서 예수 믿다가 (편안한) 죽음의 복이 있는 자가 참 복이 있다고 그러는데 신원의 날에는 그것이 복이 아닙니다.

신원의 날은 시련과 연단과 어려움이 온다 할지라도 주님 맞이할 수 있다면 영생할 수 있다면 최고의 축복입니다.

이것보다 큰 축복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런데 오늘날 신앙의 체험도 없고 성령의 체험도 없이 그저 교회만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제가 여기서 보면 거의 스파크가 통하는 자들이 많습니다.

제가 이렇게 살펴보면 이 말씀이 전혀 들어가지 않은 자들을 거의 알고 있습니다.

말을 안 할 뿐이지. 왜냐하면 이 말씀이 들어가는 자는 말씀에 집을 짓는 자입니다.

이 말씀이 들어가는 자는 말씀과 연합된 자입니다.

그렇지 않고는(말씀과 연합되지 않고는) 이렇게(말씀의 집을 짓는자가) 될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말씀으로 고라 같은 사람, 가인 같은 사람 그리고 발람 사상을 이기기 위해서

12:39 – 13:53

여러분들은 말씀의 칼을 잘 갈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말씀의 칼을 예리하게 갈지 않으면

그들의 공격을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사망을 삼키는 자입니다.

이건 보통 축복이 아닙니다. 이 말씀이 여러분의 마음에 뿌리 박히기를 바랍니다.

사망을 삼키는 자, 사망을 삼키는 자는 최후에 주님을 맞이할 종들입니다.

주 앞에 설 자들입니다. 그래서 은혜 시대에는 '개떡같이 믿어도 예수만 믿으라'고 하면 끝납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로 끝납니다.

'마음으로 믿고 의로 인정하고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른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로 끝납니다.

그러나 신원의 말씀은 그렇지 않습니다. 시대를 분별할 줄 알아야 됩니다.

시대를 분별하려고 하면 보는 눈이 밝아야 돼요.

듣는 귀가 열려야 됩니다. 그렇지 않고는 그저 (자리에) 앉았다가 일어날 뿐입니다.

제가 항상 말씀드리죠.

13:53 – 15:06

강단에서 내리는 말씀을 그냥 듣고 지나가는 뉴스와 같이 여기면 안 됩니다.

이것이 내 마음에 와닿고 나의 양식이 되어야 하고

이것이 나를 살리는 진리구나. 이것이 나를 그 나라에 인도하는 인도자가 되는구나.

그래서 말씀을 따라가다 보면 안식할 땅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래서 신원의 역사를 위해서는 오늘 본문에 믿음 위에 자기를 건축해야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이게 참 여러분, 막연합니다. 자기를 어떻게 건축하냐라고 물어보십시오.

재료가 뭡니까? 어떤 집을 지어야 됩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말씀으로 여러분이 어떤 풍랑이 일어나도 비방과 방해가 있어도 요동되지 아니하고 흔들리지 아니하는 여러분의 마음에 튼튼한 집을 짓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3장 11절에 보면 '이 터는 예수 그리스도'라 그랬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말씀'입니다. 말씀의 터 위에 집을 지어야죠.

여러분,

15:06 – 16:11

예수를 백날 믿으나 10년 믿으나, 제가 저의 친구에게 "야 성경이 이렇다."고 얘기하니까 (친구는) "너 어쩌면 그렇게 성경을 잘 아니? 나는 장로로서 목사님께서 시키는 대로만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제가 "야 그러면 되니? 목사님 시킨 대로 하는 게 아니라 말씀이 시키는 대로 해라."라고 하니까 "나는 (말씀을) 모르니까 (목사님께서) 시키는 대로 한다"(라고 했습니다.)

제가 "야 너 참 큰일이다." 라고 말하면서 '때가 차매' 책을 친구에게 주니까 "너 글 잘 썼네."라고 합니다.

그래서 저는 그 친구가 말씀 준비하는 줄 알았어요.

도저히 (그 친구는 이 말씀이) 귀에 안 들어와요. 그 친구는 참 아까운 사람이에요.

진실하고 교회에 순종하며 목사님 섬기는데 1등입니다.

오죽했으면 "야 너를 우리 교회에 1년만 좀 빌려달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친구가 "야 장로도 빌려주냐?"라고 해요. 제가 "내가 너희 목사님께 얘기할테니 너를 좀 빌리자"고 하니

그 친구는 "우리 목사님이 안 빌려줄 거야. 빌려줘도 내가 갈 것 같으냐? 우리 교회를 섬기는데."

절대 이 말씀이 그 친구한테 안 들어가더라고요.

16:11 – 17:23

"야 이 말씀이 안 들리냐?"라고 제가 그 친구에게 말하니,

(그 친구는) "그렇게 힘들게 믿을 필요가 있냐? 구원 받았는데."(라고 말했습니다.)

제가 그래서 콧구멍이 둘이니까 숨 쉬지 하나만 있으면 내가 죽었을 거라고 했어요.

그러더니 결국 그 친구는 주님 나라 갔어요. 오늘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들은 건축하는 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정말로 집을 잘 지어야 돼요. 무너지지 않는 집. 말씀의 터 위에 요동되지 아니하는 집을 꼭 짓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성령으로 기도하라' 그랬습니다. 이것은 '성령으로'가 아니라 '성령 안에서'입니다.

'앤푸뉴마'라고 그랬습니다. 성령 안에서. 여러분들은 다른 것을 섞지 마시고 성령 안에서 "주여 오늘도 살아가는 데 주의 도움이 있게 해 주시고 말씀이 나를 지도해 주시고 내가 무슨 일을 하더라도 나는 주님과 함께 일하는 자가 되게 해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아니 유다가 이렇게 우리에게 말씀을 잘해줬어요.

이 한 장이라도 이렇게 우리에게 확실한 말씀을 줬어요.

17:23 – 18:40

은혜 시대에는 집을 짓는다는 말을 안 해요. 그러나 찬송은 잘합니다.

"잘 짓고 잘 짓세. 우리 집 잘 짓세. 세상 모든 사람들 집을 짓는 자니." 세상 모든 사람들이 집을 짓는 사람들이 아니에요.

예수 믿는 모든 자들이 집 짓는 자입니다. 찬송에서 세상 모든 사람들 뭐 하는지 아세요?

집을 짓는다고 하는데, 내가 그거 틀렸다고 했어요. 세상 모든 사람들이 집 짓는 것이 아니라 예수 믿는 모든 자가 집을 짓는 자고, 반석 위에 집을 짓거나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것, 이거 두 가지밖에 없어요.

고층 빌딩이냐 저층 주택이냐 이게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 말씀의 집을 잘 지어야 됩니다.

그래야 마지막 날에 승리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이 유다서 21절에 보면

뭐라 그랬습니까?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기를 지키며 영생에 이르도록' 여러분,

여러분, 지킵니까?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기를 지킵니까?

18:40 – 19:55

여러분, 20절에 보면 '거룩한 믿음 위에 자기를 건축하고', (21절에는) '자기를 지키고' 누가 뭐래도 여러분은 이 신앙을 지켜야 됩니다.

자기를 지키며 영생에 이르도록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려야 합니다.

자신의 신앙의 절개를 지키기가 참 힘들고 어렵습니다.

제가 전에도 이 얘기를 했습니다마는 저 남원 골의

춘향이와 이도령과의 관계를 - 참 역사적인 사건이지만 - 이도령은 주님이고, 술집 기생의 딸 춘향이는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로 비교를 했었습니다.

변사또는 사탄입니다. 사탄이 아무리 방해를 해도 춘향이는 임 향한 일편단심이 흔들릴 줄 몰랐습니다.

결국 춘향이가 기다리던 그 남편을 만나는 것이 '춘향전'에서 해피 엔딩 아닙니까?

오늘 우리가 정말로 정말로 '자기를 지키는 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누가 뭐래도, 어떤 변사또가 와서 우리를 찝쩍거려도 주님을 향한 마음은 흔들릴 수가 없어요.

19:55 – 20:52

세상에 아무리 좋은 소리를 우리에게 하고 기쁘고 즐거운 얘기를 해도 우리는 신앙에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제가 어제 들었는데, 저의 외손주가 대학교 들어간 후 전국 단위의 대회에 출전하여 시험을 쳤는데, 300명 뽑는데 뽑히고 30명 뽑는데 뽑혀 결국 1등을 차지했습니다. 학교에서도 최고로 뽑혀 1학년이 한 학기 휴학하고 회사에 취업을 했어요. "할아버지 내가 월급 탔어요. 대학생이 월급을 탔어요.

빵빵하게 탔으니까 할아버지께 대접할게요"

내가 어린 손주한테 대접받긴 처음이에요.

여러분도 그런 손주가 있기를 바랍니다. 아멘 한 사람은 될 줄로 믿습니다.

20:52 – 22:01

"야 너 그 회사가 어느 회사냐?"라고 제가 물었는데, 그 회사 이름이 어려워서 삼성이나 LG나 이런 거면 금방 외우는데 어떻게 어려운지. 저의 딸보고 "야 너 저기 방송실에 있는 오빠한테 이 회사이름 좀 얘기해 봐라."(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AI 기술이 그렇게 좋아요.

"제가 1학년 1학기를 마치고 300명 뽑는 전국 시험에서 뽑히고 또 30명 뽑는데서 톱이 되었고, 1등으로 뽑힌 사람은 그 회사에서 데리고 간다고 했어요. 3학년에 뽑히는 자가 나올 줄 알았는데 2학년도 아니고 1학년 1학기 공부하고 제가 1등으로 뽑혔습니다. 직원들이 이 학생이 너무 어리지 않습니까?라고 했는데, 사장님이 사장으로서 자기 입에서 나간 말은 거둬들일 수 없고

저보고 자기 회사에 들어와라라고 말했어요. 첫 월급을 2백 몇십만 원 받았으니까 할아버지 마음껏 잡수세요."라고 손주가 말했습니다.

마음껏 먹을 수가 있어야지. 한 번 더 청하면 내가 마음껏 먹겠습니다.

여러분, 세상적으로도 이런데 우리는 하나님 앞에 이런 축복을 놓쳐서는 안 됩니다.

22:01 – 23:10

오늘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 자기를 건축하고 자기를 지키고 나는 일편단심 주님을 향한 마음이에요.

나는 일편단심 오로지 주님의 말씀 뿐입니다. 우리가 잘 알지 않습니까?

이성계의 아들 방원이가 정몽주를 불러다가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혀진들 어떠하리 우리도 이 같이 얽혀서 만 세수를 누리리라"라고 하니까 정몽주가 뭐라고 했습니까?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임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 있으랴"

딱 이 말을 하고 돌아서서 정몽주가 선지교를 갈 때 이방원이 그의 신하를 시켜 정몽주의 목을 칼로 베어버렸습니다.

그리고 그 목을 친 자리 밑에서 피 묻은 대나무가 올라와 그 다리를 '선지교'가 아닌 '선죽교'로 하였습니다. 피 흘린 대나무가 거기서 났다.

이게 전설이에요. 그런 소리가 있었습니다.

23:10 – 24:25

세상 임금에게도 그렇게 하는데 우리는 만왕의 왕, 만왕의 임금 되신 예수 그리스도 앞에 일편단심이 변할 수 있겠습니까?

자기를 지켜야 돼요. 여기서도 히히덕거리고 저기서도 히히덕거리고.

절대적으로 안 됩니다. 우리는 임 향한 일편단심 변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요동치지 않는 신앙. 자기를 지킨다는 것은 영생에 이르도록 기다려야 되는 것입니다. 여기 영생은 영혼 구원이 아니에요.

여기 영생은 영혼 구원이 아닙니다. 영육 구원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 얻어지는 영육 구원이에요.

이 구원을 여러분이 받기를 축원합니다. 이 구원의 축복을 우리는 누려야 될 줄 압니다.

여러분, 이 유다가 이 성경을 기록하기 전에

얼마나 많은 기독교인들이 죽은 줄 아십니까? 역사를 보면

AD 54년에서 68년 그 네로 황제의 박해 때 수천 명이 십자가에 처형되었어요.

수천 명이 십자가 처형을 당했어요.

24:25 – 25:47

AD81년에서 96년 그 사이 도미시안 황제 때 4만 명이 넘게 처형을 당했습니다. 몇 명이요? 4만 명이에요.

여러분, 그때 쏟아진 그들의 핏값을 신원의 종들이 갚아야 합니다.

그때 사도 요한이 밧모섬으로 귀양살이 가서 계시록을 받았고

그때 예수님의 제자들이 거의 다 처형되고 베드로도 그때 처형이 되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 그런 처형이 지금 여기서 모지리 일어난다고 하면 여러분은 "주여 내 순번이 왔습니다.

나를 처형해 주십시오."라고 하실 수 있을까요? 저 자신도 머뭇거릴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이들은 용감하게 처형을. 아니 여러분, 도미시안 황제 때 4만 명이 처형되었을 때

여러분들이 그 앞에 서 있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들은) 다 깨끗이 처형을 당했습니다. 그래서 마지막 역사는 '신원'입니다.

(이 말씀은) 복수해 주는 역사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그 사람들보다도 못해야 되겠습니까?

25:47 – 26:50

우리는 신원의 종들이기 때문에 - 그들(십자가에 처형을 당한자들)은 사망을 삼키지 못한 종들이지만 마지막 신원의 종들은 사망을 삼키는 종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누구보다도 신앙을 강하게 가져야 하고, 누구보다도 요동하지 않은 신앙을 가져야 해요.

이 영육 구원을 얻고자 하는 자는 -여기 말씀에 - 우리가 영생에 이르도록 주님께로부터 이 축복을 받기 위해서 이 말씀을 붙들고 기다려야 합니다.

맹목적으로 무작정 기다리는 게 아닙니다. 말씀을 준비하고 기다려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2장 2절에 보면 구원을 이루기 위하여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이 기다리는 구원은 참 힘듭니다. 참 힘듭니다.

여러분, 한 사람이 어디 갔다 올 때 "여기 잠깐 있어. 내가 갔다 올게."라고 한다면

한번 기다려 보십시오.

기다리는 사람은 갔다 오는 사람보다 몇 배로 지루하고 힘듭니다.

'기다리라' 그랬습니다. 기다리라. 기다리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26:50 – 28:03

속이 상해도 지치고 피곤해도 인간들에게 부딪히는 일들이 많아도 사람과 사람끼리 어려움이 많아도 우리는 기다리는 신앙을 많이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은 준비하면서 믿지 않은 자들을 그리스도 앞으로 인도해야 합니다.

진리의 말씀을 붙들지 아니한 자들을 그리스도 앞으로 구출해 내야 하고

(그리스도 앞으로) 끌어냄을 받지 못한 자들은 불심판을 받는다 그랬습니다.

여러분, '육체를 더럽힌 옷이라도 싫어해라' 이 말은

저 사람이 입고 있는 옷이 뭐냐? 어떤 사상을 가지고 있는 옷이냐? 세상의 부귀 영화를 입고 있는 옷이냐? 붉은 용의 가마를 받은 옷이냐? 우리는 구원의 옷과 의의 겉옷을 입은 자 외에는

그 입은 옷까지 싫어할 줄 알아야 합니다. "아 저 사람 입은 옷을 보니깐

말씀의 옷을 안 입은 거야. 말씀의 옷을 안 입은 사람이야."

28:03 – 29:01

그 옷까지라도 싫어해야 된다. 오늘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들은 구원의 옷은 말할 것도 없고 의의 겉옷을 입은 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의의 겉옷을 입은 자가 돼. 이제 주 앞에 서야 되니까요.

우리는 어쨌든지 주님 앞에 서야 돼요. 주님 나라 가야 되기 때문에. 오늘의 본문 유다서에 있는 말씀이 나를 위해서 한 말씀이고, 유다서에 있는 말씀이 나를 격려해 주신 말씀이니 우리는 이겨야 됩니다.

그래서 영광의 주님 앞에 흠이 없도록 즐거워하며 설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신랑이 먼 나라에 가서 몇 년 만에 오는데

부끄러움이 있으면 그 앞에 설 수가 없습니다. 의기양양 자신 있게 서고.

"내가 기다렸습니다. 내가 당신을 지금까지 기다렸습니다."라고 할 때 얼마나 기쁜 지혜가 되겠습니까?

오늘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들은 부끄러움 없이 흠이 없이 주님 앞에 설 수 있는 자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29:01

그래서 영광과 찬양을 주님 앞에 돌리고 성령으로 끝내버렸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 이거는 그냥 한 말이 아닙니다.

그냥 지나가는 말이 아닙니다. 은혜 시대의 말씀이 아닙니다.

반드시 영육 구원에 해당되는 여러분은 누가뭐래도 흔들림이 없는 신앙을 지키는 자가 되시고, 이 신앙을 지키면서 말씀으로 건축하는 건축업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 이런 축복을 우리는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요동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의의 겉옷을 입어야 되기 때문에 세상 옷, 지저분한 옷, 세상 향락과 쾌락의 옷, 붉은 색깔이 들어간 옷, 그 옷까지라도 싫어하는 그런 신앙의 지조가 있는 자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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