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을 불러오는 중

유튜브에서 보기 팟캐스트

영상이 보이지 않으면 「유튜브에서 보기」를 눌러 주세요.

말씀녹취

사도행전 26장 19~23절

“어두운 세상에 구원의 빛을 선전할 자”

00:00 – 01:48

오늘 이 자리에 오신 여러분, 사명에 충성하는 자 되기를 축원합니다.

사도 바울은 율법교회의 중심에 섰던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를 만나기 전에 정말로 잘 나가던 사람이었으나 예수님을 만난 이후에 진리 때문에 천신만고의 시련과 역경을 겪었던 자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어떻게 쓰시기로 예정된지는 그는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사도 바울이 험한 길을 걸어가야 될 것을 아시고 진리를 위해 그를 불러 역사하셨습니다.

이 사도바울이 소아시아를 중심으로 유럽을 넘나들면서 복음을 증거할 때 참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1차 전도여행, 2차 전도여행, 3차 전도여행.

교통 수단도 좋지 않고 열악한 환경을 다 초월하면서 주님께서 말씀하신 그 뜻을 이루기 위해서 그는 고생을 참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한 번도 불평해 본 적이 없고, 한 번도 원망해 본 적이 없는 사도 바울이었습니다.

01:48 – 03:40

이제 마지막 로마로 가기 전에 그는 아그립바 왕이라고 하는 이 통치자 앞에 모든 것을 실토정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강권으로 이 사역을 맡겨주시고 하도록 했기 때문에 내가 진리와 복음 앞에 순종하게 되었다. 내가 자의로 이것을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면서 아그립바 왕에게 사도행전 9장 1절에서 22절까지의 내용을 자세히 말했습니다.

"내가 예수를 믿는 자를 외국에 까지 가서 잡아오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주님이 나를 불러서, 뜻밖의 예수를 핍박하던 내가 예수를 전하는 자로, 예수 믿는 자를 죽이려고 하던 내가 오히려 죽임을 당할 수밖에 없고 핍박을 받을 수밖에 없는 그런 자가 되었습니다.

내가 오늘 이 길을 가게 된 것은 내 개인의 뜻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확실한 진리를 알려주셨기 때문이며 그래서 내가 개종을 했습니다."

바울은 이 말씀에서 확실한 자기 주관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왕은 아그립바 왕 2세인데, 그는 1세의 아들입니다.

03:40 – 05:09

1세는 야고보를 죽이고 베드로를 투옥시켰습니다. 그 왕의 아들이 아그립바입니다.

바울이 예수를 증거할 때부터 바울은 어둠에 속한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에게 극심한 박해를 받았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 우리는 그냥 이렇게 살다가 세상이 끝난다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신원의 날을 위해서 예정하셨다가 불러주신 줄로 믿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우리는 사명을 확실히 가지고 살아가야 됩니다.

여러분들이 출입하고 활동할 때에, 여러분들은 주님께서 맡겨주신 이 길을 갈 수밖에 없다고 하는 것을 확실히 붙들어야 됩니다.

여러분, 은혜 시대의 성도는 그의 사명이 뭔지 몰라도 그저 믿을 만큼 믿다가 살 만큼 살다가 죽으면 끝나는 거예요.

신원(vengeance/伸冤)의 종은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은 우리 동인 교회를 은혜 시대의 교회 같이 생각하면 안됩니다.

사명을 맡은 자들이 모인 곳이 동인 교회입니다.

05:09 – 06:45

여러분, 사도 바울이 아무리 핍박을 받고 대적자들이 그를 대적하고 죽이려고 해도 그가 한 치의 양보 없이 나아간 것은 정말로 진리가 확실하여 양보할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너무나 확실한 말씀이기 때문에. 오늘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 신원(vengeance/伸冤)의 말씀은 정말로 이 시대에 확실한 말씀이기 때문에 우리는 핍박을 받아도 비난을 받아도 사도 바울 같이 신앙 사상을 양보할 수가 없습니다.

지금 신약 말기에 와서 진리가 어두워지고 있습니다.

해가 진 어두움이 아니에요. 종교가 시대에 따라 진리의 말씀을 밝히지 못하면 종교가 어두워진 거예요.

종교가 어두워진 거예요. 어두워졌다라고 할 때는 빛을 요구하게 됩니다.

목마르다라고 할 때는 마실 물을 요구하게 되는 것입니다.

배가 고프면 빵을 요구하죠. 여러분, 어둡고 캄캄한 밤이 이 땅을 엄습할 때에 빛 가진 자만이 그 시대에 활동을 할 수 있고 역사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아그립바 왕에게 당당하게 말하고 있었습니다.

06:45 – 07:09

그는 조금도 기죽지 않았습니다. 이 나라, 이 정부가 어떻게 돌아가든지, 앞으로 그들이 교회 탄압을 하면

여러분들은 확실한 신앙의 용사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신앙의 용사가 되어야 하고 말씀의 선구자가 되아야 합니다. 빛을 가진 자는 어둠이 있을 때에

07:09 – 07:17

필요한 자에게 빛을 발할 수 있습니다. 여기 20절을 보십시오. 사도 바울이

"먼저

07:17 – 07:21

다메섹에와 또 예루살렘에 있는 사람과 유대 온 땅과

07:21 – 08:21

이방인에게까지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는 합당한 일을 하게 하는 사명을 내가 맡았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사도행전 전반부는 베드로 행전이라고 할 수 있지만

후반부는 바울 행전이라고 해도 무방합니다.

쌍두마차로 전반부는 베드로가 역사했고 후반부는 바울이 역사하였습니다.

바울이 역사할 때 베드로도 역사했고, 베드로가 역사할 때 바울도 역사했습니다마는 오늘 본문말씀에서 사도 바울이 그가 그렇게 되리라고 예상 못했을 것으로 보여집니다.

하나님의 예정이었기 때문에 예정한 그 뜻대로 하나님은 바울에게 사명을 맡겨서 그가 율법 교회와 대충돌을 하고 진리의 빛을 밝히는 대사도가 되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 우리는 은혜 시대의 사명자가 아닙니다.

이 교회 저 교회 들락거리는 사명자가 아닙니다. 제가 늘 얘기했죠.

은혜 시대는 영혼이 낙원가는, 죽어 낙원가는 진리의 역사입니다.

08:21 – 09:12

그러나 신원의 역사는 그렇지 않습니다. 영과 육이 구원받는 역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에 와서 앉았다가 일어나는 것이 예배가 아니라 여러분들이 말씀을 먹고 영이 소성하는 것이 신원(vengeance/伸冤)의 예배입니다.

달라요. 달라요. 우리 노회, 고신 총무가 우리 교회에 와서 "야, 동인교회를 보니 예배시간에 조는 사람이 없네. 내가 처음 보는 일이야."라 그랬어요.

그가 여러 교회를 순회해 보았는데 예배시간에 조는 자가 참 많았다고 해요.

그가 우리교회에 와서 보니, "무섭다"고 그래요. "야, 동인교회의 성도는 많지 않은데 예배시간에 조는 사람이 없다."라고 해요.

제가 그랬어요. "졸면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져 있는 거야."

우리가 병아리를 길러보면, 막 해집고 먹는 것은 건강한 병아리이고

양지 쪽에 앉아서 꼬박꼬박 조는 것은 병든 병아리입니다.

양지 쪽에 앉아서 제대로 먹지 못하고 꼬박꼬박 졸고 있으면 주인이 그 병아리를 얼른 방에다 갖다 놓고 그것에게 깨를 먹입니다.

09:12 – 09:58

주인이 다른(건강한) 병아리에게 사료를 먹이지만 이 병아리에게 깨를 먹이면, 이것은 좋은 영양가를 먹어 살아나고 튼튼해집니다. 그러면 주인은 이 병아리를 다른 병아리들이 있는 곳에 넣어줍니다.

그 병아리가 엉덩이로 (다른 병아리들을) 치면서 막 먹이를 먹습니다. 이제 건강하게 됐다는 거죠.

먹는 것이 힘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그것이 여러분들에게 영의 양식이 되고 만족한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회개에 합당한 일을 하라고 했습니다. 회개에 합당한 일, 회개에 합당한 일이 뭡니까?

신앙의 노선을 바로 찾아 행하는 것입니다. 회개에 합당한 일. 사도 바울은 '구원의 빛을 밝힐 때에' - '구원의 빛'이라고 그랬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빛이 구원의 빛이라고 그랬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있는 여러분들은 영과 육의 구원의 빛이 되기를 바랍니다.

마태복음 3장 8절에 세례 요한이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 그랬습니다.

09:58 – 10:47

회개에 합당한 열매가 뭡니까? 말씀 따라 순종하며 살아가는 것, 옛것을 던져버리고 살아가는 것이 회개에 합당한 열매입니다.

사도 바울은 뭐라고 했습니까? "합당한 일을 하라" 그래요.

'합당한 일', 이 말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삶의 방향을 바꾸라는 거예요.

삶의 방향을.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들은 "이 말씀이 삶에 합당한 말씀이구나."라고 느껴지는 분도 많겠지만,

"한번 들어보자. 목사님은 그저 오실 주님을 맞이 해야된다는 그 소리를 또 하고 있구나."

이렇게 말하면서 여기에 앉아 있는 분도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회개에 합당한 일은 삶의 방향을 바꾸고 목적이 바꿔버리는 것이예요.

우리는 살아있지만은 (은혜시대 성도들과는) 가는 길이 다릅니다. 우리는 살아 있지만은 (그들과는) 가는 방향이 다르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빛을 밝혀서 이 길을 가야 합니다.

"내가 이 말씀을 전하니까 유대인들이 나를 죽이려고 합니다."

10:47 – 11:37

"내가 이 말씀을 전하니까 어둠에 속한 유대인들이 - 유대인들도 하나님의 백성이에요 - 나를 죽이려고 한다.

그런데 여기 본문에 뭐라고 그랬습니까?

사도바울은 "그때그때마다 하나님이 나를 도와주셨다. 나는 하나님의 도움을 받았다."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왜 하나님이 그를 도와주고, 그는 하나님의 도움을 받았습니까?

그가 사명이 크기 때문이예요. 사명이 크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이 신원(vengeance/伸冤)의 역사를, 영과 육의 구원의 역사를

가지려고 노력하면 마귀가 얼마나 방해하는지 아세요?

여러분의 자식을 통해서, 환경을 통해서, 직장을 통해서 때로는 남편과 아내를 통해서.

여러분은 이것을 헤쳐나갈 수 있어야 되는데요. 물러서면 지는 겁니다.

그래서 마지막에 주님이 사도 요한을 통해서 기록할 때 "이겨라. 이겨라. 이겨라. 이겨라." 이기라는 건 뭡니까?

힘들게 이겨야 되는 겁니다. 힘들게요.

11:37 – 12:24

요한 계시록의 모든 말씀은 마지막 때 신원(vengeance/伸冤)의 종들에게 이기라고 말씀합니다. '이긴다'는 말은 상대가 있다는 거예요.

은혜 시대에는 그냥 '믿기만 하라' 이 말이에요. 그냥 아무 이유도 조건도 없어 그냥 믿기만 하라. 하나님이 주시는 은사 중에 제일 중요한 것이 말씀의 은사입니다.

은사 중에 가장 쉽게 주고 안 떠나는 은사가 방언의 은사입니다.

제가 주일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나올 때 아니 어떤 집사가 술에 취해 나오면서 방언을 했어요.

여러분, 방언는 좀처럼 안떠납니다.

그러나 많은 은사 중에 말씀의 은사는 딱 틀어지면 빼앗깁니다.

하나님이 그것을 가져가 버립니다. 오늘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들은 주께로부터 받은 말씀의 은사를 주님 오실 때까지 보전하시기 바랍니다.

12:24 – 13:02

사도 바울은 다메섹과 예루살렘과 유다의 온 땅과 이방인에게까지 이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는 아시아와 유럽을 넘나들면서 많은 복음 역사를 하고 많은 핍박도 받았습니다.

그는 세상적으로 말하면 - 제가 늘 말씀드렸어요 - 예수님 만나서 실패한 사람이에요.

잘 나가던 사람이 중단이 돼버렸습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신앙적으로 내세를 바라본 사도바울은 성공한 사람이에요.

그래서 그는 "나의 달려갈 길을 달려가고, 나를 위해서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다"라고 하였습니다.

13:02 – 13:06

그는 자신만만한 소리를 했습니다.

13:06 – 14:18

신원(vengeance/伸冤)의 날에도 여러분은 말씀을 밝히고 빛을 밝히는 그런 용사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제 때가 오면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쓰게끔 돼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언어가 다르고 문화가 다른 여러 민족에게 복음을 전하면서 유무식 - 지식이 있건 없건, 빈부귀천 - 생활이 넉넉하기나 가난하거나, 남녀노소를 가리지 아니하고 열심히 전했습니다.

유대인들이 바울을 볼 때, 그들은 율법을 파괴하고 하나님을 해방하는 자가 짐승 같은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한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그들은 사도 바울이 여인들을 가까이하면 안 되는데, 그가 여인들과 같이 복음을 전하고 말씀을 전하여 유대교에서 가장 몹쓸 지도자라고 낙인을 찍었습니다.

"바울이 유대교에 있을 때는 그렇게 잘 나갔는데 그만 예수에 미쳐서 저 짓을 하고 있는 가!"라고 그들은 말했습니다.

14:18 – 15:45

오늘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도 사도 바울의 역사를 이어받아 아시아와 유럽과 남미와 북미 등 여러 지역에 (영적인) 양식이 없어 굶주리고 메말라가는 백성들을 살리는 역사를 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마태복음 10장의 역사입니다.

1절, 8절에 보면 예수님은 12제자에게 "양식이 없어 죽어가는 양들을 찾아가서 살려라"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너희가 아무것도 가진 것 없어도 그쪽에서 다 준비할 테니까 두 벌 옷도 신이나 지팡이도 가지지 말고 그대로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대한민국에 선교사가 왔을 때 그가 먹을 거, 입을 것, 신을 거 다 가지고 왔습니다.

근데 예수님은 신원(vengeance/伸冤)의 종에게는 다 준비되어 있으니, 말씀만 가지고 가라고 했습니다. 그게 신원의 역사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비량(직업 선교사) 했습니다.

여러분은 저를 주의 사자라고 모시고 섬깁니다.

어제도 제1 남전도회 회장님이 저를 주의 종이라고 섬겼습니다.

저에게 맛있는 것을 더 먹으라고 했습니다.

15:45 – 16:15

수제비 넣은 매운탕을 같이 먹었는데 그는 저에게 자꾸 더 먹으라고 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 우리 신원(vengeance/伸冤)의 종은 하나님께서 특별히 예비한 종들이기 때문에 말씀이 들어져야 됩니다.

이 말씀이 먹어져야 됩니다.

16:15 – 17:40

오늘 본문 사도행전 26장 22절을 봅시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내가 오늘까지 서서 높고 낮은 사람 앞에서 증거하는 것은 선지자들과 모세가 반드시 되리라고 말한 것을 내가 전한다.'

선지자들과 모세가 반드시 되리라고 말한 것이 뭡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은혜 시대의 역사입니다. 이것이 1차 구원입니다.

여러분, 참 감사한 건 우리가 1차 구원과 2차 구원을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가르쳐주지 않으시면 1차 구원이 뭔지, 2차 구원이 뭔지 잘 모릅니다.

영혼 구원이 무엇인지, 영육 구원이 무엇인지 잘 몰랐을 것입니다.

성령의 1차 역사(이른비 성령)와 2차 역사(늦은비 성령)를 모르게 되고 모두 뒤죽박죽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어떤 구원은 믿기만 하면 얻는 구원이 있고 또 어떤 구원은 이겨야 얻는 구원이 있는데, 우리는 그 설명을 (말씀이 갈급한 자에게) 해줘야 돼요.

그것을 가지고 나아가는 여러분은 빛의 사자입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저는 정말로 주님께 감사합니다. 제가 어떻게 이 말씀을 전할 수 있었는가 말이죠.

17:40 – 18:34

13대(generation) 말씀이 뭐며, 14대(generation)의 말씀은 무엇입니까? 여러분들은 이 자리에서 말씀을 듣고 계시지만

은혜 시대의 성도들은 이 말씀을 모르고 있습니다. '되리라고 말한 것.'

모세가 예수님이 오셔서 역사할 것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알려주셨습니다. 선지자들과 모세가 반드시 되리라고 말한 것.

되리라고 말한 것은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했다는 의미입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이 깨달아서 알려주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그런 일에 선구자가 돼야 합니다.

18:34 – 20:01

이사야 53장을 율법교회 제사장과 서기관들 그리고 학자들은 몰랐어도,

주님이 이 땅에 오셔서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양과 같이 우리 죄를 위해서 죽으심을 당하고 부자의 무덤에 장사된다는 이 선지자들이 말한 것이 이루어진다는 말입니다.

이걸 바울이 전한 거예요. 그들이 고난의 메시아를 알았습니다.

초림의 주님에 대해서 알았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전하는 것이 그의 사명이기 때문에 전하지 않을 수가 없었어요.

오늘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 우리 교회는 일반 교회와 다릅니다.

우리 동인교회는 영과 육이 영생하는 교회입니다. 저 얼마 전에 우리 교회에

자녀 문제로 싸우다가 나간 집사가 한 분 있습니다.

제가 들어보니까 그 분이 참 딱하더라고요. 여러분들은 무슨 시험이 오든지 간에 이겨야 돼요.

이긴다는 건 참 힘든 것입니다.

신앙의 선구자들은 이겨야 되는 것입니다.

20:01 – 21:25

또 우리 교회에서 봉사 잘하던 집사 한 분은 괜히 시험에 들었습니다.

희한하게도 그 분이 방송실을 저 뒤쪽에 만들자고 했어요.

제가 그랬어요. "우리 교회 천장이 높으면 저 뒤 쪽에 만들 수 있지만

저 낮은 데다가 방송실을 만들 수 있을까요? 여기 밖에 할 데가 없어요."

그 일이 시비가 되어 - 사실 시비할 일이 아니거든요.

그 분은 교회의 사정을 따르면 되는데 기어코 저기에 하자고 했습니다.

"한번 생각해 봅시다."제가 이렇게 말씀을 드렸습니다.

옆쪽은 천장 높이를 안 높여도 되지만, 저기 뒤 쪽에 방송실을 만들려면 높이를 높여야 됩니다.

기어코 그 분은 욱이고 싸우다가 그만 교회에서 나가버렸습니다.

싸울일도 아닌데. 제가 어느 날 그 분을 보게 되었는데 이렇게 하고 다니더라고요.

"아이고, 저분 좀 봐라."

여러분은 신원의 말씀 안에서 어떤 시험이 오든 어떤 문제가 오든 이겨야 됩니다.

사도 바울이 되리라고 말한 것은 이사야 53장의 내용이며, 오늘 우리에게 되리라고 말한 것은 이사야 60장의 내용입니다. 세계 열강들이 이 말씀을 듣고 와야 됩니다.

그리고 23절 보십시오.

21:25 – 22:56

'선전해야 된다' 그랬습니다.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 구원의 빛을 선전해야 된다.

'예루살렘과 이방인들에게 빛을 선전하시리라 함이니라 하니라.'

여러분, 선전꾼은 누구보다도 먼저 정확하게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사도바울이 전하는 빛은 영혼 구원의 빛입니다.

'포스'라고 하는 빛입니다.

이 빛을 사도바울은 선전하게 되었다.

그는 이것을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받았다.

선전이라는 것은 사람들이 알아듣도록 이해하도록 하는 것인데, 원어는 '카당겔로'입니다.

이것은 '선언하다', '공포하다', '가르치다'는 뜻인데 사도 바울은 이 빛을 선전(카당겔로) 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빛을 그가 선전하게 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이 빛은 큰 구원의 빛입니다. 여러분은 큰 구원의 빛을 카당겔로 해야 됩니다.

여러분들의 사명입니다. 지금 여러분들은 부엌 싱크대에서 떠나지 못하고 있지만, 직장 생활을 하고 있지만 오늘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들에게 이 구절이 해당된다면

22:56 – 24:23

여러분들을 가만 두지 않을거예요. 하나님은 여러분들이 이 빛을 선전하게 합니다.

(하나님은 그가) 선전(카당겔로)하게 하겠다. 가르치고 알리게 하겠다.

사도 바울은 영혼 구원을 선전하였습니다.

알렸습니다. 가르쳤습니다. 그는 어렵고 힘들게 고통을 겪으면서도 그의 사명에 한 점도 부끄러움 없이 잘 싸웠습니다.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말씀 앞에 용기를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정치와 종교가 얼마나 부패한지 아십니까?

여당, 야당 할 것도 없이 아주 썩어 문드러져서 썩은 냄새가 나고 있는 이 시대에, 종교계는 전부 다 어두움에 잠겨서 헤매고 있는 있습니다.

알파 때 사도 바울과 같이 오메가 때의 우리 동인교회 신원의 종들이 정말로 생명을 주께 맡기고 나가면 주가 우리를 책임져 주실 것입니다.

저는 앞으로 얼마 남지 않았다고 봅니다.

24:23 – 25:57

세상이 좀 고장이 나든지 좀 멈춰주면 좋겠는데 이 세상은 고장도 안 나고 멈추지도 않아요.

벌써 오늘이 첫 주 입니다? 두 달이 지나가면 또 새해입니다.

반드시 오실 주님은 오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알파 때에 사도바울이 빛을 선전한 거와 같이 오메가 때에 우리 동인 교회가 빛을 선전해야 합니다.

여러분, (파는 자가) 선전을 잘 하면 (사는 자가) 받아들이게 됩니다. 받아들입니다.

제가 입은 옷, 이 옷을 살 때 (파는 자가) 선전 잘해서 제가 이 옷을 샀어요. 어떻게 선전을 잘하는지.

"울이 몇 프로 들어가고 합성섬유가 몇 프로 들어가서 이 옷은 절대 구겨지지 않습니다."

"정말로 그렇습니까?"

그런데 구겨지더라고요. 그가 선전을 아주 잘하더라고요.

근데 진리는 선전보다 더 좋아요. 더 확실하고 더 자신 있는 진리의 말씀이기 때문에.

오늘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 우리가 이 바울 사도의 사상을 따라가려면 아직도 부족한 게 많아요.

참 부족한 게 많습니다.

25:57 – 27:16

우리가 부족한 게 많지만은 하나님께서 어느 날 갑자기 여러분의 사상과 생각을 180도로 돌려서 빛의 용사로 쓰실 줄 믿습니다.

빛의 사자들이여! 빛의 사자들이여! 빛을 가진 자들이여! 이사야 60장 1절과 같이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이르렀고 여호와의 빛이 네 위에 나타나리니 일어나서 어둠을 밝히라."

빛 가진 자만이 앞으로 이 시대에 살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어둠에 잠식되어 죽을 수밖에 없지만 빛을 가진 자는 살 수 있습니다.

여러분, 성경에 '어둠이 땅을 덮을 것이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초림 때 그랬습니다. 재림 때도 그렇습니다. 캄캄함이 만민, 모든 사람의 눈을 가린다고 하였습니다.

그럴 때 네가 일어나서 빛을 발하며 열방과 열왕은 네 빛으로 나오게 될 것이다.

이게 2차 역사입니다. 그래서 훈련받고 인정받은 자만이 2차 역사를 할 수 있습니다.

27:16 – 28:17

여러분에게 제가 늘 얘기했죠. 우리 주위에 찌르는 가시가 있지만 독가시에 안 찔리면 됩니다.

안 아픈 가시가 있고 좀 따끔하다가 마는 가시도 있어요.

오늘 한 집사와 같이 교회로 오면서, 그가 "우리 교회 꽃나무가 좋은 게 있는데 그것이 선인장 가시만 없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하네요.

꽃은 예쁜데 가시가 있어. 오늘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 우리가 살아가는데 신앙의 가시가 있습니다. 안 아픈 가시가 있고, 찔러도 안 찔리는 가시가 있고,

찔려도 따끔하고 아픈 가시가 있습니다. 그러나 독가시는 염증이 생기고 상당히 고생하는 가시입니다.

여러분들도 사도 바울이 걸어간 길, 그 길을 우리가 바톤을 받아서 걸어갈 때 그는 순교의 길을 갔지만 우리는 변화의 축복의 길을 가게 됩니다.

여러분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어떠한 일이 있어도 어두운 세상을 구원의 빛으로 밝히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선전한다'는 의미입니다.

28:17 – 29:28

선전꾼은 (선전할 것에 대해) 확실히 알고 상대방을 이해를 시킬 때 진정한 선전꾼이 됩니다.

오늘 우리는 빛을 선전합니다. 이 말은 태양, 형광등, 수은등의 빛이 아니라 구원의 빛입니다.

창세기 1장 말씀에서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의 빛이 '포스'입니다.

그 빛이 '오르'입니다. 만들어진 빛이 아니에요. 만들어진 빛은 우리가 볼 수 있지만 만들어지지 않은 영생의 빛,

구원의 빛은 영안의 눈이 열려야 알게 됩니다. "아, 이 빛이구나. 이 빛이구나. 이 빛 따라가야 되겠구나."

이 빛을 놓치면 우리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리는) 어두움에 빠지게 됩니다.

히브리서 2장에 큰 구원을 말씀했습니다. 영혼 구원은 큰 구원 아니에요. 선물로 준 구원이에요.

큰 구원은 (우리가) 빼앗길 수가 있다고 했습니다.

29:28 – 30:49

여러분, 제가 제 아내의 경험에 대한 얘기 하나 할게요. 우리 교회 여전도회에서 강원도에 갔었는데,

제 아내가 앉아서 쉬었다 갔는데 5천 원짜리 지폐 하나를 흘렸는데 아무리 찾아도 없더래요.

제 아내는 하나밖에 없는 5천 원짜리 지폐를 흘렸다고 합니다.

저는 아직 울산 바위에 못 올라가 봤습니다. 그곳을 수천 명이 올라가고 내려가고 했는데, 제 아내가 앉았던 자리에 5천원 짜리 지폐가 그대로 있더래요.

그런데 제 아내가 저에게 "여보, 희한하게 그곳을 많은 사람들이 수없이 밟고 갔을 텐데 내가 앉았던 자리에 5천원짜리 지폐가 그대로 있었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어떻게 반가운지, 하나님이 제 아내에게 도로 찾게 해줬다는 거예요.

외딴 길을 가다가 떨어진 돈이 아닙니다. 여러분, 울산 바위에 수천 명이

올라가고 내려가고 하는데, 제 아내가 그 돈을 어쩌다가 흘렀는지 거기에 가보니 그 5천원짜리가 있더래요.

일반 5천 원짜리보다 더 반가워서 "참 네(5천원짜리 지폐)가 나를 다시 만나줘서 반갑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제 아내는 저한테 한 번만 자랑하면 되는데 그 다음 날에도 자랑하고 그 다음 날 또 자랑을 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지켜줘야 됩니다.

30:49

그 일이 별거 아닌 것 같지만 그 많은 사람들이 그 돈을 밟고 지나가고 또 밟고 갔는데, 거기에 그것이 그냥 있었습니다.

"이거는 손대지 마! 손석수의 것이야." 아마 주님이 그렇게 해 주신 것 같아요.

여러분의 생명을 지켜주시고 여러분의 건강도 지켜주시고 여러분의 환경도 지켜주셔야 빛을 선전하게 됩니다.

우리는 영과 육의 구원의 빛을 선전해야 됩니다. 선전꾼은 골골골(허약)하면 선전을 못합니다.

여러분이 건강해야 그것을 선전합니다. . 그렇기 때문에 주님은 심령 골수를 찔러 쪼개고 다시 만드십니다. "야곱아, 내가 너를 다시 만들어 쓰겠다"는 그 말씀이 여러분의 말씀이 되기를 바랍니다.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