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향으로 날 보내주" 여러분, 여러분들의 학창 시절에 이 노래 많이 불러봤습니까? "오곡백과가 만발하게 피었고 종달새 높이 떠 지저귀는 곳 이 늙은 흑인의 고향이로다. 내 고향으로, 내 천국으로 나를 보내주.”
00:00 – 01:34
오늘 이 자리에 오신 여러분, 말씀에 놀라운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지지난 주일에 제가 예레미야 30장으로 설교 말씀을 드린 것이 생각납니다.
포로된 백성이 돌아와서 하나님의 제단을 쌓고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 (하나님은 미리 예언을 통해) 그들이 바벨론으로부터 70년이 되어 돌아와서 기뻐할 것을 말씀했습니다.
여러분, 가만히 생각해 보십시다. 모든 이방 나라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그냥 내버려 두셨습니다. 그러나 특별히 하나님의 백성들은 애굽이라는 나라에서 지독하게 고생시키고 고향 가게 하신 것을 성경에 기록하여 우리에게 보여주십니다.
(또 하나님은) 저 바벨로니아, 바벨론 제국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포로되어 갔다가 고생하고 어려움을 겪고 나와서 축복받는 과정을 성경에 기록해서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무엇을 목적으로 하고 기록해 주셨을까요?
오늘날 신약 시대의 성도들이 살아가는 이 땅은 애굽과 같은 세상입니다.
01:34 – 03:18
애굽 같은 세상에서 고난받다가 고향 가는 모든 과정은 오늘날 성도들, 특별히 안식할 땅에 들어갈 자들에게는 교훈이 되고 있습니다.
거울이 되고 있습니다. 1차 역사(모세를 통한 출애굽)와 2차 역사(여호수아의 가나안 정복)가 우리의 거울이 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에서 포로되어 갔다가 돌아오는 그 모든 과정이 오늘날 신약 시대에 고향 갈 모습으로 보여준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70년이라는 고난의 바벨론 삶을 살다가, 그 땅에 잡혀서 괴로움을 겪다가 고향 가는 그 모습은 오늘 본문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와서 고향 가는 것은 모형이고 완전 성취는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에서 나와서 고향 가는 것도 완전 성취가 되지 못합니다.
오늘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 이것이 우리에게 주는 말씀(의 교훈이) 무엇인가요? 바벨론에서 돌아올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즐거워하고 기뻐하고 하나님께 찬양하고 감사하는 모습이 오늘 본문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03:18 – 05:02
여러분, 오늘 본문 말씀의 축복이 여러분에게 돌아가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 '의로운 처소여, 거룩한 산이여.' 이 글씨를 여러분들은 봐보십시오.
(이 말씀이) 신약 시대에 이루어질 하나님의 말씀인 줄로 믿습니다.
감사하는 소리, 기뻐하는 소리가 날 것이라 그랬습니다.
오늘 우리는 날마다 살아가는 삶 자체에 만족이 없습니다.
기쁨이 없습니다. 오늘 우리는 고향 땅 들어가야, 안식할 땅에 들어가야 만족하게 되고 우리의 마음에 기쁨이 올 줄로 믿습니다.
(이 말씀은) 그 땅에 들어갈 자들에게 해당되는 말씀이지, 그 땅에 들어갈 자들이 아니면
이 말씀이 귀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여러분, 제가 오늘 새벽에도 "원근 각지에서 이 제단에 오는 종들을 강권으로라도 붙들어 주시고 그 나라에 들어 갈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올 때에 안 와야 될 자들이 같이 따라 나왔습니다.
안 와야 될 자들이 따라 나왔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만이 먹어야 할 만나를 그 땅에 못 갈 자들도 그것을 먹었어요.
05:02 – 06:34
(그들에게는) 약속의 땅이 없는데도 (이스라엘 백성을) 따라 나왔어요. 그들은 반석의 물도 마셨어요.
근데 광야에서 시험을 갖다 주기 시작한 자들(잡족)로 인해서 이스라엘 백성이 큰 타격을 받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 그 뒤에 (하나님은) 남은 자들을 통하여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하셨죠.
제가 말씀드렸죠. 예레미야가 이스라엘 나라 마지막 왕 시드기야 왕에게
폭력과 폭행을 당하고 투옥도 당했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사자를 그렇게 못 살게 하더니, 시드기야 왕이 바벨론에게 완전히 망할 때에 (느부갓네살 왕은 시드기야의) 눈까지 뺐습니다.
얼마나 예레미야가 고통을 당한지 모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도 곧바로 이 축복이 올 것이 아니라 70년 후에 이 축복이 돌아올 것이라 그랬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는 70이레 이후에 이 축복이 돌아오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신약 말기에 태어난 자들에게 축복이 있습니다.
오늘날의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이 시대 시대에 이루어지는 것을 말하지 않고 있어요.
지금요.
06:34 – 08:00
왜 그럴까요? 윤리를 가르치거나 도덕을 가르키는 곳이 교회가 아니에요.
말씀을 똑바로 가르치면 (성도들은) 자연히 따라오게 돼 있고요.
말씀을 가르치면 그 나라 갈 마음이 (성도들의) 마음에서 요동치게 돼 있어요.
"예수 잘 믿으십시오. 복받습니다."(이런 말은) 부처도 얘기하고 있습니다.
"예수 잘 믿으면 병이 났습니다." 무당도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기독교는 뭐냐? 기독교는 고향 가는 종교예요. 나그네의 삶을 청산하고 고향 가는 종교입니다.
그래서 본문 23절에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말씀합니다.
'내가 그 사로잡힌 자를 돌아오게 할 때에' (그들이) 어디에서 사로잡혔습니까?
바벨론 땅에서. (그들은) 정말로 피눈물 나는 고통을 당했습니다.
(그들은) 해가 지면 바벨론 강변에 나와 삼삼오오 모여서 고향을 그리워하며 여러 강변에서 울었다고 기록이 돼 있습니다.
오늘날 이 세상을 사는 여러분, 때가 가까이 왔기 때문에
그 나라에 못 갈 사람은 귀를 쑤셔도 (말씀이) 안 들립니다.
여러분, 말씀이 들려지는 귀가 있어야 되지, 말씀이 안 들리면 안 됩니다.
08:00 – 09:13
(우리는) 그 나라 보는 신령한 눈을 받아야지 세상 것만 보이면 안 되겠습니다.
예레미야가 이 말씀을 해도 바로 이 축복이 온 것이 아니라 70년이 되어 축복이 왔습니다.
예레미야는 미움을 받고 욕을 먹고 매를 맞고 옥에 갇히고 고소를 당했습니다. 예레미야가 나라를 위해서 축복의 말씀을 하지 않고 저주의 말씀을 하니 부패된 종교가 부패된 정치와 야합을 해서 참 선지자(인 그에게) 고통을 줬습니다.
그가 고통을 받았지만 하나님은 그의 입을 빌려 복을 주겠다고 하셨습니다. 언제? 때가 차면. 몇 년의 때가 차야할까요? 70년의 때가 차면.
여러분, 예레미야는 이 날을 보지 못하고 갔을(죽었을) 겁니다.
그러나 소년 다니엘은 어린 소년의 나이에 잡혀가서 70년이 지나니 구순 노령이 되었습니다.
그는 바벨론 사상과 타협하지 아니하고 바벨론의 부정한 음식을 입에 넣지 아니하고 오로지 하나님과 교통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에게 비밀을 가르쳐줄 때 "해방이 온다."고 그랬습니다.
09:13 – 10:19
그가 70년 만에 해방된다는 소리를 들으니까
다니엘은 너무 감격해서 하나님 앞에 대언 기도를 합니다.
우리 조상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와서 고생하고 환란 받은 것, 우리 조상들이 잘못한 거 다 용서해 달라고요.
이 백성들이 범죄한 것 용서해 달라고요.
다니엘은 그때 그 비밀이, 예레미야가 말한 비밀이 깨달아져서 그대로 하나하나 실천으로 옮겨져 가게 되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돌이킬 때에 - 이건 모형입니다. -
실제로 우리가 그 나라 갈 때에 "거룩한 처소여, 의로운 처소여, 거룩한 산이여." 외치게 되는 날이 오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그날까지 잘 삽시다. 그날까지 기다려 봅시다.
여러분, 제가 말씀드립니다. 은혜 시대의 성도들은 "어떻게 하면 잘 죽느냐?"의 신앙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가 그랬죠. 두 가지 영이 내립니다. 죽는 영이 내리는 예배가 있고요.
영생하는 영이 내리는 예배가 있습니다.
10:19 – 11:16
피와 말씀으로 드리는 예배가 승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많은 사람이 아니어도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때 신과 같은 역사가 나타날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23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그 사로잡힌 자를 돌아오게 할 때에 그들이 그 유다 땅과 그 성읍들에서 다시 이 말을 쓰리니.'
다시 쓰게 되는 말이 '의로운 처소여. 의로운 처소여.'입니다.
11:16 – 12:58
'하르 하쿠데싱'이라고 했는데, 의로운 처소여. 이게 뭐냐면
의로운 자가 들어가는 곳이 의로운 처소가 됩니다.
의로운 자의 처소. 오늘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 우리는 더럽고 추한 죄인입니다.
보잘것 없고 쓰레기 같은 인생이지만 예수의 피로 하나님께서 씻어주시고 거룩한 주의 백성을 삼으셔서 이 의로운 처소에 거하게 될 수 있도록 하나님이 역사하실 것입니다.
의로운 처소, 의로운 처소. 근심 걱정이 없이 살기 좋은 곳이 의로운 처소입니다.
바벨론과 같은 세상에서, 이 험한 세상에서 살아가는 동안 가정 주부는 주부대로 고민과 고난이 많고 학생은 학생대로 고난의 어려움이 많고 직장인은 직장인대로 얼마나 고달픈 생활을 하고 계십니까?
전부 얽매여 살고 있습니다. 학생은 학생다운 즐거움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얽매이고 억압 속에서 고생을 하고 있습니다.
가정 생활을 하는 주부도 평안한 삶을 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직장인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12:58 – 14:39
직장인도. 그런 자들이 이제는 눈물과 괴로움과 고통과 근심 걱정이 없는 의로운 처소에서 산다면, 꿈에도 이런 역사가 일어난다면 기쁘겠죠.
오늘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 하나님께서 이 역사를 우리에게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시온의 축복을 허락하실 때에 의로운 처소여! (의로운 처소는) 이 땅입니다.
세상 나라가 주와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는 이 땅에서 근심 걱정 없이 사는 날이 오게 돼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하나님께서 복을 주신다고 그랬어요. 여러분, 이것은 죽어서 부활하는 진리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이 말씀 붙들고 살아갈 때 죽음으로써 이별하는 것을 피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제일 슬픈 것이 죽음으로 이별하는 것입니다.
질병과 고통이 없는 그 곳에서. 이 세상을 완전히 심판해 버리고, 바벨론 세상 심판해 버리고 죽음이 없는 세상이 온다면 참고 기다려야죠.
참고 기다리고 또 사모해야 되죠. 여호와께서 복을 내려주신다고 했으니 이 복을 받을 자가 돼야 되겠죠.
14:39 – 16:07
여러분은 복을 구경하는 자가 되지 말고, 사이드에 서 있는 자가 되지 말고 이 축복의 주인공이 되기를 바랍니다.
거룩한 이 축복으로 의로운 처소에서 사는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거룩한 산이여.'그랬습니다. 거룩한 산. 이 거룩한 산의 축복을 '하르 하코데시'라고 했는데, 이 산은 예루살렘에 있는 시온산입니다.
시편 2편 6절에 보면 '나의 왕을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도다.'
라는 말씀이 기록돼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예루살렘에서 시온산 통치를 하실 때에, 진리 때문에 고생하고 말씀 때문에 어려움을 당하고
미움 당한 이 종들이 변화 성도가 되어서 분봉 왕 자리에 앉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 분봉왕이 되어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하게 되는 축복이 있을 줄로 믿습니다.
요한계시록 1장 6절이 응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을 삼았다.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을 삼았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16:07 – 17:43
제가 어릴 때 그 나라, 천국의 문지기만 돼도 좋겠다고 했는데요.
(하나님께서) 이런 축복을 주십니다. 여러분은 기대되지 않습니까?
여러분들은 주님과 함께 분봉왕 자리에 앉아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그날이 (여러분에게) 가까이 와 있습니다.
가까이 와 있습니다. 제가 전에도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옛날에 석탄차를 타고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올 때 12시간 열차를 타고 왔어요.
새벽녘에 서울역에 가까이 오면 연탄, 석탄가루, 연기가 얼굴에 많이 묻어 있어요.
(열차 직원이) 쭉 지나가면서 - 일본 말입니까? 시보리가? - 물 수건을 하나씩 (승객들에게) 쫙 나누어 줍니다.
(승객들이) 그것으로 얼굴을 닦기 시작하면 종착역이 가까이 왔다는 신호입니다. 그것으로 (얼굴을) 닦기 시작하면 종착역이 가까이 왔다는 뜻입니다.
물수건으로 닦고 난 다음에는 여자들은 가방, 핸드백을 챙기고, (얼굴을) 이렇게 두드립니다.
그리고 (승객들은) 선반에 얹어놓은 짐, 꾸러미를 묶습니다.
요사이는 나일론 끈이 있죠. 그때는 새끼(짚으로 만든) 끈이었고 그것으로 묶었을 때 탑새기(먼지, 쓰레기)가 쭉쭉쭉 내려와도 서로 욕하지 않았습니다.
왜냐, 종착역이 가까이 왔으니까요. 그들이 하는 짓을 보면 열차의 종착역이 얼마나 남았는지 감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17:43 – 19:12
세상이 돌아가는 징조를 보고, 인간들 하는 행실을 보면. (이와 같은 감을 잡을 수 있습니다.) 인정과 사랑이 바싹 메마르고 없습니다.
불법이 성함으로 사랑이 식어진다는 말씀이 응하려고 그런지 몰라도, 옛날 어렵게 살았던 시대에는 인정도 많고 동정도 있었습니다. 지금은 얼마나 살벌한 세상이 되었는지, 옛날에는 도둑놈이 집에 들어와서 물건을 훔쳐갔는데 지금은 전산망에 깔아놓은 모든 것에서 빼앗가 갑니다.
여러분, 전화가 와도 받기가 무서운 시대가 왔습니다.
얼마나 잘 속이고 교묘하게 털어가는지. 여러분, 이런 세상에서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여, 어서 오시옵소서! 오시옵소서! 이런 축복을 바벨론 해방을 가지고 우리에게 말씀했습니다.
죽음이 없고, 괴로움이 없고, 이별 없는 나라에 혼자 가야 되겠습니까?
가족이 함께 가야 되겠습니까? 그래서 노아의 가정을 만들어야 된다는 거예요.
제일 축복이 그것입니다.
19:12 – 20:42
제일 축복이. 그래서 24절에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니까 '유다와 그 모든 성읍의 농부와 양떼를 인도하는 자가 거기에 함께 거하리니.'
여러분, 유다 성읍에는 왕권 받을 자뿐 아니라 모든 백성이 함께 살게 된다고 했습니다.
유다 성읍 안에는 왕권 받을 자들도 살게 되지만 일반 백성과 농부도 거하게 됩니다. 양떼를 치는 평화로운 촌락이 그 유다 땅에서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얼마나 행복한 땅이요, 얼마나 아름다운 곳입니까?
여러분, 여러분의 자녀가 이 시험에 걸려들어도 안 되고 여러분의 남편이, 아내가 이 시험에 걸려들어도 안 됩니다.
여러분, 우리는 가는 곳이 있어요. 은혜 시대의 성도들은 죽는 날만 기다리지만 우리는 계속 가고 있습니다.
계속 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런 축복을 약속했으니 괴로워도 어려워도 힘들어도 기다려야 돼요.
사탄이 방해해도 싸우면서 가야 됩니다. 원수가 우리를 위협해도 우리가 그들과 맞대항을 하더라도 이기는 자가 되는 축복입니다.
20:42 – 21:57
이사야 61장 5절, 6절 보면 '외인은 서서 너희의 양떼를 칠 것이오.
이방 사람들은 너희의 농부와 포도원지기가 될 것이나 오직 너희는 여호와의 제사장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라.'
여러분, 얼마나 감사합니까? 여호와의 제사장이라 일컬음을 받고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하나님이 허락해 주십니다. 그래서 자잘한 시시비비를 건다고 해서 우리가 크기에 신경 쓸 것이 없습니다.
그저 말씀의 축복을 받는 자가 돼야 되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들이 어떤 사람이냐? 여기에 들어가는 자들이 어떤 사람이냐?
25절에 보면 '내가 그 피곤한 심령을' - 여기에서 심령은
네페쉬입니다. 피곤한 영을 가진 살아있는 육체입니다. - '만족케 하겠다'고 했습니다.
21:57 – 23:52
여호와께서 피곤한 심령을 만족케 하며 무릇 슬픈 심령을 상쾌케 하여 주시리라.
여러분은 험한 세상 살아가면서 피곤에 지치지 않습니까?
험한 세상에서 삶을 살아가면서 고달픈 나그네의 길을 걸어가고 있지 않습니까?
(그곳은) 제일 좋은 안식처요. 참으로 우리가 바라던 희소식입니다.
한숨 쉬며 탄식하던 자들에게 만족함을 주시겠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슬픈 심령은 웃음이 많지 않은 시련 속에 사는 자들에게 있습니다.
괴로움이 있는 자들에게 있습니다. 여러분, 제가 자식을 길러보니까
이들이 장성해서 다 제 갈 길로 가고 나니, (저희 집에는) 늙은이 두 명 밖에 없습니다. 그저 서로 성경 얘기하고 세상 얘기를 하며 "이 세상이 어디쯤 왔을까요?
이 세상에서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을까요?"라고 서로 대화를 하니까 은혜가 됩니다.
"이 정부가 일하는 거 좀 봐라. 성경에서 얼마나 틀어지고 있는지를 봐라."
라고 하면 위로가 되고 위로를 합니다. 슬픈 심령, 참 세상에는 만족이 없습니다.
젊은 청년들은 아직 잘 몰라요.
23:52 – 25:15
나이가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만족함이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로해주시고 만족하게 해주겠다고 하십니다.
어떻게 이 말씀이 은혜가 되는지, 어떻게 이 말씀이 위로가 되는지, 성도 여러분, 이 날을 목마르게 기다립니까?
'아멘'이라고 해 보세요. 이 날이 오기를 목마르게 기다립니까?
오늘날 이 땅 위의 사는 삶이 포로생활입니다. (우리는) 환경에 쫓기고 있습니다.
질병에 쫓기고 있습니다. 시간에 쫓기고 있습니다.
참 만족이 없어요. 만족이 없어요. 왜? 포로생활은 만족이 없는 곳입니다.
여기에 예레미야가 이 말씀을 기록해 놓고 그는 이 날을 보지 못했을 겁니다.
예레미야가 매를 맞으면서 욕을 먹으면서 기록한 말씀이 오늘 우리에게는 소망적인 말씀이에요.
여러분, 제가 전에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25:15 – 26:49
한 쪽 발에는 운동화 신고, 한 쪽 발에는 고무신을 신어도 다음 달에 엄청난 축복이 온다면 - 다른 사람들이 그를 비웃을지 몰라도 - 이 사람에게는 소망이 넘칩니다. 다음 달에 오는 축복이 있으니까. 오늘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예비하신 이 축복을 날마다 날마다 기다리는 거예요.
날마다 기다리는 거예요. 우리는 가야 될 본향이 있고 가야 될 고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미국 사람이 지은 흑인들의 민요가 있습니다.
"내 고향으로 날 보내주" 여러분, 여러분들의 학창 시절에 이 노래 많이 불러봤습니까?
"오곡백과가 만발하게 피었고 종달새 높이 떠 지저귀는 곳 이 늙은 흑인의 고향이로다.
내 고향으로, 내 천국으로 나를 보내주."
- 우리가 죽어서 가는 천국이 아닙니다. - "오곡백과가 만발하게 피었고 맑은 물 흐르는 생명 강가로 나를 보내주소서."
내가 이 노래를 적어 두었습니다.
그날이 오기를 학수고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제가 오늘 설교를 하는 이 말씀의 주인공이 여러분이니까 여러분들은 "아멘" 할 수밖에 없죠.
26:49 – 28:09
그래서 오늘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들이 원해서도 아니고 기대해서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약속한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예수 믿기 싫어도 (하나님은) 믿게 해 주시고요.
여러분이 이 말씀을 듣고 이 길을 가기 싫어해도 주님이 끌고 가게 돼 있습니다.
가게 돼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기어코 필요 없는 자는 떨어뜨려버리고 하나님께서 붙들 자를 붙들어 주십니다.
여러분, 이 길이 그렇게 호락호락 좋은 길이 아니에요. (그래도) 목적지까지 가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뭐라 그랬습니까? 다 떨어져버리고 '저 나무 꼭대기에 실과 2~3개가 남아도.'
여러분, (하나님은) 나무에 실과 2~3개가 남아 있어도 그렇게 남게 하겠다고 하십니다.
(나무의) 먼 가지에 몇 개? 4~5개가 남게 되는 날이 올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그 복, 사망을 삼키는 복. 여러분, (하나님은)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하고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하는 그 복을 호락호락 아무에게나 주는 게 아니에요.
그래서 '이기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은혜 시대에는 '이기라'가 아니라 '예수 잘 믿으라'고 합니다.
28:09 – 29:31
'예수 잘 믿으라.' 율법 시대는 '지키라. 율법을 지키라.'라고 했습니다.
2천년 동안의 은혜 시대는 '예수 믿으라. 예수 믿어.'
"주 예수를 믿으라. 그러면 너희 집구석과 우리 집구석이 복을 얻으리라."
'집구석'이라는 말은 제가 한 소리(표현)예요. 너희 집이 복을 받는다는 소리입니다.
이제 이 말씀이 이루어질 때는 어떻게 해요?
'이겨라. 이겨라.' 이긴다는 말은 상대가 있는 거예요.
믿는 것은 상대가 없어도 믿을 수 있습니다. 이기는 데는 싸울 준비가 있어야 돼요.
그것의 무기가 말씀이에요. 여러분, 누가 뭐래도 누가 뭐래도 험한 세상을 헤쳐나가는 길은 말씀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이 말씀이 없으면 소망이 있습니까?
이 말씀 없으면 소망이 있습니까? 정말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말씀에 감사합니다.
'절절히 주의 말씀이 날 분부하심 같도다. 내 평생의 소원, 내 평생의 소원.' 기대하세요.
의로운 처소여. 거룩한 산이여.
29:31
이 축복의 주인공이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