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쇄 창에서 ‘PDF로 저장’(또는 대상: PDF)을 고르면 교육용 자료로 보관하기 좋습니다.

한 줄 요약

사도 바울의 고난과 가시를 통해 하나님의 뜻과 능력을 깨닫는 설교

  • 사도 바울의 변화와 고난
  • 가시의 종류와 그 의미
  • 하나님의 응답과 능력의 중요성

고난 하나님의 뜻 사도 바울

소그룹 나눔 질문

  1. 여러분의 삶에서 경험한 가시는 무엇인가요?
  2.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나요?

QT·묵상 가이드

QT 리더 가이드

제목: 육체를 찌르는 가시가 많은 세상 (고린도후서 12장 7~10절)

1. 기도로 시작하기

  • QT를 시작하기 전에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합니다. "하나님, 오늘 말씀을 통해 저의 마음을 열어주시고, 가시를 통해 배우는 교훈을 깨닫게 해 주시옵소서."

2. 본문 읽기

  • 고린도후서 12장 7~10절을 함께 읽습니다.

3. 설교 요약

  •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만나기 전과 후의 극적인 변화를 겪었습니다. 그는 핍박하던 자에서 복음을 전하는 사도로 변화되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육체를 찌르는 가시'가 있었습니다. 이 가시는 바울이 복음을 전하는 데 있어 그를 괴롭히는 외적, 내적, 물질적, 질병적 고통을 상징합니다.

4. 가시의 종류

  • 외적 가시: 사람들로부터 오는 핍박과 비난.
  • 내적 가시: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오는 상처.
  • 물질적 가시: 경제적 어려움.
  • 질병의 가시: 육체적 고통과 질병.

5. 바울의 기도와 응답

  • 바울은 자신의 가시를 없애달라고 세 번 기도했지만, 하나님은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라는 응답을 주셨습니다. 이는 바울이 고통을 통해 교만하지 않고 그리스도의 능력이 그에게 머물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6. 우리의 삶에 적용하기

  • 각자 자신의 삶에서 어떤 가시가 있는지 돌아보며, 그 가시가 우리를 어떻게 괴롭히고 있는지 생각해봅니다.
  • 하나님이 주신 가시가 우리를 강하게 만들고, 그리스도의 능력을 의지하게 하는 기회임을 깨닫습니다.

7. 인내와 믿음

  • 욥과 같은 인내를 배우고,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신뢰하며 살아가기를 다짐합니다.
  • "하나님, 이 가시가 독가시가 아니라면 잘 견딜 수 있는 마음을 주시옵소서."

8. 마무리 기도

  • 오늘의 말씀을 통해 깨달은 점을 하나님께 기도하며, 각자의 가시를 통해 더욱 강해지길 기도합니다. "하나님, 저의 가시를 통해 저를 더욱 성장시키시고, 주님의 능력이 저에게 항상 머물게 하여 주시옵소서."

9. 실천 과제

이 QT 리더 가이드를 통해 말씀을 깊이 묵상하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더욱 깊어지기를 바랍니다.

  • 이번 주 동안 자신의 가시를 통해 하나님께서 주신 교훈을 기억하고, 그 가시가 나를 어떻게 성장하게 하는지에 대해 묵상합니다. 주변 사람들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삶을 살기로 결단합니다.

고린도후서 12장 7~10절

“육체를 찌르는 가시가 많은 세상”

"육체를 찌르는 가시가 많은 세상"

00:00 비 오는 날이지만 이 자리에 참석하신 여러분에게 말씀 안에서 축복이 임하기를 바랍니다. 기독교인를 핍박하던 바울은 예수님께 붙들린 바가 되고 사로잡힌 후에 복음을 전파하는 위대한 사도가 되었습니다. 핍박하던 자가 핍박받는 자로 바뀌었습니다. 진리를 대적하던 자가 진리를 전하는 자로 바뀌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예정하심과 경영하심이 이룬 것인 줄로 믿습니다. 오늘 이 곳에 계신 여러분들도 사도 바울과 같이 하나님이 귀하게 쓰시는 종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이 사도 바울은 예수를 만나기 전에 잘 나가던 사람이었습니다. 로마 시민권을 소유하고 율법의 전문 지식도 이수한 남부러울 것이 없는 그런 사람으로서 그 시대에 잘 나가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예수를 믿고 진리를 깨달아 전파할 그때부터 이 세상에서 누리던 것, 이 세상에서 경영하던 것, 영광과 지식과 학문을 전부 배설물로 여겼습니다. 이렇게 그가 180도로 전환을 하여 어두운 세상을 십자가 복음으로 밝히며 진리의 역군이 되었습니다. 02:04 사도로서 우뚝 서서 복음을 소아시아 지방과 유럽까지 전하는 바울이었습니다. 사도행전 14장에 보면 바울이 1차 선교 여행 때 루스드라에서 (그가) 앉은뱅이를 일으키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이 놀라운 역사는 큰 소동을 일으켰습니다. 무리가 바나바를 '쓰스'라고 했습니다. '쓰스'라고 하는 신은 신 중에 가장 힘 있는 신으로 헬라어로 '제우스'입니다. 무리가 이런 신이 그에게 임했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그들은 바울을 '허메'라고 하는 신이라고 지칭하고 위대하게 존경했습니다. 이 '허메'는 변론의 신, 웅변의 신입니다. 이렇게 놀라운 역사를 일으키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사도바울이었습니다. 사도행전 19장 11절로 12절에 보면 바울의 3차 선교 여행 때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병이 떠나고 귀신도 쫓겨 나갔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대단하지 않습니까? 03:52 정말로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혼신의 힘을 다했습니다. 정말로 그는 '주를 위해서'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아니하고 어려움이나 역경이나 괴로움이나 고통이 있어도 신앙의 정로로 달려갔습니다. 그런데 그런 역사를 하는 사도 바울에게 찌르는 '가시'가 많이 있었다고 하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찌르는 가시가 바울을 괴롭혔다는 것은 정말로 놀라운 일 중에 하나입니다. 바울은 주님께서 육체를 찌르는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다고 본문 7절에 말하고 있습니다. 사탄은 대적자, 참수하는 자, 미혹하는 자, 헐뜯는 자, 괴롭히는 자이고 이것이 사탄의 직책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육체의 가시를 바울에게 주셨습니다. 여러분, 몸을 아프게 하고 괴롭게 하는 이 가시에 조그마한 것에라도 우리가 찔리면 참 아프고 박힌 가시를 뽑아내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다 알지 않습니까? 가시가 우리 몸에 박히면 어떻게 해서라도 그걸 뽑아내고 빼내버리려고 하지 박혀 있으면 우리는 견딜 수가 없습니다. 05:49 그런데 오늘 본문에 기록된 사도 바울이 말하는 가시는 식물의 찌르는 가시가 아닙니다. 여러 종류의 가시가 있습니다. 아담의 범죄 이후로부터 모든 인류를 찌르고 아프게 하는 가시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오늘 이 곳에 계신 여러분, 가시는 식물 종류의 가시가 아니라 그랬죠. 가시의 종류에는 외적, 내적으로 괴롭히는 '사람 가시'가 있습니다. 사람 가시. 외적인 가시는 종교적으로 진리를 대적하고 육체를 괴롭히는 가시입니다. 내적인 가시는 가정에 있는 남편, 아내, 부모, 자식 그리고 형제 등 식구들을 통하여 아프게 하고 찌르는 가시입니다. 아마 여러분들도 이 가시에 찔려본 경험이 있을 줄 압니다. 그리고 또 가시에는 물질로 오는 가시가 있습니다. 직장이나 사업 등 경제적으로 힘들게 하는 가시가 있습니다. 07:44 여러분들이 이 땅 위에 살아가는 삶 속에서 이런 가시에 다 찔려 본 줄 압니다. 또 우리를 괴롭히는 가시가 뭐 있습니까? 질병의 가시가 있습니다. 병으로 건강을 해치며 여러 가지 질병으로 육체를 괴롭히고 고통을 주는 가시가 있습니다. 여러분, 이게 다 우리가 경험해 본 가시입니다. 경험해 본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더 체질적으로 찌르는 가시가 있습니다. 체질적으로.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제가 자라날 때 키가 큰 사람은 "참 전봇대 같이 여럽다. 꼴보기 싫다"라는 소리를 많이 들었습니다. 사람들은 그에게 "야 강아지가 너 한테서 소변 볼라. 너 가만히 서 있지 마라."라고 했는데 지금은 키 큰 사람이 아주 멋지고 좋아 보입니다. 옛날에는 키가 너무 크면 보기가 흉했습니다. 또 키가 너무 작은 친구도 있었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다닐 때 내 앞 자리에 있는 친구에게 밤낮으로 '땅딸이"라고 했습니다. "도토리, 도토리 어디 있어?"그러면 그 애는 그 소리를 듣기 싫어 했습니다. 우리는 더 재미가 있어서 "도토리 이리 와, 앞에 서!" 이렇게 누군가의 외모에 관하여 말하는 것도 우리들에게 체질적으로 오는 '가시'입니다. 09:21 키가 큰 사람은 키가 큰 대로, 키 작은 사람은 키가 작은 대로, 그리고 뚱뚱한 사람은 뚱뚱한 대로 가시가 있습니다. 저랑 친분이 있는 목사님 중에 정말로 비대하고 뚱뚱한 목사가 있습니다. 제가 전에도 얘기했죠. 그가 사우나에 가서 괜히 "아 참 비계덩어리 왔다."라는 소리를 듣고 "그래, 뭐가 어째?"라고 했습니다. 벌거벗은 사람끼리 나가서 멱살을 서로 잡았는데 잡힐 게 있어야죠. 그래서 그들의 싸움을 말렸습니다. 이왕 서로 할 말이 없으면 "체격 좋다."라는 소리를 하지, 왜 비계덩어리라고 말을 합니까. 이것도 그 목사님의 아픈 곳을 찌르는 가시입니다. 또 제가 전에 바싹 말랐을 때 "박성목은 화로 근처에 가면 불 붙을까 봐 조심해야 된다."라는 소리를 들었는데 제가 처음에는 그냥 그랬지만 자꾸 그런소리를 들으니 "야, 너는 어떤 놈이냐?"라고 했습니다. 왜놈 말로 젓가락을 '와리바시'라고 합니다. 와리바시같이 생긴 놈. 바싹 마른 명태같이 생긴 놈. 제가 금식 기도하고 나서 살이 붙더라고요. 밤낮 저는 저울에 올라가서 "몇 킬로 늘었나? 몸무게가 안 늘어. 안 늘어. 안 늘어!" 그런데 우리가 바싹 마른 사람을 보고 "너 만났다." 그러면 그것도 가시예요. 10:44 그런데 우리가 이런 가시에 조금 찔려도 시간이 좀 지나가면 괜찮아져요. 이런 가시에 다 찔려봤죠? "너는 눈이 그렇게 세숫대야 만큼 커서 바람 부는 날 참 조심해야 되겠다." "너는 눈은 쪽 찢어지게 생기고 단추 구멍같이 작아서 어떻게 한 달을 볼 수 있겠니?" 이런 쓸데 없는 소리를 하는데 이런 것이 다 가시입니다. 가시예요. 그런데 이런 가시는 안 아픈 가시로 찔리면 조금 따끔하다가 말아요. 아무리 찔러도 안 아픈 가시가 있고, 찔리면 따끔하다가 마는 가시가 있고, 무서운 독가시가 있습니다. 이 독가시는 사람을 정말로 덧나게 하고 죽이는 가시입니다. 이거는 민족적으로도 국가적으로도 사람을 해치는 가시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런 독가시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에스겔 2장 6절에 보면 "인자야 너는 비록 가시와 찔레와 함께 처하여 전갈 가운데 거할지라도 그들을 두려워 말고 그 말을 두려워하지 말아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12:16 앗수르, 블레셋, 바벨론, 희랍, 그리고 로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민족적으로 말살하고 죽이고 못 살게 하는 독가시였습니다. 오늘 이곳에 계신 여러분들에게는 이런 독가시가 없기를 바랍니다. 그저 약간 찌르다가 마는 그런 가시는 우리가 아픈 척하면 그들은 재미있다고 더 찌르겨고 합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설렁설렁 넘겨버리야 합니다. 또 이런 가시가 있습니다. 이것은 집 안에도 있고 우리의 이웃에도 있습니다. "저 사람은 예수 잘 믿는다고 설치더니, 꼴 좋다. 예수한테 기도한다고 하더니 기도 안하는 우리보다 더 못하네." 저 사람은 예수를 잘 믿는다고 하는데 왜 저꼴일까?"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우리에게는 가시입니다. 여러분,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 "기도 많이 하는 권사라고 하는 자들이, 집사라는 자들이 왜 저 모양일까? 별 볼 일 없네." 이것도 가시입니다. 들어봤습니까? 이런 가시에 찔려봤습니까? "아이고, 저사람 예수 잘 믿는다고 설치더니 참 꼴볼견이다." "예수 믿는다고 하더니 병주머니 달고 다니네. 13:42 예수가 복 준다고 하더니, 저 사람에게는 복 비슷한 것도 없네." 이게 전부 환경에서 우리를 찌르는 가시입니다. 그런데 이거는 독가시가 아니에요. 설령 따끔하다 할지라도 그냥 아물고 맙니다. 오늘 이 곳에 계신 여러분들은 어떤 가시든지 가시가 되지 말고 어떤 가시에게 찔려도 상처가 빨리 아물어버리기를 바랍니다. 이건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의 때부터 지금까지 찔리고 찌르는 삶을 우리가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늘 제가 말씀드리는 이 가시들은 성도님들에게 다 한 번씩 지나간 가시들입니다. 지금도 가시가 우리를 찌르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이런 가시보다도 진리를 대적하고 사납게 달려드는 가시에 찔리지 않기를 바랍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 시민권을 가지고 있고 부모가 잘 살고 가말리엘의 학문도 이수했고, 율법 교회에서 최고로 인정받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때에 그에게는 아무 가시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가 남을 찌르는 가시가 됐습니다. 그는 기독교인을 박해하고 예수 믿는 사람을 잡아죽이는 데 앞장을 섰습니다. 15:18 그런데 예수님에게 붙들린 자가 된 이후에 그는 찌르던 자에서 찔리는 자로 바뀌었습니다. 얼마나 바울이 고통을 받고 어려움을 당했는지. 하나님이 바울이 이런 고통을 당하는 줄 아실 텐데 하나님은 그냥 나 몰라라 하고 그냥 바울을 던져버렸습니다. 여러분 보십시오. 바울이 삼층천까지 올라갔다 왔고, 그의 몸에서 사람들이 손수건을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흔들어도 병든 자가 나았습니다. 사람들이 바울을 '허메'라고 불렀고 (바울은) 놀라운 기적의 역사를 하였는데, 왜 그에게 찌르는 가시를 주었을까요? 하나님은 다 아시고 계실 텐데 말입니다. 왜 하나님은 바울이 어려움을 겪도록 하셨을까요? 여러분, 저를 포함하여 우리가 어떤 생각을 할지 모르겠습니다마는 지금은 자동차의 성능이 좋지만 제가 어릴 때는 자동차에 에어컨이 없었어요. 지금은 차에 에어컨이 있어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히터를 틀어서 안방같이 따뜻하게 유지할 수 있습니다. 지금의 차가 다 그렇습니다. 17:09 옛날에는 자동차가 그러지 못했습니다. 여름에는 먼지가 들어와도 차의 창문을 열어놔야 되고요. 겨울에는 히터가 없이 창문을 닫아놓고 그렇게 살았어요. 오늘날 차로 이동하는 이렇게 좋은 시대가 됐는데 그 때 사도 바울은 전부 육로로 다녔습니다. 고린도, 빌립보 지방으로 갈 때 바다를 건너가야 했으므로 배를 탔지만 1차, 2차, 3차 - 4차는 순교하러 로마로 갔습니다 - 얼마나 고생했는지 모릅니다. 걸어서 걸어서 가니까 얼마나 덥습니까? 그래도 걸어서 가야 돼요. 뭐 몇 백 리도 걸어서 갔으니까. 그런데 바울은 조금도 개의치 않고 갑니다. 돈벌이 하려고 가는 게 아니었어요. 돈 버는 수단이 아니었어요. 바울은 욕을 먹고도 복음 전하러 갔습니다. 그런데 모랫바람이 불어 그는 자꾸 눈을 닦아 안질이 악화되었습니다. 시력이 많이 나빠졌습니다. 역사에 보면 바울이 시력 때문에 굉장히 고생을 했다고 합니다. 18:31 그리고 그가 저녁에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할 수 있습니까? 시원한 물로 샤워를 할 수 있습니까? 그당시 샤워라는 것은 양반에게나 있는 환경이에요. 세수도 제대로 못할 지경이니까. 그는 몸에 피부병이 생겼습니다. 밤낮 설교하다가도 가려워서 긁었습니다. 저는 피부병을 앓아보았기 때문에 가려운 건 정말로 못 견딥니다. 그리고 바울이 혼자 사니까 제때 누가 먹을 걸 챙겨줍니까? 밤에 잘 자도록 만들어 줍니까? 그냥 그는 혼자 구부리고 자고 또 일어납니다. 먹을 것이 있으면 먹고 못 먹으면 굶고 이렇게 하니까 소화가 안 되어 소화 불량이었습니다. 항상 두통에 머리를 앓고. 그는 "하나님 이거 좀 고쳐주세요."(라고 했습니다.) 우리 성가대원들 여러분들의 신세가 이 지경 되면 전도길에 나서겠어요? '내 몸에 이런 일 부딪혀 오는 나를 괴롭히는 가시가.' 사탄은 천사예요. '엥겔로스 사탄'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엥겔로스는 천사거든요. 이 가시, 사탄의 가시를 바울에게 주었다. 20:35 여러분, 그는 배가 고팠을 때에 밥을 먹었고 정시에는 식사가 없었습니다. 먹을 것이 있을 때는 먹고 없으면 굶으니 소화 불량이 됩니다. 소화 불량으로 고생하는 청년들은 군대에 가면 반드시 소화 불량을 고칩니다. 정시에 정량의 식사를 하니까요. 왜냐하면 때가 되면 위에서는 위산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밥을 먹든 안 먹든 시간이 되면 위에서 위산을 뿜어냅니다. 강한 위산은 위를 깎아내립니다. 그러니까 식사를 들쑥날쑥하면 위장병에 걸리게 됩니다. 바울은 그런 고통이 너무 심해서 "하나님 좀 고쳐주세요."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일을 시키려면 일군을 먹여줘야 되고 입혀줘야 되고 재워줘야 되고 건강을 보장시켜줘야 됩니다. 그런데 무소불능하신 하나님께서 자기의 귀한 일꾼으로 쓰시면서 사탄의 사자를 그에게 보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이사야 53장 4절을 근거로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22:16 '그는 우리의 질고를 담당하신다.' 질고를 담당하시는 주님께 사도 바울은 세 번이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22:32 여러분, 주의 일을 지키려면 건강을 주셔야 되지 않습니까? 그래서 바울은 멋진 남자야. 정말로 남자 중에 참 멋진 남자야. 그는 한 번 진리가 옳다고 생각하고 그의 모든 거는 화장실의 배설물로 여겨 버리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증거하는 사도가 되었습니다. 오죽 답답해야 그가 이사야 53장 4절을 근거로 해서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간절히 기도했어요. 그런데 주님께서 "그래 내가 너의 병을 고쳐주마. 너 안질 고쳐주마. 가려운 피부병 고쳐주마. 위장병 고쳐주마."라고 하셨으면 얼마나 좋습니까? 주님이 능력이 없습니까? 능력 많으신 주님으로부터 그에게 '그것이 족하다'라는 응답이 왔습니다. 치료해 주신다는 응답이 아니라 그에게 주신 응답은 '네게 족하다'였습니다. 이 '족하다'라는 말은 헬라어로 '알케오'인데 '충분하다. 만족하다. 만족히 여기다.'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이 하셨지만 바울은 정말로 고통이었습니다. 24:08 바울은 이런 여러 가지 가시들 때문에 주님 앞에 이 문제를 내놓고 기도했는데, '족하다. 알페오'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이곳에 계신 여러분, 제가 이 성경 구절을 보면서 생각했습니다. 주님께서 "박성목, 네가 이 지경이 족하다."라고 하면 "주여, 주님이 나하고 바꿔봅시다. 한 달만." 아마도 이렇게 말할 것 같아요. 그런데 사도 바울은 주님의 '족하다'라는 말에 함구해버렸습니다. 그는 더 이상 주님 앞에 문제를 제시하지 않았습니다. 24:59 그런데 바울은 여기에 이 말을 했습니다. '교만하지 않기 위해서.' 어쩌면 그가 이런 마음을 가질 수 있었을까요? 잠언 16장 18절에 보면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라'고 했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남의 병을 고치고 치료해도 정작 자신은 여러 가지 병을 안고 있으면서 너무 괴롭고 안타깝고 답답해서 이 가시를 놓고 기도했더니 하나님이 거절을 해버렸습니다. '네가 이런 고통을 당하는 것도 족하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 모든 핸디캡과 약점 그리고 찌르는 가시를 참아가면서 복음 역사를 위해 순교할 때까지 전진만 하고 퇴보가 없었습니다.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 몸에 항상 있게 하기 위해서다. 내가 교만하면 하나님께서 떠나니까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 몸에 항상 머물러 있게 함이라.' 우리는 기도하고 응답 없으면 '하나님이 안 계신다. 하나님이 내 기도를 안 들으신다.'라고 합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응답이 늦어지는 것도 응답입니다. 26:39 때로는 하나님이 응답을 안 할 때도 있고, 그것이 언젠가 바뀌어 응답이 올 때도 있습니다. 내가 기도하고 바라던 그 응답이 아니래도 하나님은 당신의 뜻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이 곳에 계신 여러분, 하나님의 능력을 우리는 믿기 때문에 설령 내 마음의 간절하고 원하는 뜻이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하나님, 감사합니다. 살아서 그 나라만 가게 해 주시옵소서. 반드시 가시가 있다 하더라도 그 가시는 독가시가 아니면 잘 견딜 마음을 주시옵소서. 잘 견딜 마음을 주시옵소서. 내가 남을 찌르지 않게 해 주시고, 내가 남에게 찔리지도 않게 해 주시옵소서."라고 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이 땅 위에 살아가는 우리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남을 찌를 수도 있고, 나는 그저 무심코 한 말인데, 저분에게는 가시가 될 수도 있습니다. 절대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성도의 삶을 잘 영위하면서 어쨌든 바울과 같이 어떤 가시가 우리를 찌르더라도 잘 견디고 이기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인내가 필요하면 욥의 인내를 배우라고 했습니다. 28:06 욥은 내적으로 외적으로 사탄의 공격을 받아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어려움을 겪었으나 최후의 승리자가 되었습니다. 찌르는 가시인 사탄의 사자를 욥에게 보냈으나 욥은 끝까지 이겼습니다. 요셉도 마찬가지고 모세도 마찬가지고 그리고 다윗도 고통 속에서의 결과는 승리자였습니다. 오늘 이 곳에 계신 신원(vengeance/伸冤)의 종들도 견딜 수 없는 가시가 아니라면 잘 이겨주시고 잘 넘겨서 사도 바울 같은 용맹스럽고 시대에 필요한 신원의 종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9절 이하에 보면 여러 가지 어렵고 힘들고 약한 모든 이것으로 그리스도 앞에서 자랑할 것이 있게 하기 위해서다라고 바울은 말합니다. 이러면서 10절에 바울은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 몸에 항상 유지되게 하기 위해서 약한 것과 능력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함을 기뻐한다고 했습니다. 오늘 이 곳에 계신 여러분, 이것은 신에 의해 완전히 뒤집어진 사람이 아니고는 참 어렵고도 힘든 일입니다. 이렇게 이겨 나간 사도 바울에게는 동족의 가시가 있었고, 이방의 가시가 있었고, 30:03 율법교회의 가시가 있었고, 헬라인의 가시가 있었습니다. 그는 많은 가시에 찔러도 잘 이겨 나갔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들에게 어떤 가시가 있어도 독가시가 아니면 이기시길 바랍니다. 이기는 자가 최고의 승리자가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의 그릇을 만들기 위해서 기쁘게 깍고 갈고 닦고 다듬습니다. 이런 놀라운 역사가 일어날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을 갈고 있을 때는 여러분은 괴롭습니다. 닦을 때도 괴롭습니다. 또 문지르기도 하십니다. 이것은 다 가시가 하는 짓이에요. 아파도 뽑아내며 참고 잘 견뎌야 합니다. 가까운 데서나 먼 데서나 찌르고 괴롭힐 때에. 여러분들은 이렇게 생각하면 돼요. '오늘 한 대 찔리고 맞았더니 내가 예방 접종 한 대 맞았구나.' 여러분, 따라 합시다. "예방 접종 맞았구나." "저 가시가 나를 찌를 때 나는 예방 접종을 맞았구나." 여러분, 예방 접종이 뭡니까? 미리 균을 몸에 넣어 감염을 시켜고 면역이 생기게 하여 병을 이기게 하는 것입니다. 31:54 아마 내일부터 나이 든 사람부터 독감 예방 접종하라고 공문이 올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그들의 몸에 독감 균을 넣어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면 면역이 생깁니다. 그래서 가시에 많이 찔리면 면역이 생겨요. 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 정도 쯤이야." 가시에 안 찔려 본 사람은 깜짝 놀라지만 좀 찔려 본 사람은 "찔려도 안 아프네."라고 말합니다. 여러분들은 "찔러도 따끔하네. 이게 독가시가 아니네. 하나님이 나를 갈고 있구나. 나를 닦고 있구나. 깎고 있구나. 예방 접종을 놓아주시는구나." 이러면서 이기는 자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의견쓰기

0
0/500

Google 계정 또는 브라우저 지갑(MetaMask 등)으로 로그인할 수 있습니다.

아직 댓글이 없습니다. 첫 댓글을 남겨 보세요.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