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생과 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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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6 권

영생과 계명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곧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다" — 요한복음 17:3
"십계명은 하나님과 나와의 일대일 계약이다."

저자 박성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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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생과 계명 책 표지
영생과 구원을 상징하는 이미지

이 땅에서 재물이 많아 풍요로운 생활을 하며 세상에 높은 지식과 학문을 고루 갖춘 자가 율법을 완벽(完璧)하게 지켰다고 해도 영적인 면에 곤고(困苦)하고 특히 영생 문제가 풀리지 않은 자들에게는 항상 어두운 생활이 될 수밖에 없다.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는 자들이 우상과 관계를 끊지 못할 때 몸의 구속이나 내세의 영광을 바라볼 수가 없고 창조주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가 없다.

하나님 앞에서 다른 신을 섬기는 자는 구원을 받을 수가 없고 영생은 생각조차 할 수가 없기 때문에 사망에 이르는 범죄라고 했다(요한일서 5:16).

책 머리에

책 머리에

문자(文字)가 없던 원시시대에는 인류의 조상들이 삶의 표현이나 의사 소통은 그들이 남겨 놓고 떠난 벽화 속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그 옛날에는 상형문자로 어떤 형상이나 그림을 그려 자기의 뜻과 생각을 어느 정도 전달하였으나 문서로 남길 수는 없었다.

그러나 문자의 등장과 함께 인간의 지식이 발달하게 되므로 기록해 놓은 역사를 고고학자들을 통하여 계속 발굴이 되고 있다. 여호와께서도 천지창조와 인류역사를 수천 년이 지나도록 함구하시고 계시다가 출애굽 때 비로소 모세를 통하여 완전히 공개를 하셨다.

이러한 과정이 밝혀지기 전까지는 전혀 알 수 없었던 일들을 파피루스(papyrus)양피(羊皮)에 문자를 기록할 수 있을 때에 와서 하나님께서 히브리 민족의 조상이 누구라는 것과 그 후손들이 이방의 객이 되는 과정에서부터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까지의 전 과정을 말씀 하셨다.

이러한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400년 간 종노릇을 하다가 바로의 압제에서 벗어나 홍해를 육지같이 건너고 신 광야를 거쳐 시내산 아래에 와서 율법을 제정해 주시면서 그 중에 제일 핵심이 될 수 있는 중요한 부분을 돌비에 새겨서 고향을 찾아가는 백성들에게 꼭 지켜야 할 법을 주신 것이 십계명이다.

출애굽 과정의 모든 역사와 계명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하여 세운 것 같지만 최종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피로 구속받은 성도들에게 모두 해당이 되게 하셨다.

하나님의 백성 된 자들이 현대판 광야 길을 통과하며 안식세계에 들어가는 데에 꼭 필요한 계명이 되었다. 이 사실을 증명해 주시기 위하여 공관복음에 부자 청년과 율법사와 관원이 예수께 찾아와서 영생에 관한 질문의 답변은 십계명을 잘 지키라고 하신 것이다.

십계명 중에 예수께서 말씀하시지 않은 네 계명(1~4계명)은 직접 범죄로 나누고 나머지 5계명부터 열 번째 계명은 간접 범죄로 나누는 것이 옳은 것 같다.

독자들 중에는 공감을 할 자들도 있고, 한편으로는 지나친 해석이라고 질타할 수도 있으나 심도 있게 분석해 보는 것이 신앙의 보탬이 될 것 같아서 과감하게 졸필(拙筆)을 들게 된 것이다.

끝으로 "영생과 계명"이라는 소책자가 나오기까지 늘 기도해 주시고 물심양면으로 협력해 주신 분들과 출판을 위하여 밤을 새워가며 혼신의 힘을 기울여 수고해준 동인교회 젊은 용사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

2015. 11. 15

저자 박성록 목사

영생과 계명

영생과 계명

어떤 사람이 주께 와서 가로되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찌하여 선(善)한 일을 내게 묻느냐 선한이는 오직 한 분이시니라 네가 생명(生命)에 들어 가려면 계명(誡命)들을 지키라 가로되 어느 계명이오니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거짓 증거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니라 그 청년이 가로되 이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사오니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온전(穩全)하고자 할찐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寶貨)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마 19:16~22)

예수께서 길에 나가실새 한 사람이 달려와서 꿇어 앉아 묻자오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네가 계명을 아나니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거짓 증거하지 말라, 속여 취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느니라 여짜오되 선생님이여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키었나이다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가라사대 네게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 그 사람은 재물이 많은고로 이 말씀을 인하여 슬픈 기색(氣色)을 띠고 근심하며 가니라(막 10:17~22)

어떤 율법사(律法師)가 일어나 예수를 시험하여 가로되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 대답하여 가로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行)하라 그러면 살리라 하시니(눅 10:25~28)

어떤 관원(官員)이 물어 가로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네가 계명을 아나니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거짓증거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느니라(눅 18:18~20)

공관복음(마태, 마가, 누가)에서 영생문제에 대한 질문과 예수께서 대답하신 내용의 공통점은 십계명 중에 1~4계명은 거론하지 않으시고 5~9계명을 잘 지키라고 하였으며 마태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이 추가 되어 있다.

누가는 또 마음과 목숨뿐 아니라 힘과 뜻을 다하여 하나님 사랑과 이웃을 자신의 몸과 같이 사랑하는 계명까지 포함이 되어 있지만(레 19:18, 신 6:5), 마가만은 속여 취하지 말라는 구절을 삽입해 놓았다(막 10:19).

영생문제로 인하여 예수께 찾아온 자들을 유형(類型)별로 살펴보면 마태는 어떤 사람이라고 하였으나 22절에는 재산(κτῆμα 크테마)이 많은 청년(νεανίσκος 네아니스코스, 젊은이)이라고 하였다(마 19:22).

마가는 예수께서 길을 가실 때에 한 사람이 달려와 무릎을 꿇었다고 하는 그분도 역시 재물(재산)이 많다고 소개가 되어 있다(막 10:22).

누가는 어떤 율법사와 어떤 관원이라고 한 본문을 종합해 보면 여기에 나오는 사람들은 모두 세상 물질 문제에 아무 걱정 없이 살아가는 자인 동시에 지도자의 위치에 있는 자들이다(눅 10:25, 18:18).

1. 십계명과 영생문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생은 본능적으로 오래 살기를 소원하고 있으며 수많은 사람들이 죽지 않고 장수하기 위하여 무한한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지만 그 해답은 성경에서만이 찾을 수가 있다.

공관복음에 기록된 말씀을 보면 어릴 적부터 율법을 잘 지킨 부자 청년이나 율법사관원이 예수께 와서 질문한 내용들은 모두 영생에 관한 문제였다.

세상적으로 직위가 높은 자들이나 재물이 많은 사람이라고 하는 말만 들어도 이 땅에서 부러울 것 없이 사는 자들이다.

젊은 나이에 부(富)와 명예(名譽)를 다 가진 것을 보면 세상에서 일찍 출세(出世)한 사람인 것 같다. 더욱이 정치, 종교가 부패한 시대에 율법을 잘 지키며 살았다는 것은 누가 들어도 존경 받을 만한 일이다.

이런 신앙인들은 대개 로마 정부에서 임명한 관리(官吏)는 아니다. 이렇게 훌륭한 지도자의 위치에 있고 상류층에 속한 사람이 율법에 능통(能通)한 랍비들을 찾아가지 않고 예수께 온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세 부류의 사람들(부자청년, 율법사, 관원) 중에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하여 온 자도 있지만 주께 와서 무릎을 꿇었다는 것을 보면 대단히 겸손하고 모범적이며 예의를 갖춘 사람인 것을 직감할 수가 있다.

보통 유대인들은 자녀의 나이가 5~6세가 되면 하나님에 대하여 초보적인 공부를 시키며 12세가 될 때부터 율법계명을 따라 살아가도록 한다.

부자 청년이나 율법사관원은 어릴 적부터 율법을 배우며 엄한 가문에서 교육을 받아왔고 신앙생활을 잘 했다고 하지만 영생문제만은 자신이 없었다.

아무리 좋은 환경에서 열심히 계명을 지켰어도 그들은 영생을 소유하지 못하고 늘 마음에 고민을 하던 어느 날 예수께 와서 그 해답을 얻으려고 한 것이다.

세상적으로는 흠잡힐 것이 없을 정도로 깨끗하게 살아도 영생문제로 부딪치는 갈등은 힘든 육체노동보다 견디기가 더 어려웠던 것 같다.

이들의 심적 상태를 가늠해보면 아주 곤고하고 예민해진 가운데서 항상 불안하게 살다가 아주 절박(切迫)함을 느낀 끝에 예수께 와서 시원한 대답을 듣고 싶어 하였다.

관원은 원어로 아르콘(ἄρχων)인데 왕, 지배자, 우두머리, 권세 잡은 자, 통치자, 두령(頭領), 산헤드린 공회원 등으로 신약성경에 37회나 다양하게 기록되어 있다.

그 중에는 관원이나(눅 23:13, 행 7:27), 법관으로 쓰여진 데도 있고(눅 12:58), 임금(요 12:31), 권세 잡은 자(엡 2:2), 당국자들(요 7:48)이라고 기록된 곳도 적지 않다.

1)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ἀγαθὲ 아가데
선한
τί
무엇을
ποιήσω 포이에소
내가 하여야
ἵνα 히나
(려면)
ζωὴν 조엔
생을
αἰώνιον 아이오니온
κληρονομήσω 클레로노메소
얻으리이까(상속하다, 유업을 얻다)

이 땅에서 재물이 많아 풍요로운 생활을 하며 세상에 높은 지식과 학문을 고루 갖춘 자가 율법을 완벽(完璧)하게 지켰다고 해도 영적인 면에 곤고(困苦)하고 특히 영생 문제가 풀리지 않은 자들에게는 항상 어두운 생활이 될 수밖에 없다.

부자 청년율법사관원이 바라는 영생은 사후에 오는 부활이 아니라 육신의 몸을 가진 그대로 죽지 않고 영생할 수 있는 비결(秘訣)을 찾으려고 예수께 질문을 한 것이다.

이들은 율법에 따라 하나님을 섬기며 모범적으로 신앙생활을 해도 죽음문제만은 인간의 힘으로 해결할 수가 없었다. 보통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을 의존하기보다 과학이나 의학의 기술을 통하여 장수하려고 애를 쓰는 것이 공통적이지만 예수께 찾아온 자들은 신앙을 가진 종교인이라는 특성 때문에 하나님을 찾게 된다.

그 당시에 계명을 열심히 지킨 부자 청년율법사관원이 예수께 와서 어떻게 하여야 영생을 얻을 수 있느냐는 질문에 다른 말씀은 하시지 않고 그들이 잘 알고 있는 십계명 안에서 대답을 해 주셨다.

어린 유년시절부터 율법 안에서 살아온 자신들에게 또 다시 계명을 잘 지키라는 말씀은 새롭게 받아들일만한 내용이 아니었다.

예수께서 영생문제를 말씀하실 때에 십계명 중에 일부분만을 거론(擧論)하신 것은 무슨 이유일까? 상식적으로 생각을 해도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고 해야 정상적인 답변이다.

지금까지 십계명에 대하여 유대인들이나 현재 기독교인들까지도 영적인 면을 보지 못하고 육적 문제에만 초점을 맞추다 보니 더 중요한 진리를 발견하지 못하고 있는 부분을 예수께서 지적해 주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두 돌판에 열 가지 계명을 새겨 모세의 손에 들려주신 것은 단순히 출애굽 한 백성들이 가나안을 향해 가는 데 필요한 단회적인 법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

신약시대에 천국에 들어가는 성도들이 지켜야 할 계명이라는 것을 믿고 풀어나가야지 문자 그대로 해석을 하면 세상 법에 저촉(抵觸)이 되고 만다.

만약 십계명출애굽 한 백성들에게만 국한(局限)시켜 놓은 계명이라면 예수께서 영생문제와 결부시킬 이유가 없다.

주께서 부자 청년율법학자관원 앞에서 십계명을 가지고 나오신 배경에는 신약시대의 지도자들이 성도들에게 바로 가르치지 못하면 영생을 놓치는 심각한 문제가 발생된다는 경고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지도자의 위치에 서있는 자들은 현대판 광야생활에서 성도들을 말씀으로 양육하며 바르게 인도해야 사망을 이기고 영생할 수 있는 진리가 되는 것이다.

2) 계명을 지켜라

τηρήσον 테레손
지키라
τὰς 타스
(그)
ἐντολὰς 엔토라스
계명들을

지금까지 십계명을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은 위로 하나님과의 문제는 대신관계로 나누고(1~4계명) 아래로 인간 사회에서 지킬 규칙과 법으로 규정을 지어 대인관계로(5~10계명, 여섯 가지) 나누어 놓았다.

전자는 하나님 앞에 지켜야 할 법으로 단정을 짓고 후자는 이 땅 위에서 살아가는 인간들 상호간에 지킬 윤리적인 민법(民法)정도로 알고 있는 것이 일반 상식이다.

현재 잘못 나누어 놓은 계명도 정리를 해야 하겠지만 예수께서 영생에 대한 답변을 하실 때에 왜 1~4계명은 말씀하시지 않고 5계명에서부터 시작하셨을까라는 의문이 생기게 된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아도 다른 신을 만들어 섬긴다거나 이방신과 타협을 하면 하나님과 원수가 되고 큰 구원과 영생에 제동이 걸리는데도 예수께서 이 중요한 계명들에 대하여 함구하신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하나님의 백성들이 우상과 관계를 끊지 못할 때에는 몸의 구속은 물론 내세의 부끄러운 영혼구원도 바라볼 수가 없다고 말씀을 하셔야 정답일 것이다.

영생문제에 제일 중요한 것이 1~4계명이란 것을 잘 아시는 예수께서 왜 이 부분을 한 번도 거론하지 않으시고 다섯째 계명에서부터 시작하여 열 번째(여섯 가지)까지, 즉 살인하지 말라(6계명), 간음하지 말라(7계명), 도적질하지 말라(8계명), 거짓 증거하지 말라(9계명), 속여 취하지 말라(10계명), 네 부모를 공경하라(5계명)는 십계명의 순서까지 초월하여 말씀을 하셨을까라는 궁금증이 해소되지 않고 있다.

상식적으로 판단을 해도 우상숭배에 관한 말씀은 전혀 언급하시지 않은 것이 참으로 이상하다. 예수께서 여섯 가지 계명(5~10계명)만 잘 지켜도 영생할 수 있다는 뜻으로 말씀하시지는 않았을 것이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내용을 가지고 학자들은 그 당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하나님과 관계되는 1~4계명은 잘 지키고 있으나, 나머지 여섯 가지 계명은 죄악세상에서 사는 자들끼리 일어날 수 있는 범죄를 미리 차단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또 일부에서는 대인관계의 법을 등한히 여기거나 지키지 않는 자들을 비판(批判)하고 각성케 하기 위하여 말씀하였다는 것이다.

그 외에도 상황윤리(狀況倫理)적으로 해석하는 자들은 젊은 청년들이 가장 범죄하기 쉬운 것이 이성문제와 물질 관계로 보기 때문에 앞에 네 가지 계명을 생략하고 쉽게 죄를 지을 수 있는 부분을 먼저 지적한 것이라는 주장을 하고 있으나 이 모두가 예수님의 뜻과는 거리가 너무 멀다.

영생문제로 고민하는 자들에게 대답하신 주님의 뜻은 찾지 않고 물질문제와 이성 간의 범죄를 막기 위한 차원에서 하신 말씀이라고 한다면 석연(釋然)치 않은 부분이 너무나 많다.

이 계명의 뜻과 근본 취지(趣旨)는 희석(稀釋)시켜 버리고 젊은 세대들의 올바른 교육을 위한 훈계정도로 생각을 한다면 주님의 대답이 질문한 자의 생각과는 아주 어긋나게 되고 오히려 갈등만 증폭시킬 뿐이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중요 핵심은 영생문제를 다루는 자의 책임이 얼마나 막중(莫重)한가를 강조하실 때 그 초점을 지도자에게 맞추어 놓은 것을 알아야 한다.

십계명 속에 감추어져 있는 비밀을 문자적으로 보지 말고 영적인 면을 잘 분석하여 영생할 수 있는 진리를 찾아 전하는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는 취지로 하신 말씀을 가지고 인본주의 사상으로 풀어버리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강조하신 여섯 가지 계명과 그 앞에 거론하지 않은 네 가지 계명 전체 내용을 심도(深度)있게 분석하면서 연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십계명은 신약시대에 천국을 소망하며 신앙생활을 하는 성도들에게 큰 지침서(指針書)가 되기 때문에 잘 가르쳐서 영생을 놓치지 않고 약속의 땅을 밟을 수 있도록 지도해야 한다.

2. 십계명은 하나님과 나와 일대 일의 계약

출애굽기 20장 1~17절에 기록된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너희라고 하는 단어를 한 번도 쓰지 않았다. 거대한 민족이 출애굽을 했는데도 복수(複數)때 사용하는 대명사를 쓰지 않고 서론에서부터 결론까지 한 사람에게 지칭(指稱)하듯이 너라는 단수(單數)의 명칭을 계속 사용하셨다(출 20:1~2).

이스라엘 민족 전체가 움직이는데도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해 냈다고 하신 것을 보면 큰 단체이지만 하나님은 그렇게 보시지 않고 개개인이 지켜야 할 법으로 정해 놓으신 것이다.

이러한 말씀 속에는 주님의 나라에 들어갈 자는 각자 스스로 하나님과 나 사이에서 지켜야 할 일대 일의 법칙이라는 것을 알게 해주신 것을 그냥 쉽게 넘겨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들은 영생과 직결되는 법 중에 제일 먼저 우상을 만들거나 섬기는 일만은 반드시 배격(排擊)해야 한다.

만약 천국을 목적하고 살아가는 성도들이 그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약속의 말씀을 붙들지 않고 등한히 여기며 불순종 하거나 우상 앞에 머리를 숙이는 것은 하나님께서 금하신 법을 위배하는 범죄 행위이다.

겔 14:12~20 : 개인구원, 참혹한 네 가지 심판 : 기근 (13~14), 사나운 짐승(15~16), 칼(17~18), 온역(19~20)의 재앙이 내릴 때 노아, 다니엘, 욥, 세 사람이 있어도 이들은 자기의 의로 자기 생명만 건지게 될 것이라고 했다. 계 6:7 청황색 말】

3. 직접 범죄와 간접 범죄

모세 5경 중에서 제일 핵심이 되는 계명 열 가지를 두 돌판에 기록해 주시고 고향을 찾아가는 자들에게 반드시 지켜야 할 강령(綱領)이 되게 하셨다. 돌비에 새겨놓은 계명 하나하나가 독립성을 띠고 있는 동시에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깊은 관계를 맺도록 서로 연결이 되어 있는 것이 아주 특이하다.

이러한 성문법(成文法)은 히브리 민족들만을 위한 법으로 알고 있다가 그 이면에 숨겨져 있는 영적인 부분을 바로 찾아내지 못하면 하나님의 뜻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 버린다.

십계명 전체를 인위적(人爲的)인 방법으로 1~4계명은 하나님과 피조물인 인간과의 관계로 나누어 놓고 5~10계명은 이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끼리 상호 간에 지켜야 할 도덕적인 법으로 분리하여 가르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에 대하여 냉철하게 분석하여 답을 찾아야 한다.

기독교인들이 십계명을 접할 때 제일 먼저 하나님을 잘 섬기는 법과 세상 윤리적인 범죄에 관한 것이라고 지도를 받아왔기 때문에 당연한 줄로 알고 있다.

지금까지 십계명에 대하여 알고 있던 고정관념(固定觀念)을 버리고 나와 하나님 사이에 직접(直接) 범죄와 간접(間接) 범죄로 분리하여 해석을 하는 것이 신앙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앞으로는 열 가지 계명 모두 하나님과 나 사이에 영적인 문제로 접근을 하면서 직, 간접 범죄가 무엇인가를 바로 알려주어야 영생을 갈망하는 자들에게 중요한 핵심(point)이 될 수 있다(살아서 안식세계에 들어갈 자들을 제외하고는 열 가지 계명을 잘 지키지 못해도 예수 십자가 피로 얻게 될 영혼구원에는 별문제가 없다).

1) 직접 범죄

조금 생소(生疎)한 느낌이 들겠지만 십계명을 대신(對神)관계와 대인(對人)관계로 나누어 보지 말고 열 가지 계명 모두를 나와 하나님과 직접 관계되는 말씀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십계명 중에 1~4계명을 맨 앞 부분에 기록해 놓으시고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만들거나 섬겨서는 안 된다고 하신 것은 무엇보다도 구원과 영생문제에 있어서 대신 관계가 잘못되지 않도록 하시기 위한 목적이다. 그리고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속에 있는 것들 중에 어떠한 형상(形象)이나 모양을 만들어 놓고 엎드려 절하거나 섬기는 행동은 하나님 앞에 용서 받을 수 없는 범죄라는 것을 지적해 주셨는데도 불순종하는 것은 심판을 피할 수 없는 행위이므로 사망에 이르는 범죄라고 말씀 하셨다(요일 5:16).

경배의 대상은 오직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있을 수가 없고 구원과 영생까지도 창조주를 통하지 않고는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려 주셨는데도 어리석은 인간들이 우상을 만들어 놓고 그 앞에 엎드리며, 그 신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하나님을 모독(冒瀆)하는 짓이다. 특히 우상을 섬기는 행위는 하나님이 제일 싫어하는 간음죄에 해당이 된다는 것을 지적하시며 자녀들아 너희 자신을 지켜 우상에게 멀리하라는 것도 십계명 중에 1~4계명에 속한 내용을 말씀하셨다(요일 5:21).

이러한 법은 모두 살아서 영생할 자들은 신중(愼重)하게 받아들이고 지켜야 할 계약서이기 때문에 한 계명이라도 등한히 여기거나 실족하여 넘어지면 계명 전체를 범한 죄가 된다. 야고보서 2장 10~11절을 보면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에 거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 간음하지 말라 하신 이가 또한 살인하지 말라 하셨은즉 네가 비록 간음하지 아니하여도 살인하면 율법을 범한 자가 되느니라"고 하신 말씀 속에는 살아서 안식에 들어갈 자들이 범죄하면 영생을 놓치게 된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만약에 직접 범죄(1~4계명)와 간접 범죄(5~10계명)에 대하여 한 계명이라도 어겼을 때에는 잘 지킨 다른 계명까지 모두 범죄한 것으로 인정하게 되므로 우리는 항상 죄를 지을 수 있는 환경에 노출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아주 조심해야 한다.

① 첫째 계명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찌니라"(출 20:3)

하나님을 격노케 하는 죄를 범하지 않기 위하여 우상을 가까이 하지 말라는 말씀을 맨 앞부분에 기록해 놓은 것도 큰 의미가 있다. 모세를 앞세워 노예 민족을 해방시킨 여호와께서 홍해를 건너고 신 광야를 거쳐 시내산 아래에 와서 하나님을 바로 섬길 수 있는 법령을 제정해 주실 때에 우상 섬기는 범죄를 저질러서는 안 된다는 것과 하나님만 바라보고 살아가는 백성이 되라는 것이다. 이들이 우상의 소굴인 애굽 땅에서 이방 민족과 섞여 살 때에는 하나님께서 질투하는 일이나 진노하신다는 말씀이 없었다.

애굽 땅에 기거하는 동안은 대소사(大小事)에 문제를 삼지 않으시고 너그럽게 보셨으나 유월절 양의 피를 통하여 광야에 나온 이후부터 이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어떤 분이라는 것을 알게 해주신 이후에는 엄하게 다스리셨다. 그 한 예(例)로 천하를 호령하던 바로 왕을 굴복시키고 출애굽의 기적을 보여 주신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않고 애굽인을 본받아 우상을 만들어 섬기거나 다른 신과 접촉하는 행동은 하나님을 노엽게 하는 범죄라는 것을 시내산 아래에서 일어난 사건을 보면 잘 알 수가 있다.

유월절이라는 절기에 피의 언약을 맺게 하시고 죽음의 땅을 떠나게 해주신 하나님을 잘 받들어 섬기지 않고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놓고 그 앞에서 먹고 마시며 춤을 추다가 동족의 칼에 3천 명이나 희생되었다(출 32:1~29, 신 9:16~22). 죽음의 쇠사슬을 끊고 노예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해 주신 은혜를 잊어버리고 우상숭배에 동참한 자들을 하나님이 노(怒)하셔서 그들에게 약속의 땅을 허락하지 않으시고 광야에 쓸어버린 것은 후세들에게 교훈을 삼게 하신 것이다(고전 10:11). 신약시대 역시 허물과 죄로 죽었던 자를 예수 십자가 피의 은총을 입혀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시고 천국을 향해 가는 길을 열어 주셨는데도 그 사랑을 외면하고 세상과 타협하며 우상을 가까이 하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이 하나님을 격노(激怒)케 하는 행동이 된다.

② 둘째 계명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形像)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출 20:4~5)

약속의 땅을 찾아가는 백성들에게 어떠한 피조물이라도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경배의 대상으로 삼는 것을 먼저 금해놓으셨다. 애굽 땅을 떠나온 이후부터 이들에게 하나님만 바라보게 하기 위하여 어떤 조각이나 형상을 제조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동시에 그 나라의 생활풍습까지 다 버리도록 하신 이유를 알아야 한다. 하나님이 정해주신 법을 순종하는 자에게 한없이 오래 살고 천대까지 복을 받게 해주시겠다고 약속을 해 주셨으나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불순종하는 자들에게는 아비로부터 3~4대까지 저주가 내려간다는 무서운 경고도 함께 해 놓았다.

이러한 말씀들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국한(局限)된 계명으로만 보지 말고 오늘날 십자가 피로 구속받은 성도들에게도 해당이 되는 법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하나님은 자기의 아들을 이 땅에 보내셔서 죄를 담당케 하시고 그 피로 친자녀가 되게 하시며 내세까지 약속해 주셨는데도 구속(救贖)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우상 앞에 머리를 숙인다는 것은 하나님께 배은망덕(背恩忘德)한 범죄 행위이다. 과거 짐승의 피를 가지고 고향 가던 백성들에게 우상 숭배로 인하여 질투하시고 무섭게 보복하신 하나님께서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속죄함을 입은 자들이 천국을 향해 가면서 우상숭배자들과 타협을 할 때에는 더 엄한 징벌을 내리실 것이다.

③ 셋째 계명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妄靈)되이 일컫지 말라"(출 20:7)

둘째 계명까지는 우상을 만들거나 이방신을 섬기는 자들과 타협하는 것을 금지하셨지만 셋째 계명에는 하나님 자신의 이름까지도 가증스럽게 부르지 말라고 하셨다. 여호와의 성호(聖號)는 그분의 존재와 영광을 상징하는 것이므로 죄인들이 함부로 경하게 불러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 자신은 거룩하고 성결한 분이시기에 그 고귀(高貴)하신 이름을 가증한 입술로 망령되게 부르거나 남용(濫用)하는 자를 중범죄로 다스리겠다는 경고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친백성이라도 여호와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거나 피조물 된 죄인들이 경하게 여기다가 하나님께로부터 화를 당할 수 있다는 뜻이다.

과거뿐 아니라 현재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기를 두려워하여 나의 주인이라는 칭호로 아돈(!wOrea'), 또는 아도나이(yk'da.)라고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④ 넷째 계명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출 20:8~10 본문생략)

안식일 제도나 제사법은 출애굽 이후 시내산 밑에 진을 치고 있을 당시에 모세를 통하여 여러 가지 제사법과 백성들이 지켜야 할 민법까지 제정(制定)해 준 것은 이방 민족과 구별된 사랑을 하나님께서 나타내신 것이다.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제 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문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찌니라"는 말씀도 고향 가는 백성들이 지켜야 할 법으로 정해 놓으셨다.

출애굽 이전까지는 선민들에게 정해진 제사 제도나 안식일의 개념도 없거니와 지키라는 법도 제정해 주시지 않았으나 다만 하나님의 백성 된 증표로 할례법만이 명맥(命脈)을 이어가고 있었기 때문에 크게 문제될 것이 없었다. 그러나 유월절 양의 피를 가지고 광야에 나온 이후부터는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는 법을 정하시고 그 명하신 제도에 따라 순종하는 자만이 안식할 땅에 들어갈 수 있다는 약속이다. 이 안식일의 기원을 보면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엿새 동안에 다 만드신 후에 일곱째 날에 첫 안식을 하시면서 그의 백성 된 자들도 이 날을 기념하여 지키는 자에게 복을 주시겠다고 언약을 세우신 것은 먼 훗날 안식세계와 연관시키기 위함이다(창 2:1~3). 그러므로 안식일 제도는 장차 고향 가는 백성들이 이 날을 하나님께 감사하며 지키도록 정해주신 법을 인간들이 자기 마음대로 이용하는 것은 불법이다. 이 백성들이 지켜야 할 많은 율법 가운데 안식일 법을 정해 주신 것은 하나님을 얼마나 신뢰하고 순종하는가를 보시기 위함이라고 하였다.

광야생활을 하는 자들이 율례와 법도를 잘 준수(遵守)하느냐에 따라 축복과 환난의 길이 되고 영생과 사망의 관건(關鍵)이 되기 때문에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서 약속해 놓은 법을 따르는 것이 참으로 중요하다. 하나님께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허락하시면서 창조의 안식일을 잊지 않고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고 하신 말씀 속에는 먼 훗날에 그리스도와 함께 누리게 될 천년안식을 염두에 두신 것이다(참고. 박성목 목사 저서 "때가 차매" 안식일의 변천사). 안식일에 온 가족이 함께 하나님의 집에 모여 제사를 드릴 때에 자기에게 속한 남녀종들뿐 아니라 육축과 문 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다 같이 제사에 열중하도록 하였다. 신약시대에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받은 백성들이 사망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주의 날을 감사히 지키며 안식세계에 들어가도록 창조의 안식과 서로 상관관계(相關關係)를 맺게 해놓은 것도 이유 없이 하신 것은 아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엿새 동안 힘써 일을 하고 안식일을 지키라는 말씀을 하셨으나 광야에서는 경작할 땅도 없거니와 한 곳에 오래도록 머물러 있을 수가 없다. 하나님의 지시대로 곧바로 움직여야 하고 낮에는 구름이 인도자가 되고 밤에는 화염이 앞서서 이끌어 가는 대로 따라가기만 하면 되기 때문에 그들에게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는 뜻 자체가 무의미하다. 구름이 동쪽에서 피어오를 때에 제사장의 출발 신호와 함께 민족 전체가 하나님의 지시하시는 곳에 도착해서 장막을 설치했다가 떠날 때 해체하는 일을 반복하는 동안은 안식일에 관하여 크게 염려할 것은 없다. 다만 만나가 내리지 않은 날에는 미리 2일 동안 먹을 양을 거두어들이기만 하면 된다. 이 백성들이 광야 40년 간 유랑민(流浪民) 생활을 하는 동안 단체이동이 계속되고 하나님께서 명령하시는 대로 급히 서둘러 옮겨 가는데 안식일을 잘 못 지킬 이유는 없을 것이다.

넷째 계명 역시 출애굽 한 백성들에게 안식일의 중요성을 강조하였지만 신약시대에 천국을 향해 가는 성도들에게 맞추어 놓은 제도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예수 십자가의 피로 구속받은 성도들이 주일을 지키며 안식할 땅을 찾아가도록 하시기 위하여 먼저 짐승의 피로 출애굽을 시킨 백성들에게 안식일 법을 준수케 하시므로 훗날 신약시대의 거울로 보여주셨을 뿐이다. 그들이 약속의 땅을 향해 가면서 하늘의 만나와 반석의 생수를 공급받은 것도 신약시대에 예수 그리스도 자신을 나타내셨고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인도 역시 성부와 성령의 역사가 나타날 것을 음성적(陰性的)으로 알려 주신 것이다. 주님은 오늘날에도 그리스도의 음성을 듣고 주님의 음성을 따라 하는 자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 음성을 버리고 주님의 음성을 따라가지 않는 자들에게는 징벌을 내리신다(눅 11:20, 마 7:23).

2) 간접 범죄

지금까지는 직접 범죄에 대한 계명을 거론하였으나 이후부터는 간접 범죄가 무엇이며 어떻게 진행이 되는지를 검토해 보아야 한다. 십계명의 맨 앞부분에 기록된 네 가지 계명(우상문제와 안식일)은 하나님 앞에서 직접 범죄지만 그 나머지 여섯 가지 계명은 타인에게 죄를 짓지 않도록 하라는 명령은 간접 범죄에 해당이 된다.

그러나 현재 기독교인들은 영적인 부분을 생각지 못하고 오랜 세월동안 육적으로만 부각시켜 왔기 때문에 성도들의 머릿속에는 이미 세상적인 범죄라는 생각이 굳어져 있다. 이러한 습성에 젖어 있다보니 십계명 전체를 문자대로 해석을 해도 이의(異意)를 제기하는 자도 없고 육체적인 범죄로 풀어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고 있는 실정이다. 다만 성도들의 마음속에는 예수 십자가 안에서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고 맡은 직분에 충성하면 천국에 간다는 자부(自負)심만 가지고 있을 뿐 영적인 면은 아주 빈약해져 버렸다.

아무리 하나님을 잘 섬기며 봉사를 잘해도 말씀 해석의 원칙을 벗어날 때에 그 열심은 오히려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행위가 되고 대적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이 직접 범죄(1~4계명)에 가담하지 않았다고 해도 말씀을 가지고 간접 범죄(5~10계명)로 남을 실족케 하여 넘어지게 하면 무서운 책임이 자신에게 돌아온다. 이 땅에서 일어나는 여러 종류의 직, 간접 범죄가 많지만 일반 성도끼리 주고받는 대화중에 진리에서 벗어난 말을 하거나 신앙을 탈선시키는 행동은 영혼을 죽이는 살인죄가 된다.

특히 지도자의 잘못으로 한 생명이 희생되거나 사망의 덫에 걸려 영생을 놓치게 했을 때에 그 가르친 자의 죄목은 간접 범죄에 해당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5~10계명(여섯 가지)의 내용 하나하나가 어떤 성격을 띠고 있는 범죄인지 세밀하게 분석을 하여 확실하게 알리는 것이 지도자뿐 아니라 성도가 사는 길이다.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이나 살인, 간음, 도적질, 거짓 증거, 남의 것을 탐내는 것들을 문자 그대로 대인관계에서 일어나는 범죄로 계속 다루다가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뜻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갈 수가 있다. 현실적으로 십계명 속에 감추어져 있는 부분을 정확히 찾아내지 않고 세상 법에 맞추어 정죄하는 자들은 간접 범죄자라는 오명을 씻을 수가 없다.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인데 바른 해석을 하지 못하는 자들이 복음을 전하는 자체가 위증죄(僞證罪)가 되고 무조건 믿고 따라가는 자도 낭패를 당하게 된다는 것을 유념해야 된다.

예수께서 영생문제의 답변을 5계명부터 말씀하신 중요 핵심은 육적이 아니라는 전제하에서 하나씩 살펴보면서 세심하게 검토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 앞에서 간접 범죄가 어떻게 형성되는지 분석을 하고 바른 해석을 할 때에는 영생할 수 있는 진리가 되지만 인간들의 삶 속에서 일어나는 윤리적인 범죄로 다루게 되면 세상 법으로 기울어지고 만다.

① 살인하지 말라

רָצַח 티르차
살인하다, 살해(학살)하다
לֹא
말라, 못하다
μὴ
말라
φονεύσῃς 포뉴세스
살인(살해)하다

성도들이 직, 간접 범죄를 구분하기 이전에는 십계명 후반부에 기재된 여섯 가지 계명은 세상 윤리와 도덕적인 면에 국한시켰으나 앞으로는 하나님과 영적인 관계로 연결시켜서 구원과 영생에 대하여 잘 다루어야 한다. 예수께서 영생 문제에 중요한 1~4계명을 빼놓으신 것이나, 십계명의 순서를 무시하시고 그들 앞에 여섯째 계명에 살인하지 말라는 말씀을 먼저 하신 저의(底意)가 무엇인지 확실히 아는 것이 첫 번째 과제가 된다.

선조들이 광야에서 우상 숭배하다가 하나님 앞에 진노를 당한 부분을 예로 들어 말씀을 하셔야 하는데도 갑자기 살인하지 말라고 하신 것을 액면(額面)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면 남의 생명을 해하지 않은 자는 영생할 수 있게 된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는 것 외에 다른 의미는 없어 보인다. 본문에는 영생문제를 놓고 고심을 하다가 큰 기대를 가지고 예수님께 찾아온 사람에게 마치 살인전과(殺人前科)가 있는 것처럼 불쑥 던진 말씀을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 본인으로서는 황당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과거에 살인한 적도 없고 난폭하게 폭력을 휘두르지도 않은 자에게 예수님의 첫 마디가 사람을 죽이지 말라고 하신 말씀은 상대방의 인격에 상처를 줄 뿐 아니라 오해를 살 수 있는 요소가 된다. 세상에서 순간적인 과실(過失)로 발생되는 살인도 큰 문제가 되는데 하물며 영생에 관한 질문을 하는 자에게 고의(故意)적으로 사람을 죽이지 말라는 말씀을 다른 각도에서 파헤치지 않으면 깊은 뜻을 찾아낼 수가 없다.

이뿐 아니라 간음이나 도적질이나 거짓 증거 역시 마찬가지로 영적인 면에 비중을 더 많이 두고 있는 부분들을 예리하게 파헤치지 못하고 그냥 덮어버리면 큰 구원은 물거품이 되고 만다. 세상 학문을 많이 연구하여 지식이 풍부하고 덕망과 명예를 겸비(兼備)한 기독교인이라도 시대를 분별하지 못하고 구원의 진리를 붙들지 않게 되면 영생과는 거리가 멀어진다.

하나님의 말씀은 문자적인 해석 방법도 있고 상징적이거나 비유적으로 하신 것도 있지만 특히 영적인 면을 다루는 데에 있어서 성경 말씀을 잘못 가르치다가 간접 살인자가 된다는 것을 두려워해야 한다. 많은 백성의 생명을 책임진 자는 진리의 말씀으로 잘 양육시키는 것과 맡은 성도들을 주님의 나라에 들어가도록 인도하는 일을 천직(天職)으로 알고 죽도록 충성하는 것이 맡은 자의 의무이다.

㉮ 예수께서 말씀하신 살인은 육에 관한 것이 아니다

신앙인의 가정에서 자랐고 율법을 완벽하게 지키며 부정한 재물을 모으지도 않았고 양심적으로 깨끗하게 살며 많은 사람에게 칭찬을 받는다고 해서 영생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윤리와 도덕적인 면에서 청렴결백(淸廉潔白)한 생활을 해도 영생문제만은 인간 스스로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고민 중에 있던 자가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그 순간 사람을 죽인 일이 없다면 영생할 수 있구나라는 착각을 할 수 있다.

예수께서 맨 처음에 느닷없이 살인문제를 들고 나왔을 때에는 입장이 난처하고 민망스러웠겠지만 한편으로는 영생의 검증을 받았다고 느껴질 때 죽음의 위압감은 한 순간에 사라졌을지 모른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말씀을 문자대로 받아들일 경우 사람을 죽인 일이 없는 자이기에 영생문제만은 완전히 해결되었다는 안도감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한동안 영생이라는 과제가 풀리지 않아 고민에 빠졌으나 이제 그 무거운 짐을 홀가분하게 내려놓은 이후에는 더 이상 예수를 만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돌아가면 그에게는 이전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발생될 것이다. 노파심(老婆心)에서 하는 말이지만 만약 예수님의 말씀을 오판하여 자신은 남에게 상해를 입히거나 억울한 일을 하지 않은 것 때문에 이미 영생을 얻었다고 자만에 빠질 때에 그에게 닥칠 불행은 예측할 수가 없다.

영생의 자격은 율법의 테두리 안에서 인간의 행위조건(行爲條件)이나 도덕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진다는 뜻으로 하신 말씀이 아니기 때문에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율법을 다 지켰다고 영생을 얻는 것도 아니고 예수께 와서 겸손히 무릎을 꿇었다고 보장되는 것이 아니다. 이 부자 청년과 관원의 고백처럼 종교적인 면과 윤리적인 행동에서 흠이 없는 생활을 한 것 가지고 영생이 이루어진다면 기독교인들이 믿는 십자가의 피는 아무 효력이 없다.

이 세상에서 아무리 율법을 잘 지키고 모범적인 생활을 하며 선한 일을 많이 한다고 칭찬을 수없이 들어도 예수 십자가 피와 관계를 맺지 않고는 구원받을 수가 없고 영생의 문은 그에게 열리지 않는다. 인간적으로 학연, 지인(知人)들이나 여러 기관과 단체들이 재산을 다 털어 자선사업을 해도 십자가의 피와 관계가 없는 선행들은 세상적인 친목(親睦)단체에 지나지 않는다.

가령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총을 입지 않은 자가 부모공경을 잘하고 살인이나 남에게 악을 행치 않을 뿐 아니라 나라에 공을 세우고 훈장을 받았다고 해서 영생을 얻을 수는 없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곧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고 하였으며(요 17:3),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말씀을 바로 알고 믿어야 영생을 얻게 된다는 것을 성경은 지적해 주고 있다.

㉯ 예수께서 말씀하신 살인은 영적인 것이다

주님께서 영생에 대한 답변을 하실 때에 살인문제를 언급하신 것은 육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세상 법에는 저촉(抵觸)이 되지 않는다. 영생문제를 논(論)하는 자리에서 나온 살인은 세상 법정에서 다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영에 관한 문제이므로 대다수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영생과 직접 관계가 되는 계명(1~4계명)을 주께서 잘 아시면서도 거두절미(去頭截尾)하시고 6계명을 먼저 거론(擧論)하신 것은 간접 살인에 무게를 두고 하신 말씀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 속에 숨겨져 있는 중요한 부분을 찾아내지 못하고 말씀에 접근을 하면 진리는 묻혀버리고 육체적인 살인으로 볼 수밖에 없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살인에 대하여 면밀(綿密)히 분석한 핵심에는 영적 문제가 숨어있다. 이 말은 폭력으로 사람을 죽인 자들은 영혼을 해칠 수가 없으나 종교 지도자들은 영혼을 죽이는 살인에 주범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본문 말씀의 살인은 세상적인 범죄가 아니라 지도자의 잘못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받은 성도들의 영혼을 죽여서는 안 된다는 경고가 그 속에 담겨져 있다. 영생의 말씀을 가르치는 지도자들이 때를 따라 생명의 양식을 공급해야 할 의무가 있는데도 영혼을 살리는 만나가 없어 굶주리게 하거나 진리의 말씀으로 바르게 양육하지 못한 자들은 간접 살인에 해당이 된다.

특히 한 시대를 주름잡는 종교계의 거성(巨星)들이 훌륭한 일을 많이 했어도 단단한 식물인 말씀의 양식을 공급하지 못하고 영을 소성(蘇醒)시키지 않다가 귀한 생명을 잃게 했을 때에 그 살인에 대한 책임을 무섭게 추궁하실 것이다. 영적인 죄는 세상 법조항이 없기 때문에 유, 무죄(有, 無罪)에 판결을 내릴 수 없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택한 백성들의 영혼을 죽이는 자에게 엄벌에 처한다는 언질(言質)을 기독교인들은 깊이 새겨듣고 경종(警鐘)으로 받아 들여야 한다.

㉰ 목자와 양은 불가분(不可分)의 관계를 맺고 있다

목자와 양 사이에는 끊을 수 없는 깊은 관계를 유지하는 과정에서 목자는 양들을 푸른 초장과 맑은 물가로 인도하는 동시에 해가 지고 어두워지면 우리 안으로 몰고 와서 맹수들의 위협을 막아내는 데 신경을 써야 한다. 목자는 자기 양이 아니기 때문에 장차 양들의 원주인(元主人)이 되시는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까지 노심초사(勞心焦思)속에 길러온 양무리들을 아무 사고 없이 주인에게 인계(引繼)해야 임무가 끝나는 것이다.

특히 양은 보호색이나 공격할 무기도 없는데다가 눈은 근시안이며 듣는 귀는 초단파(超短波)이므로 목자의 보호와 인도가 없으면 양은 한순간도 살 수가 없으므로 목자 곁에서 멀리 떨어져 있으면 안 된다. 이 땅의 여러 가지 업종과 직책 중에 밤과 낮을 가리지 않고 현장을 떠나지 못하는 목자의 애로(隘路)와 노고는 다른 직업에 비교할 수가 없지만 하나님의 양을 맡은 막중한 책임을 완수하는 날에는 상급도 대단히 크다고 하셨다.

만약 주께서 맡겨주신 양들이 이리 떼의 기습을 당하거나 맹수들의 먹이가 되는 것을 보고도 그 양의 생명을 건져내지 않는 사악한 목자들은 하나님 앞에 직무유기죄가 될 뿐 아니라 살인 죄목을 적용하여 엄벌로 다스릴 것이다. 실제로 하나님의 말씀을 공급하는 자가 영생할 수 있는 진리를 전하지 않고 다른 것을 섞었다가 귀한 영혼을 죽인 자는 역시 간접 살인죄가 성립이 된다.

목자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은 생명을 살리는 양식도 되고 죽이는 독초도 되기 때문에 영생의 진리를 제대로 공급받지 못한 양들이 병들거나 죽음에 처하게 되었을 때 그 살인에 대한 모든 책임은 지도자에게 넘어온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이런 말씀은 모두 목자와 양들 사이에서 희비(喜悲)가 벌어지는 과정을 이론적으로 논하였으나 실제로 지도자 한 사람의 실족으로 소중한 생명을 희생시키거나 영생을 놓치게 했다면 그 성도에게 천추(千秋)의 한(恨)을 남기는 일이 되지 않도록 그 지도자는 즉시 악업을 멈추어야 한다.

㉱ 삯꾼 목자들의 잔인한 살인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시작된다

하나님께서 에스겔 선지자에게 하신 말씀을 보면 "악인에게 진노하시어 죽이려고 할 때에 종이 빨리 깨우치지 아니하거나 말로 악인에게 알려 악한 길을 떠나 생명을 구원케 하지 아니하면 그 악인은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하나님이 그 피 값은 종에게서 찾을 것이요, 종이 깨우쳤으나 돌아오지 아니할 때에 그 악인은 죄악 중에 죽으려니와 바로 전한 종의 생명은 보존하리라"고 하였다(겔 3:18~19, 33:8~9).

소돔과 고모라 같이 악하고 불법이 성행하는 세상에서 교회마저 진리의 빛을 밝히지 못하고 어두움에 잠식이 되다보니 참 지도자를 잃은 성도들은 말씀에 갈급하여 방황하다가 거짓 선지자에게 먹히는 일이 점점 현실이 되고 있다. 스스로 신령하다고 하는 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혼선시키므로 성도들의 신앙은 변질이 되고 진리 노선에서 벗어나 탈선의 길로 끌려가다가 하나님의 곁을 떠나게 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이 세상의 악인들은 육은 죽여도 영혼을 손댈 수가 없지만 잘못된 종교 지도자들은 한꺼번에 영과 육을 다 죽이기 때문에 이들의 손에 성도들이 희생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거짓 선지자들의 공통적인 행동은 예언, 환상, 입신, 투시(透視) 같은 은사를 앞세워 물질의 짐을 무겁게 지우는 버릇은 마치 무속인들을 방불케 하고 있다.

미가서 3장 2~3절에 보면 "너희가 선을 미워하고 악을 좋아하여 내 백성의 가죽을 벗기고 그 뼈에서 살을 뜯어 그들의 살을 먹으며 그 가죽을 벗기며 그 뼈를 꺾어 다지기를 남비와 솥 가운데 담을 고기처럼 하는도다"라고 하였다. 하나님의 이름을 팔고 축복을 빌미로 삼아 예물을 강요하며 성도들의 영혼을 사냥하는 행악자들이 종교계에 흙탕물을 일으키고 있지만 결국 악한 종이 받는 율(律)에 처하게 되고 그에 상응(相應)하는 징벌과 대가(代價)를 톡톡히 치르게 하실 것이다.

② 간음하지 말라

נָאַף 틴아프
간음하다(우상숭배하다)
לֹא
말라, 못하다
μὴ
말라
μοιχεύσῃς 모이큐세스
간음하다(우상숭배하다)

영생문제로 예수께 와서 질문을 한 관원에게 무슨 연유로 간음을 영생과 결부시켰을까? 음탕한 행동을 한 일이 전혀 없는 그에게 간음하지 말라는 언질(言質)이 영생의 답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주께서 영생에 대하여 시원한 대답은 피하시고 듣기조차 거북스럽고 민망한 이성 간의 문제를 가지고 말씀하신 근본 뜻이 어디에 있을까?

영생에 관한 질문과 간음하지 말라는 답변은 관원의 입장에서는 새로운 것은 전혀 없고 호감을 살만한 내용도 아니었다. 그는 율법을 철두철미하게 지키며 계명대로 살아왔고 대인관계에도 부끄러울 것 없는 자신을 향하여 저속(低俗)적인 말씀을 듣는 당사자로서는 난색을 표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영생문제로 고민을 하다가 큰 기대를 가지고 예수께 왔으나 중요한 요지나 핵심이 될 만한 내용이 그 입에서 나오지 않기 때문에 실망스러울 수도 있다.

충격적인 것은 질문에 대한 답변은 없고 기껏 하시는 말씀이 간음하지 말라는 그 자체만으로는 영생에 대한 대답이라기보다 경고성 책망에 가까운 느낌이다. 그 당시에 예수님과 대화하는 자들은 동문서답(東問西答) 같이 들려지고 황당한 반응을 나타낼 수 있겠지만 영생을 논하는 자리에서 왜 간음문제가 나왔는지 엄밀하게 분석을 해보면 분명히 영적인 면에 초점이 맞추어진 것을 알 수가 있다.

현재 교회에서 7계명을 이성 간의 성적 범죄로만 다스리지 말고 하나님께서 엄하게 진노하시는 간음이 어떤 것인지 깊이 검토해 보고 정죄를 해야 실수를 줄이게 된다. 지금까지 종교계의 법을 연구하는 기관들뿐 아니라 교계의 흐름을 보면 십계명 전체 중에 7계명만은 문제를 크게 삼고 근신과 출교를 시키면서도 다른 아홉 가지 계명은 예리하게 파헤치지 않고 관대하게 넘기는 예가 많다.

실제로 예수를 믿는 성도들 중에 육의 간음을 멀리해도 우상숭배와 영적인 살인이나 도적질, 거짓 증거들은 영생을 놓칠 수 있는 범죄인데도 경시(輕視)하면서 유독 이성 간의 간음에 비중을 더 크게 두다보니 영적인 문제는 아예 묻혀 버리고 말았다.

㉮ 예수께서 말씀하신 간음은 육적인 것보다 영적인 면을 더 엄하게 다스리신다

현재 기독교에서는 십계명 전체를 범한 죄보다 이성 간의 성적 범죄에 치중을 하고 있으나 영적인 방면에 조금만 더 깊이 들어가 보면 하나님께서 진노하시는 간음죄가 어떤 것이며 얼마나 무서운지 바로 알게 될 것이다. 이 세상에 수많은 성도들이 겉으로는 진실하게 사는 것 같고 자기 나름대로 착하게 살면서 신앙생활을 했다고 해도 마음과 생각으로 짓는 죄는 외관상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크게 두려워하지 않는 자들이 많다.

그러나 예수께서 말씀하신 영적 간음은 세상 법에는 저촉(抵觸)되지 않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중징계를 피할 수가 없다. 음녀 세상에 마음을 빼앗긴 성도들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고 큰 구원과 영생까지 놓친다면 육적인 간음보다 더 치명적일 수가 있다. 십자가를 중심하고 말씀 안에서 사는 성도들이 살인, 도적질, 간음을 하지 않고 흠 잡힐 것이 없이 성결하게 살았다고 자부(自負)하는 자들이라도 말씀의 거울에 비추어 볼 때 영적 간음에 걸려들지 않을 자가 거의 없다. 그렇다고 육의 범죄를 무시하거나 등한히 하라는 것은 아니다.

예수를 믿는 자들이 음탕한 생활은 아니라도 세상과 짝하는 그 자체가 하나님 앞에 불륜을 저지르는 행동이 되고 간부(姦夫)와 놀아나는 짓은 세상적인 범죄가 아니라 영적 범죄에 속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된 성도가 참 남편을 두고 세상이라는 다른 남자를 얻어 간음하는 자와 신앙생활을 바로 하지 못하도록 불륜을 방조(帮助)하는 자들 모두가 영적 간음에 해당되는 범죄인데도 두려워하지 않고 있다가 영생을 놓치고 만다.

기독교인들 중에 신앙의 지조를 지키지 않는 자들은 세상 남편을 몇이나 얻었는지 본인도 모를 때가 있다. 어쩌면 남편을 다섯이나 얻은 수가라 하는 동네 여인보다 더 많은 남편을 두고 살아가는 자가 바로 자신일 수도 있다. 예수께서 율법에 능통한 학자들과 서기관들이나 바리새인들에게 화 있을진저라고 하시며 외식하는 자들에게 강한 어조로 책망하신 것도 그들이 세상과의 간음이 점점 도를 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늘을 우러러 보지 못하고 죄인이라고 고백하며 가슴을 치는 세리와 창기들을 품에 안아주신 것은 영적으로 간음하는 지도자들을 꼬집은 것이다. 야고보서 4장 4절에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과 벗 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게 하는 것이니라"고 했다.

주님의 신부된 성도들이 세상(κόσμος 코스모스 : 우주, 세상)이라는 남편을 취하여 간음을 행할 때 욕심이 잉태(孕胎)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長成)한즉 사망을 낳느니라고 하였다(약 1:15). 죄의 씨는 번식력이 강하여 순식간에 세균처럼 퍼져 나가는 것을 생각하면 얼마나 끔찍스러운지 모른다. 예수를 오래 믿고 모태신앙을 가진 자라도 세상 남편과 짝하다보면 습관적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때가 많고 교회의 직분은 가지고 있으나 세상 물질의 파도를 이기지 못하고 휩쓸릴 때에 자신도 모르게 신앙은 서서히 침몰해 버린다.

그러므로 주의 재림을 기다리는 성도들은 육적인 간음도 경계를 해야 하지만 세상과 타협하다가 발생되는 영적 간음은 영생과 구원문제까지 파괴시키고 망쳐 놓기 때문에 경하게 여겨서는 안 된다. 온갖 풍랑이 영생의 길을 가로 막고 돌풍이 휘몰아치는 세상에서 영생을 바라보고 살아가는 성도들은 영적인 간음에 걸려 넘어지지 않도록 항상 주의하며 자신을 돌아보아야 안식세계에 들어갈 자격을 얻고 큰 구원까지 쟁취할 수가 있다.

㉯ 이방신을 받아들이는 자도 간음하는 자다

선민들이 율법을 중요시하지 않고 이방풍습을 받아들이며 우상을 만들어 경배하는 행동은 하나님 앞에 용서받을 수 없는 간음하는 행위가 된다. 하나님께로부터 선택을 입은 백성이라도 우상을 섬길 때에 진노의 채찍은 한재로 인한 기근이나, 온역과 질병을 가지고 징계할 때도 있었고, 전쟁으로 원수의 나라에 포로로 잡혀가는 수난을 겪게 되는 때가 많았다.

율법에 기록해 놓은 계명대로 순종하며 하나님을 잘 섬겨야 할 백성들이 우상에게 제물을 바치고 허무한 이방신 앞에 마음을 열다가 육의 간음보다 더 엄한 중벌을 내리시는 것은 영적 간음 때문이다. 이스라엘 나라의 3대왕 솔로몬은 하나님의 축복과 사랑을 전무후무하게 받은 자였으나 많은 왕비들이 자기 나라의 우상을 가지고 왕궁으로 들어왔을 때에 그들의 신을 용납하고 묵인한 것이 화근이 되었다.

이들에게 하나님이 축복의 손을 거두어들이므로 나라는 양분되었고, 동족상잔의 칼부림이 벌어지고 국권(國權)은 무너지고 국론(國論)은 분열이 되고 말았다. 더욱이 같은 민족끼리 서로 대립하여 싸우다가 북쪽 에브라임은 앗수르의 침략을 받아 많은 피를 흘렸으며 남쪽 유다는 바벨론 제국에 망하므로 성전은 불에 타서 처참하게 무너질 때 백성들은 창검에 잔인하게 쓰러졌고 젊은 자들은 포로로 잡혀가는 비극을 맞게 된 것이다.

하나님께로부터 택함을 입은 선민이라도 율법을 중심하지 않고 탈선하여 우상 앞에 절하고 간음을 행할 때에 하나님께서 질투하시며 이방나라의 막대기를 들어 무서운 징계를 내리신 것이 구약 역사서에 많이 기록이 되어있다(출 32:7~10, 왕상 14:16, 15:16, 왕하 17:38~40, 대하 12:2, 렘 3:6~12 등등).

이사야 50장 1절에 "내가 너희 어미를 내어 보낸 이혼서가 어디 있느냐 내가 어느 채주(債主)에게 너희를 팔았느냐 오직 너희는 너희의 죄악을 인하여 팔렸고 너희 어미는 너희의 허물을 인하여 내어 보냄을 입었느니라"고 한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과 이혼하는 날에 할례 받지 않은 이방에 팔았다고 하였다. 오늘날 기독교인들 역시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도 물질의 우상 앞에 엎드리는 행동과 향락의 함정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음탕한 생활을 하다가 큰 환난을 당할 때에 영생까지 놓치는 자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설령 우상을 만들어 섬기지는 않았다고 할지라도 뜨뜻미지근한 신앙생활 속에서 그들의 사상을 섞거나 타협을 해도 간음하는 행위가 될 수 있고 사단의 미혹을 받아 신앙이 흔들리는 자들을 권면하거나 훈계하여 돌이키게 하지 않고 방종(放縱)하는 자도 직, 간접적으로 간음하는 범죄에 동참하는 자가 된다. 죄악이 관영하고 유물사상이 거센 세상에서 살아가는 성도들이 우상숭배 하는 자들의 사상을 받아들이거나 간교한 말에 현혹되어 마음으로 잠깐 동안 접촉만 해도 역시 간음하는 범죄가 된다는 것을 알고 조심을 해야 한다.

㉰ 금 우상 앞에 먹고 마시는 자도 간음이다

이 땅 위에 모든 범죄들은 하나님의 진노를 쌓게 되지만 양의 피로 구속 받은 백성들이 우상 앞에 머리를 숙이는 행위는 영적 간음이 되기 때문에 이러한 자를 하나님께서 크게 질투하시고 진노하신다.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 간 광야 길을 통과하면서 여러 가지 시험 중에 하나님을 제일 노엽게 한 행동은 우상숭배였다.

하나님의 능력과 이적기사를 직접 목도(目睹)하고 체험한 백성들이 광야에 나와 금송아지를 만든 범죄로 인하여 하나님이 크게 진노하셨고, 모압 땅 싯딤에 와서는 그 지역 여자와 간음하며 우상의 제물을 먹다가 하루에 24,000명이나 죽은 사건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큰 상처로 남게 되었다(민 25:1~9).

역대상 5장 25절에 보면 "저희가 그 열조의 하나님께 범죄하여 하나님이 저희 앞에서 멸하신 그 땅 백성의 신들을 간음하듯 섬긴지라"라는 말씀과 예레미야 3장 6절에는 북쪽 이스라엘 백성들이 높은 산에 오르며 푸른 나무 아래로 가서 거기서 행음하므로 하나님의 진노를 쌓게 된 사건이 기록되어 있다. 다시 8절 남쪽 유다 역시 간음하는 죄를 범하였으며, 9절에는 그가 돌과 나무로 더불어 행음함을 가볍게 여기고 이 땅을 더렵혔는데도 하나님께 돌아와 그 죄를 진심으로 회개하지 않는 부분을 지적하였다.

에스겔 6장 9절을 보아도 "너희 중 피한 자가 사로잡혀 이방인 중에 있어서 나를 기억하되 그들이 음란한 마음으로 나를 떠나고 음란한 눈으로 우상을 섬겨 나로 근심케 한 것을 기억하고 스스로 한탄하리니 이는 그 모든 가증한 일로 악을 행하였음이라"고 하신 말씀은 진노를 쏟으시겠다는 뜻이다. 에스겔 23장 1~23절에도 북쪽 사마리아와 남쪽 예루살렘이 음란하여 애굽과 간음하다가 앗수르와 바벨론을 불러들여 그들과 동침을 하고 가슴과 하체를 드러내었다는 것도 간음하는 범죄가 절정에 이르렀다는 표현이다.

본장 30절에 네가 음란히 이방을 좇고 그 우상들로 더렵혔다고 말씀하셨으며, 호세아 4장 12절에도 "내 백성이 나무를 향하여 묻고 그 막대기는 저희에게 고하나니 이는 저희가 음란(淫亂)한 마음에 미혹되어 그 하나님의 수하(手下)를 음란하듯 떠났음이니라"고 하였다. 이와 같은 행동을 하는 것은 하나님을 버리는 배신행위가 될 뿐 아니라 무서운 영적 간음은 용서받지 못하고 그 죄 값을 톡톡히 치른 상처는 오랜 역사가 흘러도 지워지지 않았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향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일어났던 모든 것이 말세를 만난 우리에게 거울이 된다고 말씀하셨는데 이 말씀도 그냥 흘려서는 안 된다(고전 10:1~11). 요한계시록 2장 12~14절에 보면 버가모 교회가 발람의 교훈(敎訓)을 지키며 우상의 제물을 먹고 행음(行淫)하는 것을 책망하였다(출애굽 당시에 발람이나, 열왕시대 때에 아합 왕의 처 이세벨의 사건이 요한계시록에 왜 나왔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현재 영적 이스라엘이 된 성도가 광야 같은 현 세상에서 하나님이 싫어하는 음란한 행동을 하거나 우상의 제물을 먹게 되면 고향 땅에 가는 길이 막히게 된다는 것을 출애굽과 열왕시대의 역사를 교훈삼아 후세들에게 본을 보여 주신 것을 마음에 되새겨 보아야 한다.

③ 도적질하지 말라

גָּנַב 티그놉
도적질하다, 훔치다
לֹא
말라, 못하다
μὴ
말라
κλέψῃς 클렙세스
도적질

엄 (嚴)한 율법 아래 교훈을 받고 좋은 환경에서 자란 부자 청년에게 주님은 칭찬보다 도적질하지 말라는 말씀을 하였다. 그는 재산이 많은 부자요, 세상에서 남부럽지 않게 살아왔고 그의 가문이나 지위를 보아도 남의 재물을 탐낼 자는 아니다. 특히 율법을 중요시하는 가정에서 엄한 교육을 받고 성장한 자는 도적질하면 안 된다는 것을 이미 다 배워서 알고 있는 내용이기 때문에 다시 듣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다.

예수께서 남의 재물에 손을 대지 않았고 물질에 흑심(黑心)을 품은 적도 없이 깨끗하게 살아온 자를 향하여 왜 도적질하지 말라는 말씀을 하셨을까? 영생문제를 앞에 놓고 고민하다가 찾아온 자의 심성(心性)을 주님이 잘 아시면서 그에게 절도행각(行脚)을 금하라고 말씀을 하신 것은 당사자뿐 아니라 누가 들어도 심기(心氣)가 불편한 말이다.

불신자라도 착하게 살아가는 자들은 도둑질 할 마음이 추호도 없을 텐데 하물며 율법을 잘 지키며 살아온 신앙인의 양심으로는 남의 물건을 훔치지는 않는다. 많은 사람들 중에 간혹 신앙의 병이 들어 양심이 마비된 자이거나 진리에서 탈선된 자들이 시험이 들어 남의 물건을 훔치는 절도 행각을 할지 몰라도 말씀대로 바로 살려고 하는 자들은 나쁜 짓은 할 수가 없다.

예수님은 영생에 관한 답변을 시원하게 하시지 않고 영생과 도적질을 연관시켜 말씀을 하셨을까라는 의문이 생기게 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듣기에 거북스럽기도 하지만 잘못 이해하면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그 순간 영생은 이렇게 쉬운 것이구나라고 하는 생각으로 마음의 착각을 일으킬 수 있다. 누구나 예수께서 말씀하신 뜻을 깊이 모르는 상태에서 문장이나 문맥의 흐름을 보면 살인(6계명)이나, 도적질(8계명) 중에 한 계명만 잘 지키면 영생할 수 있는 것 같은 뉘앙스(nuance)를 본문에 살짝 비쳐지는 느낌이다.

왜냐하면 도적질을 하지 않고 양심적으로 살아온 자신에게 예수께서 영생에 대한 질문 앞에 단도직입(單刀直入)적으로 도적질을 하지 말라는 말씀을 하셨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순간 절도죄가 없는 자신에게는 영생에 대하여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확신을 가졌을지 모른다.

만약 십계명에 기록된 본문대로 남의 재물을 도적질하지 않는 자가 영생할 수 있다면 부자 청년뿐 아니라 셀 수가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영생을 얻었을 것이다. 예수께서 경계(警戒)하신 말씀 자체가 세상 물질의 욕심으로 남의 것을 훔치는 범죄를 지적하신 것이 아니다. 십계명에 기록된 여덟 번째 계명을 문자 그대로 남의 집 물건에 손을 대거나 재물을 착취하는 뜻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이 계명을 육의 문제로 생각하기 이전에 영적인 면을 먼저 살펴본 다음에 접근해야 그 말씀 속에 나타내시고자 하는 뜻을 알 수가 있다. 지금까지 기독교인들이 십계명 속에 깊숙히 숨겨져 있는 진리가 무엇인지 분석해보지도 않고 성도가 죄를 지으면 안 된다는 뜻으로 단언해 버리면 별 의미가 없다. 주님이 부자 청년이나 관원에게 하신 말씀은 오늘날 재림을 기다리는 성도들을 향하여 세상 물질에 깨끗하라고 하신 뜻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지만 그 이면에 또 다른 도적질이 있는지 찾아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

㉮ 하나님의 날인 안식일을 도적(盜賊)질하면 안 된다

하나님을 경외(敬畏)하는 자들이 사람 앞에서 세상 물질은 훔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순간적으로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 한 것이 있으면 더욱 두려운 일이다. 세상 재물의 욕심은 인간들이 다 가지고 있으나 하나님의 것을 탐하지 않도록 신앙 사상을 고취(鼓吹)시켜주는 것이 말씀의 근본 취지인데 세상 물질에만 계속 부각(浮刻)시키게 되면 예수께서 말씀하신 뜻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버릴 수가 있다.

부자 청년같이 탐욕을 버리고 깨끗하게 살았다고 자부할 성도들이 있을지 몰라도 하나님과 약속이 된 안식일이나 십일조 문제에 발목을 잡히면 장차 도래할 안식세계에 들어갈 수 있는 큰 구원을 놓치게 된다. 신앙생활을 잘하며 교회에서 모범된 성도들이라도 하나님 앞에서 습관적으로 안식일(주일)을 도적질하고도 태연하게 살아가는 자들을 향하여 주님은 왜 하나님의 것을 훔쳐간 전과자가 되었느냐고 하실 것이다.

안식일은 하나님의 날이므로 성도들이 손을 댈 수가 없다는 것을 인식하고 주의 날과 자신이 활용할 수 있는 엿새를 은혜롭게 적절히 사용을 해야 성도의 의무를 다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주의 날(주일)을 몰래 훔쳐가고 십일조까지 도적질하는 자들이 현재 이 자리에도 많이 앉아 있을 것이다.

설령 남의 것은 티끌 하나라도 손대지 않고 흠잡힐 것이 없이 양심적으로 살았다고 해도 주일을 바로 지키지 않으면 칠일조(7분의 1)도적, 즉 하나님의 날을 훔쳐간 도둑이 된다. 일주일 중에 엿새는 우리에게 주어진 날이지만 안식일, 한 날만은 하나님의 전에 가서 예배(제사)드리며 받은 바 은혜에 감사를 하는 것이 신앙인의 원칙이다.

이러한 규례를 아는 성도들이 주의 날을 몰래 훔쳐가는 범법자가 된다는 것은 죄인을 구속해 주신 주님 앞에 얼굴을 들 수 없을 정도로 부끄러운 일이다. 따지고 보면 하나님께서 허락해주신 엿새도 다 찾아 활용을 하고 하루뿐인 하나님의 날을 가족들과 합세하여 강도짓을 하며 빼앗아가는 파렴치한(破廉恥漢)자들이 기독교인 중에도 다반사(茶飯事)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안식일의 도적들이 대중적으로 일어나다 보니 이 문제를 지적하거나 직접 거론을 해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오히려 반항적인 태도를 취하며 간섭하지 말라는 표정을 짓는다. 간혹 양심적으로 가책을 받으면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기도 하고 스스로 자기 행위를 대중 앞에 적당히 덮어버리는 행동을 하면서도 충고는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안식일을 도둑질 해가는 자들이 처음일 때는 본인의 마음에 허락되지 않았고 심적으로도 찜찜한 생각이 들었으나 계속 반복을 하다가 점점 면역이 생겨서 반성(反省)이나 뉘우침도 없어지고 이제는 당연한 것처럼 여겨진다. 염려스러운 것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이 땅에 살면서 주의 날을 좀도둑처럼 가끔씩 훔치다가 담력을 얻어 아예 통째로 계속 강도짓을 하듯이 하나님의 날을 털어가는 전과자들에게 주께서 강제 소환하여 문책을 하시기 전에 먼저 용서를 구해야 한다(여기 좀도둑은 온전한 안식일을 지키지 않고 자기가 필요한 시간에 잠깐 예배에 참석만 하고 자기 일에 몰두하는 자를 말한다. 십일조도 마찬가지이다).

외관상 남들이 보기에는 의로운 모습으로 경건하게 신앙생활을 하는 것 같지만 주님은 이들을 알아보시고 하나님의 것을 상습적으로 도적질한 죄를 회개하라고 책망을 하며 징계하실 것이다. 히브리서 4장 1~11절까지 본문 내용을 보면 안식일을 도적질하고 잘 지키지 않는 자는 안식년(安息年)에 들어갈 수가 없다는 말씀을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일어난 사건을 들어 경고하셨다.

매주 첫날을 안식일로 삼고 이 날을 기념하여 잘 지키는 자가 천년안식에 들어갈 수 있다는 약속을 문서로 기록해 놓은 구절을 보고도 예사로 생각하거나 그냥 넘겨버리는 것은 참으로 위험하다. 하나님께서 일주일 중에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날은 안식일뿐인데 이 언약을 어기는 범죄자들은 안식에 들어갈 자격을 스스로 포기해서는 안 된다. 안식세계를 바라보는 성도들은 하나님의 날을 도적질하는 것은 절대 금물이라는 것을 잊지 말고 안식일 성수(聖守)에 솔선수범하며 실천에 옮겨야 주께서 예비한 나라에 들어갈 수가 있다(참고. 박성목 목사 저서 "때가차매" 안식일의 변천사).

㉯ 하나님의 것 중에 십일조 도적이 많다

앞에서도 언급을 했듯이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는 것은 안식일뿐 아니라 십일조도 포함이 된다. 모든 것들이 다 하나님의 것이지만 생산의 십분의 아홉은 성도들이 임의(任意)대로 쓸 수 있으나 그 중에 하나는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원주인에게 돌려 드리는 것이 마땅하다. 하나님의 것을 인간이 마음대로 할 수가 없으며, 주님과 약속한 것에 대하여 핑계를 대거나 파기해서도 안 된다.

참 신앙인은 하나님의 소유와 자신의 것을 잘 분별할 줄 알고 그 법을 준수해야 약속의 땅을 기업으로 상속받을 수가 있지만 불순종하는 자에게는 안식의 축복을 허락하시지 않는다. 간(肝) 크게 하나님의 것을 손대다가 도둑질 한 전과자로 낙인이 찍히는 순간 소망했던 영생은 물거품이 되고 영적 문제가 생각보다 심각해진다.

무지하고 어리석은 인간들이 자기들의 몫으로 주신 아홉을 다 챙겨가고 하나 남은 것까지 주인에게 드리지 않고 도적질 해가면서도 부끄러워하거나 미안한 기색도 없이 태연(泰然)하게 살아가는 자들은 안식세계에 들어갈 자격권에서 탈락이 된다. 성도라는 명분만 가지고 있는 자들은 영생의 말씀을 확실히 붙들지 못하고 대신(對神)관계마저 분명치 않기 때문에 상습적으로 안식일과 십일조 도적질을 계속하다가 결국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생까지 빼앗기는 불운을 겪고 만다.

이 세상의 잡범들도 한두 번 범행에 가담하다가 나쁜 전과 경력이 쌓여 면역이 생기면 큰 범죄로 발전하여 흉악범이 되는 것같이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해 본 자들도 주의 것을 계속 착취(搾取)를 하다가 마음이 무뎌져서 거리낌이나 양심에 가책도 받지 않고 대범해진 자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 세상에서도 남의 것을 도적질한 자들을 법정에 세울 때 양과 질에 따라 무거운 중벌을 선고하는데 하물며 하나님의 것을 가져가고 평안하기를 바라는 것은 어리석은 자의 생각이다.

주의 것을 도적질한 죄 때문에 하나님과의 축복의 언약도 무효가 되고 큰 구원까지 놓친 후에는 뉘우치고 회개해도 소용이 없고 반드시 죄의 대가를 치르는 날이 오게 된다. 썩어 없어질 세상 물질에 욕심을 부리다가 본의 아니게 하나님의 것인 십일조를 훔친 전과자라는 낙인이 찍히면 육체가 영생할 수 있는 계약이 자동적으로 파기(破棄)됨과 동시에 자기 스스로 파놓은 환난의 함정(陷穽)에 빠질 때에 얼마나 가슴이 아프겠는가?(말 3:8~9)

골로새서 3장 5절을 보면 성도들에게 탐심도 우상숭배라고 하였다.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 중에 현대판 물질 우상 앞에 엎드리는 숫자가 계속 늘어나다보니 하나님의 것과 자기 것을 구별하지 못하고 모두 자기 몫으로 돌리다가 큰 화를 당하게 될 자들이 비일비재(非一非再)하다.

세상 법을 어긴 죄인들은 나라의 법대로 판결을 내리지만 하나님의 것을 훔친 범죄자들은 말씀의 법으로 엄하게 다스리신다. 십일조와 안식일 중에 어느 것 하나라도 하나님의 것을 훔쳐간 범법자(犯法者)로 낙인이 찍히고 전과자로 분류된 자들은 도둑질한 양과 질에 따라 하나도 빠짐없이 조목조목 찾아내어 환난으로 문책하실 것이다.

성경에 기록된 계명을 어긴 자들이 안식세계에 들어갈 자격을 박탈되는 것도 두렵거니와 첫째 화인 5개월 환난 때 인간 황충들이 일어나 괴롭히는 고통과 잔인한 학살이 너무 끔찍하게 자행이 되므로 육체가 견딜 수 없을 정도라고 하였다(계 9:1~10). 지금부터라도 주의 날(안식일)을 훔쳐간 자는 철저히 눈물로 회개를 하고, 물질의 십일조는 소급하여 계산하고 본인 스스로 정리를 하는 것이 현명한 판단인데도 미련하게 미루다가 큰 화를 당하게 된다는 말씀도 변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영생을 바라보는 자는 하나님의 것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 살면서 대인(對人)과 대물(對物)관계에 있어서도 신의(信義)를 지켜야 하고 특히 시험에 들지 않도록 피차 조심해야 한다. 그 외에도 시간이나 예물, 봉사 약속을 하고 어긴 것 때문에 불미스러운 일들이 발생하지 않도록 신경을 써야 하는 것이 성도들의 기본 의무이다.

결론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생활을 하는 동안에는 안식일(4계명)과 십일조 도적질(8계명)의 범죄를 할 수 있는 여건이 주어지지 않았고 날마다 거두어들이는 만나의 십일조를 바쳤다는 구절이 없는 것을 보면 이 계명들을 기록하신 자체가 신약시대 성도들에게 해당되는 말씀이다.

④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 하지 말찌니라

שֶׁקֶר 쉐케르
거짓(속임)
עֵד 에드
증거(증인)
בְּרֵעֲךָ 베레아카
이웃에 대하여
לֹא
말라, 못하다
μὴ
말라
ψευδομαρτυρήσῃς 프슈도마르튀레세스
거짓 증거하다(속여 말하다)

구약시대의 사람들뿐 아니라 현재 기독교인들까지도 십계명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추호도 의심 없이 믿고 있으나 출애굽기 20장 16절에 거짓 증거를 하지 말라는 뜻도 모르고 막연하게 문자 그대로 인간 생활과 연관이 되어 있는 거짓말 정도로만 알고 있다. 아홉째 계명에서 거짓 증거(쉐케르 שֶׁקֶר 에ד עֵד)라는 단어 쉐케르(שֶׁקֶר 속임, 거짓, 사기)는 구약 성경에 107번이나 들어있고, 증거 에드(עֵד)는 64번이나 기록되어 있으며 신약 성경에는 거짓 증거(ψευδομαρτυρέω 프슈도말튀레오, 속임)가 5번 나오는데 모두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관계가 되어 있다.

거짓 증거라는 말씀이 기록된 곳을 살펴보면 그분에 대하여 생명을 걸고 바른 증거를 해야 참 증인의 사명을 감당하게 된다(마 19:18, 막 10:19, 막 14:56~57, 눅 18:20). 사실, 거짓 증거라는 것은 우리 주위에 사는 이웃뿐 아니라 안면부지(顔面不知)의 사람에게라도 양심을 속여 가며 진실치 못한 말을 한다는 것은 선의(善意)에 속한 자가 아니다.

그런데 본문 말씀이 혼란스러운 것은, 거짓말은 모든 사람에게 금해야 되지만 문자대로라면 가장 가까이에서 함께 다정다감(多情多感)하게 살아가는 이웃에 대하여는 거짓 증거를 하지 말라는 말씀을 하시고 그 외 사람에게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있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내용을 보면 네 이웃에게 거짓 증거를 하지 말라는 것을 문맥상으로 따져 보았을 때 대답하기가 어렵고 우회적으로 해석을 하려고 해도 별 묘안이 없다.

어쨌든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본문 그대로 해석을 하게 되면 이웃을 제외하고는 거짓말이 허용된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는 것도 석연(釋然)치 않고 억지로 풀다가 잘못하면 위증(僞證)이 될 수 있다. 세상 법에서도 위증을 하는 자는 엄한 중벌에 처하게 되는데 하물며 하나님의 자녀가 거짓말을 한다거나 바른 대답을 하지 않는 것은 신앙 양심상 허락이 되지 않는다.

사소한 문제라도 경하게 취급할 수 없지만 생사가 걸려있는 중요한 사건이 발생했을 때에 증인의 입에서 나오는 말 한 마디가 죽일 수도 있고 살려낼 수도 있다. 만약 증인의 말이 진실치 못하고 사실과 다르게 거짓말을 하면 위증죄에 해당되어 큰 처벌을 받게 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증인석에 앉은 자는 정확하게 말을 하는 것이 생명인데 자기 생각대로 지어낸 말로 가감(加減)하다가 위증죄로 판명이 나면 그 결과의 모든 책임은 증인이 져야 한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것은 예수님께 영생문제를 가지고 와서 질문하는 율법사와 관원에게 거짓 증거 하지 말라고 하신 말씀과 함께 이웃이라는 두 단어(이웃과 영생)를 묶어 놓은 것은 문맥상으로도 이해하기가 힘든 부분이다. 하나님의 말씀 중에 해석하기가 난해하고 어려운 구절이라도 반드시 그 안에 진리가 되는 답이 들어있기 때문에 어떤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정확하게 밝혀서 설명할 수 있어야 생명력이 있게 된다.

㉮ 거짓 증거를 하지 말라는 이웃은 누구인가

아홉 번째 계명은 네 이웃에게 거짓 증거하지 말라고 하신 말씀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실 때에 진정한 이웃은 과연 누구이겠는가?(눅 10:27) 제일 먼저 자신의 몸과 같이 사랑을 해야 할 그 이웃은 도대체 누구인지 바로 찾는 것이 급선무이다.

예수께서 그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라고 하신 그 이웃은 우리와 무슨 관계가 있는지 성도들에게 정확하게 소개를 해야 듣는 자가 바로 알아들을 수가 있다. 만약 자기 주위에 사는 사람을 놓고 이웃이라고 했다가 그 말이 사실이 아니라면 그 입에서 나온 말은 거짓이 되고 만다. 세상사람 앞에서도 거짓 증거하는 자는 그 위증죄(僞證罪)에 대한 문책을 엄하게 받게 되는데 하물며 하나님 앞에서 말씀의 위증은 얼마나 무서운 범죄이겠는가?

예수께서 말씀하신 이웃은 내 주위에 사는 사람이나 친인척이 아니다. 말씀(ὁ λόγος)이 육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그리스도가 참 이웃이라는 것을 예수 자신이 소개를 해 주셨다(참고. 강도만난 자의 이웃 : 눅 10:30~37). 죄인의 이웃은 그리스도라고 정확히 알려 주셨는데도 그분을 바로 전하지 않으면 참 증인이 될 수가 없다. 증인의 사명을 맡은 자가 이웃이 되는 예수를 통하여 얻은 진리를 바르게 전파하지 않고 횡설수설한다면 성도들은 그 말을 믿고 따를 수가 없다.

그러므로 주님이 지도자 신분을 가진 관원에게 십계명 중에 제9계명인 네 이웃(רֵעַ 레아, πλησίον 프레시온 : 친구, 벗, 이웃)에 대하여 위증자(僞證者)가 되지 말라고 하신 것은 예수 자신을 바르게 증거해 달라는 부탁이다. 성자 하나님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택한 백성의 모든 죄를 짊어지고 골고다 언덕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분이 우리의 참 이웃이라는 것을 널리 알려야 한다.

그가 이 땅에 계실 때 죄인의 친구가 되시고 소외(疏外)된 자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셨으며 멸시와 천대를 받는 자들에게 친구가 되어 주셨던 그분이야말로 진정한 이웃이라고 전해야 한다. 또 장차 이 땅에 강림하셔서 악한 세상을 심판하시고 천년왕국을 건설하실 그리스도 그분이 우리의 참 이웃이라는 것을 바로 소개하지 못하고 왜곡(歪曲)시켰을 때에는 자신뿐 아니라 듣고 따라가는 자들도 함께 범죄의 동참자가 되어 영생을 놓치게 된다.

㉯ 하나님의 말씀을 잘못 증거하는 자가 거짓 증인이다

모든 계명을 누구보다도 철두철미하게 지킨 사람이지만 영생문제만은 자신이 없어 예수께 와서 질문을 하는데도 시원한 답을 해주시지 않고 엉뚱하게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것은 어폐(語弊)가 있을 수 있다. 율법을 잘 지키며 양심적으로 살아온 신앙인이 남에게 거짓 증거하지 않았다는 것만 가지고 자신 있게 영생을 소유하였다는 말을 할 수 없을 것이다.

만약 영생문제를 이런 식으로 몰아간다면 거짓 증거하지 않은 자들은 누구나 영생을 쉽게 얻을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 때 고민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은 윤리(倫理)적인 면에서 율법의 계명을 잘 지켰다고 영생문제가 해결된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세상 법을 무시하거나 등한히 하라는 것은 아니다.

예수께서 거짓 증거와 함께 여러 가지 계명을 말씀하신 것을 육의 생각을 가지고 풀어 버리면 진리가 될 수 없다. 십계명 속에 숨겨진 깊은 뜻을 바로 찾아내지 못하고 문자적인 것만 보고 해석을 하다가는 자기 스스로 거짓 증거로 인한 살인범이 되고 횟수가 늘어날수록 재범, 3범으로 계속 전과가 추가될 때마다 죄의 질이 더 나빠지고 형량은 계속 무거워지게 된다.

이 세상에서 이방인들의 거짓말과 위증은 사람의 영을 해하거나 죽이지는 못해도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나오는 거짓 증인은 영혼까지 죽일 수 있다는 것을 예수께서 염두에 두고 말씀을 하셨다. 교회에서 모범적인 성도라고 칭송을 받고 육신적으로는 전혀 거리낌이 없이 완벽한 생활을 하는 자라도 진리의 말씀을 바로 전하지 못하는 자들은 하나님께로부터 위증죄를 범한 자라고 판명(判明)이 내려질 때 영생은 물건너가고 만다.

특히 택한 백성의 생명을 맡아 있는 지도자가 성도들 앞에서 증거 하는 말씀은 구원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에 두려운 마음으로 신중하고도 올바르게 전해야 화를 면할 수가 있다. 초림의 주가 이 땅에 오셨을 때에 사도들이 십자가 부활의 증인(μάρτυς 말튀스)으로서 인정을 받게 된 것도 보고 들은 것을 사실 그대로 생명을 걸고 증거했기 때문이다.

그와 같이 오늘날도 이 시대를 이끌고 갈 증인들은 다시 오실 그리스도에 대하여 증거를 할 때 좌우로 치우치지 말고 말씀을 확실하게 전해야 한다. 주의 재림은 민감하고 예민한 부분이 많기 때문에 조심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 없이 정확하게 선포하는 것이 증인의 사명이다. 자칫 잘못하다가 사명을 월권하거나 전한 말씀이 거짓 증거로 판명이 되었을 때에는 그에 대한 책임은 고스란히 전하는 자의 몫으로 남게 된다. 요한복음 6장 63절에 보면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靈)이요 생명(生命)이라고 하신 말씀을 육의 생각으로 풀어버리면 거짓 증거가 되어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지게 되고 안식세계의 축복도 빼앗기게 될 뿐 아니라 영생의 길도 막혀 버린다.

㉰ 거짓 증인은 삯꾼 목자들이다

에스겔 13장 19절에 "너희가 두어 웅큼 보리와 두어 조각 떡을 위하여 나를 내 백성 가운데서 욕되게 하여 거짓말을 곧이 듣는 내 백성에게 너희가 거짓말을 지어서 죽지 아니할 영혼을 죽이고 살지 못할 영혼을 살리는도다"라고 하였고, 20절에 보면 너희가 새를 사냥하듯 영혼들을 사냥한다고 하였다. 사리사욕을 취하는 삯꾼 목자들이나 거짓 선지자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빵 한 조각 때문에 순진한 성도들을 거짓말로 유인하여 그들의 영혼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것은 용서받을 수 없는 간접적인 범죄행위이다.

말씀에 갈급을 느끼는 성도들을 잘못된 기도처나 사이비(似而非) 단체로 불러 들여서 거짓 예언자들의 말을 믿도록 이적기사도 보여주며 호감을 사게 하는 행동들은 영과 육을 다 망가뜨려 놓고 가정까지 파괴시키는 위선자들을 조심해야 한다. 거짓 영을 받은 자들이 자기 육감과 생각을 마치 하나님의 계시인 것처럼 포장을 해놓고 감언이설(甘言利說)로 성도들을 속이며 그 말을 순종하지 않으면 화를 받을 것같이 위협을 하기 때문에 꼼짝 못하고 끌려가게 된다.

안타깝게도 신성시하는 교회 안에 이상하게 세상 풍습이 은밀하게 들어와서 불신세계에서나 볼 수 있는 행동을 하며 물의를 일으켜도 제재(制裁)를 하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당할 때가 많다. 진리에서 탈선한 무리들이 수시로 체육관이나 공공기관에 많은 사람들을 운집시켜 놓고 하나님의 말씀을 인용하여 거짓 증거를 하는 작태(作態)들은 마치 희극배우처럼 만담(漫談)을 섞어가며 웃기기도 하고 때로는 겁을 주기도 한다.

봇물처럼 쏟아내는 달변(達辯)가들은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가며 변명을 하겠지만 그 언변 속에는 생명력이 있는 성령의 역사는 없고, 그들의 입에서는 진실치 못한 속설(俗說)들을 거침없이 쏟아내므로 진리는 점점 막혀버린다. 강단에서 시간마다 선포되는 설교가 성경 말씀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코믹(Comic)한 만담들을 엮어 가면서 귀만 즐겁게 하는 것은 영혼의 양식이 되지 못한다.

요즘 기독교 안에서 웃지못할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상황을 보면 젊은 세대들의 볼썽사나운 행동과 저속(低俗)적인 언어와 표정들로 열광을 하며 오염을 시키고 있다. 특히 잘못된 지도자들은 세상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풀어준다는 미명(美名)아래 강단에서 목청을 높이고 코미디언(Comedian)이나 희극 배우처럼 쇼(Show)에 가까운 연기로 웃겨야 은혜가 풍성하다고 하는 것은 잘못된 신앙이다.

한편으로는 굶주리고 목말라 죽어가는 심령들이 진리의 만나와 생수를 찾아 방황하고 있는 자들이 많다. 이들의 마음에 영생의 말씀을 풍성히 채워 주지 못하면 삶에 지쳐 있는 성도들의 심령은 점점 메말라 영혼의 양식이 갈급하여 몸부림을 치게 된다. 내세의 소망을 바라보고 살아가는 성도들의 안식처는 교회이며 이곳이 기독교인의 마지막 보루(堡壘)이다. 험한 세상에서 신앙생활을 하기가 힘이 들고 어려울 때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로 풀면서 용기를 얻고 삶의 활력소가 되어야 할 교회가 오늘날에는 찬송과 기도 소리가 끊어지고 있다.

옛날에는 목회자의 설교에 은혜 받고 흐르는 눈물이 앞을 가려 어찌할 바를 모르고 주께 엎드려 뜨거운 회개와 감사를 드릴 때가 많았지만 지금은 그러한 모습을 찾기가 어려워졌고 세상의 빛이 될 교회가 오점(汚點) 투성이가 되었기 때문에 기독교인이라고 말하기가 민망스럽고 창피하다. 오늘날 입을 열기조차 부끄러운 일들이 교회 안과 밖에서 계속 일어나고 있으며 빛을 밝혀야 할 기독교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세상과 함께 혼탁해져 가는 현실을 하나님은 좌시(坐視)하지 않으시고 반드시 이들에게 중벌(重罰)을 내리시게 되고 응분(應分)의 조치를 취하실 것이다.

㉱ 진리를 오염시키는 거짓 선지자들

기독교 전체를 욕되게 하는 사단의 무리들이 참 종의 모습으로 위장을 하고 나타나서 잘못된 진리를 전파하며 성도들의 영혼을 사냥하고 복음에 흙탕물을 일으켜 놓기 때문에 참 지도자가 전하는 말씀도 불신을 받게 되고 전도의 길마저 막아 버리므로 교계가 아주 골머리를 앓고 있다. 본인 스스로 시대적인 선지자요, 하나님이 보낸 사자라고 자처(自處)하지만 참 이웃에 대하여 정확한 설명을 하지 못하는 입술에서 영생의 만나와 진리의 생수가 나올 수가 없다.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전하지 못하는 자들은 참 이웃인 그리스도에게 누를 끼칠 뿐 아니라 성도들의 영혼을 죽이는 살인 행위를 반드시 근절시켜야 한다. 진리를 변질시키는 무리들은 하나님 앞에 불법을 행하면서도 자가당착(自家撞着)에 빠져 열심을 내고 있으나 이들은 모두 성도들의 영혼을 죽이는 간접 살인범들이다.

신경이 쓰이는 것은 위증자(僞證者)들이 성경을 들고 나와 거짓을 진리인 것처럼 포장을 하여 기만정책(欺瞞政策)으로 유린(蹂躪)하기 때문에 성도들은 감쪽같이 속아 넘어갈 수가 있다. 참 종으로 위장한 사단의 하수인들은 입을 열 때마다 거짓말을 참 말처럼 위장을 하고, 얼토당토않은 행동을 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가상(假想)적이긴 하지만 20년, 또는 30년 이상 진리가 아닌 것을 조금씩 섞어가며 강론을 한 거짓의 종류는 천차만별일 것이다. 이들이 등단(登壇)하는 횟수에 따라 말의 실수를 모아 통계를 낼 때 그 양(量)은 상상할 수가 없을 것이다. 이 집단들은 부흥집회나 연합모임을 빼놓고도 주일 낮과 밤, 그리고 수요일과 금요 모임에서 입술로 쏟아낸 위증의 분량을 계산할 수도 없거니와 측정할 방법이 없다.

최소한 한주에 11번 정도 강단에 서게 된다고 가정했을 때 1년에 572번(52주×11)이나 되고 그것을 다시 30년을 합산해 보면 무려 17,160번 이상이 될 수가 있다. 또 시간별로 나누어서 20~30년 동안 강론을 한 위증의 통계는 천문학적인 숫자가 나올 것 같다. 거짓 증인들이 전하는 말의 실수를 합한 것과 세상에서 생업에 종사하는 일반인들의 거짓말을 모아 비교하면 종교인이 단연 우위에 설 것 같은 느낌이다(은혜시대(13대) 말기 역시 위증하는 량(量)은 가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다).

실제로 악의가 없는 말을 주고받아도 하나님의 백성들의 영혼을 다치게 하거나 마음의 상처를 입히는 것만으로도 간접 살인한 책임을 물으시겠다는 말씀은 두렵기만 하다.

㉲ 참 증인은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종의 신분이다

진실한 종은 자기 상전(上典)만을 위하여 살고 그분의 뜻만을 받들면서 죽기까지 충성을 하고도 자신의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주인만을 위하여 일을 하는 종은 항상 마음과 뜻을 다하여 섬기겠다는 것 외에 다른 생각을 하지 않고 언제나 제 위치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늘 살피게 된다. 종이라는 신분은 자기 개인 욕심을 부려도 안 되고 주인 이름을 빙자하거나 도용하여 영광을 가로채는 일은 더더욱 금물이다.

종의 사명은 성도들에게 진리의 양식을 풍성하게 공급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혼선이 없도록 잘 가르치는 일에 심혈(心血)을 쏟아야 한다. 참된 종과 증인의 길은 생계를 위한 취직도 아니고 기업을 경영하는 사업도 아니다. 다만 성도들의 참 이웃이 누구라는 것을 바르게 가르쳐서 천국으로 인도하는 안내자일 뿐이다.

주인의 수하에 있는 자는 언제나 자기 사생활에 얽매이지 않고 항상 섬기는 자세로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일에만 전념하는 것이 일꾼의 사명이다. 주인을 위하여 충성하는 종은 육체의 고통과 환경의 어려움이 겹쳐 힘들 때가 많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사명에 긍지를 가지고 많은 생명을 살리는 일에 보람을 느끼며 전념을 하는 자에게 주께서 힘과 용기를 더해 주실 뿐 아니라 그의 행함을 낱낱이 기억하셨다가 후한 보상을 내려 주신다.

만약 종의 신분을 떠나 월권(越權)을 하여 상전 행세를 하며 주인의 가문을 어지럽히거나 명예를 실추시켰을 때는 엄한 문책과 함께 그 종의 사명은 한순간에 끝나고 만다. 야고보 선생은 "선생 된 우리가 더 큰 심판 받을 줄을 알고 많이 선생이 되지 말라 우리가 다 실수(失手)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고 했다(약 3:1~2).

ἐν
λόγῳ 로고
οὐ
없는
πταίει 프타이에이
실수하다
τέλειος 텔레이오스
온전한(성숙한)
ἀνήρ 안네르
사람

세상적인 선생은 학문의 지도와 제자 양육을 위한 직업이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선생은 영생을 가르치며 주님의 나라로 인도하는 전문직이기 때문에 더욱 언행에 실수가 있어서는 안 된다.

⑤ 속여 취하지 말라

μὴ
말라
ἀποστερήσῃς 아포스테레세스
속여 취하지

속여 취하지 말라는 것은 부당하게 남에게 사기를 쳐서 빼앗지 말라는 뜻이다. 다시 말해서 위의 내용은 자신이 부요해지기 위하여 타인의 재물을 부정한 마음으로 손을 대거나 착취하지 말라는 것이다.

예수께서 사악한 행동으로 재산 증식이나 축적(蓄積)을 하는 자처럼 남을 속여 착복(着服)하는 것을 금하라는 충고를 듣는 부자 청년으로서는 자존심이 상하고 인격적으로도 모멸(侮蔑)감을 느낄 수가 있다. 왜냐하면 남에게 손해를 끼친 일도 없이 자기 나름대로 착하게 살면서 재산을 모아왔는데 마치 폭력배나 품행이 좋지 않은 사기꾼들한테나 하실 법한 말씀을 하셨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신 근본 취지는 거짓 선지자와 부패한 종교 지도자들을 향하여 우회적인 책망을 하신 것이다. 자칭 선지자라고 하는 자가 축복을 빌미삼아 거짓 예언을 하며 자기가 기도 응답을 받았다고 운운(云云)하는 행위를 들어 속여 취한다고 하였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오늘날 불법이 성행하는 시대에 속고 속이는 일이 빈번해지고 있으며 성도들 주위에 낯뜨거운 일들이 심심찮게 벌어지고 있다.

참 종의 모습으로 위장한 사단의 무리들은 순진한 성도들을 꾀어 남편의 사업, 승진, 자녀의 장래, 가정의 평안과 행복 등을 미끼로 예물을 강요하고 때로는 위협이나 불안을 초래하여 재물을 착취하는 행동을 금하라는 것이다. 거짓 선지자들은 재물에 흑심(黑心)을 품고 남의 소유를 강제로 빼앗으려고 사기를 치기 때문에 그 말에 속아 피해를 입지 않도록 성도들에게 주의 시켜야 한다.

이 땅 위에 강림하시게 될 주님을 기다리며 정직하게 살아가는 자들은 아무리 가난하고 어려워도 남의 재산을 탐하여 도적질을 하거나 부정한 재물에 손을 대지 않는다. 주님의 뜻을 따라 살며 신앙 양심에 벗어나는 일은 하지도 않고, 거짓 증거는 하나님이 두려워 엄두도 내지 않지만 그보다 더 괴로운 것은 소리 없이 마음속으로 침투해 들어오는 죄와 싸우는 것이 참으로 힘들고 고통스럽다.

율법시대에는 마음속으로 지나친 욕심을 부린 것이 외부에 범죄로 노출될 때에만 죄의 유무(有無)와 경중(輕重)을 가려내어 엄벌에 처했지만 신약시대에 와서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큰 죄를 짓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심중에 미운 생각만 가져도 살인죄가 성립이 되고, 행동에 옮기지는 않았으나 순간적으로 음욕을 품기만 해도 간음한 자로 인정된다.

이러한 계명들은 모두 영생을 위한 법이기 때문에 외관상으로 나타나는 육적 범죄보다 그 이면에 영적 범죄를 더 엄격하게 다루고 있다는 것을 알고 각별(恪別)히 조심을 해야 시험을 이길 수 있다. 이로 보건대 이 땅 위에 사는 성도들이 아무리 정결하고 깨끗하게 살아간다고 해도 영적으로 그 마음속을 살펴보면 누구나 한두 가지 계명에 걸리지 않은 자가 없고 그냥 쉽게 넘어갈 규례는 하나도 없다.

진실하게 살려고 애를 쓰는 성도들은 자신을 말씀의 거울 앞에 세워놓고 버릴 것이 무엇이며 고쳐야 할 것은 또 어떤 것인지 무시로 점검을 해야 한다. 혹시 내 몸에 경미한 죄가 들어와 자신의 마음이 오염되어 악의 뿌리가 자라고 있지 않은지를 늘 살펴야 영생할 수가 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죄악세상에서 살아가는 동안 항상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죄의 근원을 찾아내어 십자가 피로 겉과 속을 깨끗이 닦고 말씀에 굳게 서서 사단과 싸워 승리하는 자만이 주 앞에 설 때에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는다.

⑥ 네 부모를 공경하라

אִמֶּךָ 임메카
모를
אָבִיךָ 아비카
너 부
כַּבֵּד 카베드
공경하라, 존경하라
τίμα 티마
공경하라
τόν
(그)
πατέρα 파테라
σου
καὶ 카이
(와)
τὴν
(그)
μητέρα 메테라
모를

예수께서 십계명의 순서대로 다루지 않고 마지막 결론 부분에 와서 영생의 축복을 소유할 자에게 제5계명의 말씀으로 끝을 맺으셨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출 20:12)고 하신 이 말씀은 지금까지 육신의 부모를 잘 섬기면 이 땅에서 장수(長壽)하게 되는 줄로 믿고 있었으나 이 내용을 세상 부모로 생각하면 큰 의미가 없다.

육신의 부모에게 효도(孝道)했다는 조건으로 오래 산다는 말은 맞지 않지만 그렇다고 나를 낳아주신 분을 공경하지 말라는 것은 아니다. 육신의 부모를 잘 받들어 섬기는 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사랑하신다. 실제로 이 땅에서 보이는 부모에게 효도하지 않는 자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바로 섬길 수가 없다.

육신의 부모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말하는 것인데 십계명에서 부모라는 개념은 성(性)에 관계없이 하나님 한 분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창세기 2장 24절에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라고 하신 말씀을 찾아보면 첫 사람 아담은 흙으로 빚어 만들어진 자인데 어떻게 부모가 있을 수가 있는가? 이 말씀은 에베소서 5장 31절에 예수 그리스도께 응하는 예언이 되었다.

하늘 보좌에 계시던 예수께서 부모가 되시는 하나님 곁을 떠나 이 세상에 내려와 성도들과 연합할 때에 이 땅에서 혼인이 성립(成立)되는 부부의 비유를 들어 큰 비밀이라고 하신 그대로 그리스도는 성도의 남편으로 성취 되었다(참고. 박성목 목사 저서"때가차매"아담의 결혼비밀). 또 한 가지는 예수께로부터 죄 용서 받은 자들이 아들의 영을 받아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Abba ὁ πατήρ)라고 칭(稱)할 수 있는 것도 십자가 피로 이루어진 것이다(갈 4:6).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친자녀가 되게 하셨고 부자관계가 성립된 이후부터 때를 따라 도와주시며 성도들과 영원히 함께 하실 부모가 되어 주신 것은 참으로 놀랍고도 감사한 일이다. 윤리적인 면에서는 나를 낳아주신 부모를 공경(恭敬)하며 교육받은 대로 효도하는 것이 자식 된 도리이지만 제5계명의 근본 뜻은 육신의 부모보다 영적 부모가 되는 하나님을 잘 받들어 섬기고 그분께 충성하는 자에게 영생을 약속해 주시며 생명이 길다는 말씀을 하신 것이다.

성도들은 참 부모이신 하나님을 잘 섬기고 말씀에 순종하면 오래오래 장수할 수 있도록 하시겠다는 약속의 결론이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이루어질 예언이다. 신명기 4장 40절에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규례와 명령을 지키라 너와 네 후손이 복을 받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서 한없이 오래 살리라"고 하신 것도 훗날 신약시대에 성취될 말씀으로 기록해 놓았다.

신명기 30장 20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말씀을 순종하며 또 그에게 부종(附從)하라 그는 네 생명이시요 네 장수시니 여호와께서 네 열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 네가 거하리라"고 하신 말씀 역시 마찬가지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계명을 잘 지키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한없이 오래 살도록 해주시겠다는 언약도 신약시대에 도래하는 천국을 염두에 두고 하신 말씀이다.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이 정복한 나라도 장차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우실 나라를 모형으로 보여주신 것이지 참 형상은 아니다.

양의 피를 가지고 출애굽 한 백성들이 광야 길을 거쳐 약속의 땅에 들어가서 장수하지도 못했고 생명이 길게 된다는 말씀도 그들에게 성취되지 않았으며 가나안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아니었다. 율법책에 기록된 모든 말씀은 장차 주님의 나라에서 이루어질 축복을 미리 거울로 보여주셨을 뿐이다.

신약시대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피로 언약을 맺은 백성들이 십계명의 말씀대로 순종하여 잘 지키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땅에 들어가서 한없이 오래 살게 될 것을 출애굽 당시에 모세를 통하여 기록해 주신 목적을 바로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참 부모가 되신 하나님을 정성껏 섬기고 공경하며 맡겨주신 성도들을 진리의 말씀으로 양육하며 보살피는 자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기업(基業)으로 상속해 주시고, 그 땅에서 오래오래 살며 장수하게 된다는 말씀의 완전 성취자가 되는 것이다.

마지막 열 번째 계명은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찌니라

רֵעֲךָ 레에카
네 이웃의
בֵּית 베트
집을
תַּחְמֹד 타흐모드
탐내지(흠모하다)
לֹא
말찌니라
μὴ
말라
ἀποστερήσῃς 아포스테레세스
빼앗다(강탈하다)

십계명의 마지막 부분에 와서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지니라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는 무엇이든지 탐내지 말라"고 하셨다.

רֵעֲךָ 레에카
네 이웃의
בֵּית 베트
집을(가족, 족속)
תַּחְמֹד 타흐모드
탐내지
לֹא
말찌니라
רֵעֲךָ 레아카
이웃의
אֵשֶׁת 에쉬트
아내나
תַּחְמֹד 타흐모드
탐내지
לֹא
말찌니라
וַחֲמֹרוֹ 와하모르
그의 나귀와
וְשׁוֹרוֹ 웨쇼로
그의 소나
וְאַמְתּוֹ 와아마토
그의 여종이나
וְעַבְדּוֹ 웨압도
그의 남종이나
לְרֵעֲךָ 레레에카
네 이웃의 소유를
אֲשֶׁר 아쉘
(그의)
וְכֹל 웨콜
무릇(모든)

우리말 성경에는 출애굽기나 신명기에 이웃의 소유로 번역이 되어 있다.

רֵעֲךָ 레에카
네 이웃의
בֵּית 베트
소유, 집, 가족, 족속

단 신명기 5장 21절에만 그의 밭(שָׂדֵהוּ 사데후 : 전토, 들, 육지, 땅)이 들어있다. 예수께서 부자 청년과 관원에게 아홉 번째 계명까지만 언급하시고 중단을 하셨으나 마지막 남은 열 번째 계명도 세밀하게 분석하여 그 속에 숨겨져 있는 진리를 찾아내는 것이 십계명을 접(接)하는 자들에게 신앙의 보탬이 될 것이다.

십계명 끝부분에 네 이웃의 것을 탐(貪)내거나 빼앗지 말라고 못을 박아 놓은 것도 다른 계명과 같이 특별한 의미와 뜻이 들어있다. 이렇게 중요한 비밀이 숨겨져 있는데도 찾지 못하고 일반 상식적인 말을 하게 되면 납득이 잘 안되거니와 진리로 받아들이기가 힘이 든다. 만약 범죄를 예방하는 차원에서 하신 말씀이라면 이웃의 아내뿐 아니라 모든 사람의 아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여기서 타 지역에 사는 여인에 대하여 문제를 삼지 않고 하필이면 네 이웃의 아내나 종이나 재물에 욕심을 내거나 빼앗지 말라고 말씀하신 이유가 무엇인지 그 뜻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 세상 사람들의 심리상태를 보면 남의 것을 빼앗지도 않고 착취하는 것이나 부정한 행위를 하지 않아도 마음속에 있는 탐심은 재물이 많고 적음에도 관계가 없고, 지식이 많은 학자나 상류층에 속한 자들도 마찬가지로 죄 지을 요소들을 다 가지고 있다.

재물의 욕심은 신, 불신 간에 누구나 약간의 차이는 있으나 본능적으로 물욕(物慾)이 없는 자가 아무도 없다. 그런데 본문 중에 네 이웃의 집이나 아내, 남종, 여종, 소, 나귀 등 그에게 속한 모든 소유에 탐욕을 부리지 말라고 하신 내용 중에 이웃의 아내(רֵעַ 레아 또는 πλησίον 프레시온)란 말에 눈길이 끌리게 된다.

이제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라고 하신 뜻은 어느 정도 이해가 될 수 있으나 이웃의 아내를 탐내거나 빼앗지 말라고 강조하신 말씀을 다시 조명을 해보지 않을 수 없다. 이제 그 이웃의 아내는 도대체 누구를 지칭하는 것인지, 말씀 속에 공개되지 않고 감추어진 뜻이 무엇일까라는 생각을 하며 깊이 연구해 보아야 할 것 같다.

3) 진정한 네 이웃의 아내는 누구이며 여기에 간음과 남녀종이나 소나 나귀는 무엇을 의미 하는가

רֵעֲךָ 레에카
이웃
אִשָּׁה 이솨
부인, 아내
τοῦ
(그)
πλησίον 플레시온
이웃의
σου
τὴν
(그)
γυναῖκα 쿠나이카
아내

네 이웃의 아내와 그의 남종과 여종, 그의 소유인 소나 나귀를 하나씩 열거 하였지만 모든 것을 통틀어 네 이웃의 집이라(רֵעֲךָ 레에카 בֵּית 베트)고 말하였다(출 20:17). 열 가지 계명을 엄밀히 따져보면 살아서 가나안 땅에 들어갈 자들이 지켜야 할 법조항이지만 그 중에 7계명과 10계명의 해석이 제일 큰 난해가 되는 부분이다(10이라는 숫자는 세상의 만수(滿數)이다).

이제부터 그 이웃의 아내 될 자는 누구를 가리키는지 살펴보아야 하고 또 그의 소유인 소나 나귀는 어떤 의미에서 탐내지 말라고 하였을까라는 것도 검토의 대상이다. 특히 이해하기가 어렵고 부담스러운 것은 일곱 번째 계명에 간음하지 말라고 하신 것과 열 번째에 이웃의 아내를 탐내지 말라고 하신 계명 모두 이성문제에 관한 부분을 어떻게 풀어야 좋을지 곤혹(困惑)스러워진다.

간음하지 말라(7계명)는 것이나 이웃의 아내를 탐내지 말라(10계명)는 두 계명의 범죄행위의 기준을 정하는 것이 어렵고, 또 간음의 분류는 어떤 방식이 적합할지 명확하게 식별을 한 후에 바른 해석이 나와야 할 것이다. 일곱 번째와 열 번째 계명 중에 범죄의 잣대를 어느 쪽에 더 크게 비중을 두고 적용을 해야 옳은지 아니면 동일하게 취급하는 것이 맞는 것인지 확실한 답변을 해줘야 헷갈리지 않는다.

참으로 희한한 것은 두 계명 모두 성적 범죄인데도 하나님께서 중복이 되도록 나누어 놓으신 것도 궁금하지만 이웃(πλησίον 플레시온)의 아내를 탐하여 취(取)한 죄와 일반 간음의 차이점과 경(輕), 중(重)에 대한 설명이 필요한 부분이다. 지금까지 교계에서 일곱 번째 계명은 이성 간의 범죄로 엄하게 다루면서도 열 번째에 와서는 구체적으로 설명을 하지 않고 있는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 답답하다. 만약 이 부분에 대하여 바른 정의(定義)를 계속 내려 주지 못하게 되면 각자 나름대로 덕스럽지 않은 해석을 하다가 많은 혼돈을 주게 된다.

일곱 번째와 열 번째 계명 모두 남녀 관계에서 발생되는 성적 범죄들을 유형별로 깔끔하게 풀어내지 않고 그냥 적당히 넘겨 버리면 어딘가 모르게 찜찜한 생각이 드는 데다가 이 문제를 누가 따지고 들 때 대답하기에 큰 부담도 되고 난처해질 수가 있다. 두 계명은 모두 이성 관계에서 오는 육체의 성적(性的) 범죄라는 것이 문맥상으로 보나 내용상으로 봐도 너무나 확실한데도 정확하게 풀어서 증명해 보일 방법이 없다.

그러나 만에 하나 그 이면에 다른 뜻이 숨어 있다면 그 부분을 집중적으로 파헤치고 드러내어 답을 찾아내는 것이 옳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고향 찾아가는 백성들을 위하여 십계명을 기록해 주실 때에 해석을 대충 하도록 하지 않으셨을 것이다. 이러한 난제들을 확실하게 다루지 아니하면 영생문제에 제동이 걸릴 수가 있기 때문에 어떤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정확한 진리가 될 수 있는 영적 해석이 나와야 사망을 이길 수 있는 무기가 된다.

그러나 육적 이스라엘은 이런 부분에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고 크게 부담을 가질 이유가 없는 것은 그들이 지나온 일들은 모두 신약시대의 모형이기 때문이다.

4) 참 이웃의 아내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는 성도를 말한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문제는 육적인 것도 중요하지만 영적인 면의 깊은 뜻을 살펴보지 못하고 외부적으로 노출되는 행위에만 치우쳤을 때에는 음성적으로 숨어있는 진리를 찾아내기가 어렵다. 십계명 속에 간접 범죄로 분류되는 여섯 가지에 대하여 분리를 잘하면서 설명을 하였으나 그 중에도 양분(兩分) 되어져 있는 간음(7, 10계명)문제만은 아주 애매하기 때문에 그 부분을 그냥 적당히 넘길 수는 없다.

간음에 대한 분류를 하기 전에 이웃의 아내는 누구라는 것을 밝히고 난 다음에 두 계명의 간음을 어떻게 분류를 할 것인지를 밝혀내고 이웃이라는 분의 아내를 취하는 간음과 그냥 일반 간음을 식별하여 원칙에 어긋나지 않도록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유형의 범죄들은 세상법으로는 정확히 가려낼 수가 없으나 영적인 면에서 확실하게 밝혀서 증명이 되어야 수긍할 수가 있다. 앞에서도 거론했지만 이 문제의 정답 역시 이웃에 대한 해명이 먼저 나와야 쉽게 풀릴 수가 있다.

9계명에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라고 하신 말씀과 10계명에 이웃의 아내를 탐하지 말라는 두 문장을 연결시켜 보면 이웃은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라는 것이 밝혀지고 아내는 그의 신부가 되는 성도라는 것을 바로 알게 될 것이다. 현재 나의 이웃은 이 땅 위에서 하나밖에 없는 예수 그리스도이며 그 외에 다른 이웃이 있을 수가 없다. 죄로 인하여 죽은 자를 살려주시고 자신의 피로 씻어 정결케 하여 신부로 삼아주신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참 남편이며 이웃(πλησίον 플레시온)이라는 것을 알게 된 이후로는 누구에게나 이 사실을 알려야 한다.

예수를 시험하러 온 율법사에게 신명기 6장 5절에 하나님을 사랑할 것과 레위기 19장 18절에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는 구절 속에 예수 자신을 이웃이라는 이름 안에 살짝 넣어 놓고 하나님과 똑같이 사랑하라고 하셨다. 만약 하나님과 나(예수)를 동일하게 사랑하라는 말씀을 그에게 하셨다면 예수를 책잡기 위하여 온 율법사는 꼬투리를 잡고 나사렛 이단 예수가 하나님과 동일한 대우를 받기 위하여 가증스러운 말을 한다고 공회원들에게 고발을 하거나 아니면 돌을 들어 쳤을지 모른다(참고. 박성목 목사 저서 "때가 차매"에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

예수님 당시에 영생문제를 놓고 서로 주고받은 말씀은 그들에게 해당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따지고 보면 신약시대에 성도들에게 정확하게 알려주시기 위한 자리를 이들과 함께 마련했던 것이다. 십계명 전체의 내용을 외관상으로 얼핏 보기에는 광야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필요한 계명으로 되어 있는 것 같지만 목적은 훗날 영적 이스라엘에게 응하도록 되어 있다.

실제로 돌비에 새겨주신 십계명은 광야에서 생을 마감할 백성들은 별 의미가 없으나 안식할 땅에 들어갈 자들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필수과목이 된다. 하나님께서 영생의 초석(礎石)이 되는 열 가지 계명을 율법 중에서 선정하여 이 규칙을 반드시 지키는 자에게 약속의 땅을 밟을 수 있도록 정해 주신 것도 신약시대를 위한 것이다.

십계명의 비밀이 밝혀진 오늘날 어린양 예수의 피를 가진 성도들이 광야 같은 세상길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만 목적은 안식세계이기 때문에 이 땅에 미련을 두거나 흐르는 세월을 아쉬워 할 이유는 없다.

5)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웃의 소유라는 단어 속에는 그리스도의 것이 되는 모든 것을 포함해 놓았다. 대표적으로 이웃의 아내를 비롯하여 남녀종이나 짐승들과 밭의 어떤 물건이든지 인간들이 사사로이 손대거나 그것을 취하는 것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금해 놓으신 법이다. 그리스도에게 속한 신부와 그의 소유가 되는 모든 피조물에 대하여는 그 어느 누구도 세상적인 방법으로 흠모(欽慕)하며 탐하거나 개인 욕심대로 이용해서는 안 된다. 자기 육신의 남편이나 아내와 재산까지, 하나님께 소속이 되어 있는 것을 자기 소유물로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예수께서 자기의 신실한 아내로 삼은 신부를 인간의 힘으로 좌지우지(左之右之)하며 인권을 유린하거나 방해(妨害)하지 말고 협력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다시 말해서 예수 그리스도에게 속한 것은 어떤 것이든지 탐욕을 부리거나 강제로 빼앗지 말아야 할 뿐 아니라 비방과 폄론하는 것까지 금해 놓으셨다. 그 한 예로 하나님 자신의 수족같이 쓰시는 모세를 향하여 미리암이 누이의 입장에서 구스 여자 얻은 것을 문제 삼다가 문둥병이 걸린 사건을 들 수 있다(민 12:1~16 : 하나님과 모세는 어떤 사이였겠는가를 생각할 때 신약시대에 이웃과 참 증인의 관계를 비교해 볼 수가 있다).

피조물 중에 그리스도의 것으로 열거된 여러 명칭들은 모두 이웃의 소속이 되어 있는 성물(聖物)이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접근을 해야지 경하게 여기는 것은 잘못이다. 이웃이라고 하는 그리스도 그분의 소유를 탐하거나 자기 소유물같이 함부로 사용하는 것은 아주 위험한 발상이며 범죄 행위가 되는 것이다. 아무리 조그마한 물건이라도 성전에 가져와 주님께 바친 이후에는 본인 마음대로 할 수가 없다. 이미 자기 손에서 벗어날 때부터 소유 권한은 상실 되므로 자신이 주권행사를 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저버림과 동시에 월권이 된다.

그 당시에 소나 나귀는 하나님의 집에 짐을 운반하거나 교통수단으로 이용되었고, 오늘날에는 교회 성물을 옮기거나 교통 편의로 사용하는 자동차이며 그 외에 또 다른 기구들 역시 하나님의 전에 쓰이는 귀한 물건이므로 성전에서 일하는 직원들이나 성도들도 개인 용도로 쓰지 말라는 경고의 말씀이다. 열 번째 계명 안에 들어있는 것은 모두 성물로 구별되어져 있는 것들은 지혜롭게 처리하면서 정리정돈(整理整頓)을 잘 해놓아야 하고 특히 하나님의 것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성물들을 소중하게 여기며 관리를 할 줄 아는 자에게 귀한 직분도 맡기신다.

여기 욕심 부리고 탐내다(ἐπιθυμήσεις 에피뒤메세이스 תַּחְמֹד 타흐모드)는 단어의 뜻은 갈망하다, 사모하다, 욕심을 내다라는 말이다. 제사장을 돕고 성전에서 열심히 봉사하는 젊은 사환(使喚)이나 계집종까지도 그리스도의 소유라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 이웃과 연관을 지어 놓은 것들이기에 함부로 대하지 말고 함께 협조를 해야 한다. 만약에 하나님의 것과 개인 것을 구별하지 못하고 주의 것을 인간의 소유인 것처럼 취급하는 자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엄한 문책(問責)을 하며 중벌로 다스리시겠다는 뜻이 들어있다.

이 세상에서 세력을 부리고 남을 억압 할 수 있는 자의 횡포는 말단에 있는 자나 최하급(最下級)의 신분으로는 상상조차 할 수 없겠지만 힘 있는 권력자나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은 자기의 직위를 악용하여 주의 신부된 자의 권리를 박탈시키거나 종들을 자기 욕심대로 손안에 넣고 좌지우지 하는 죄를 범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소유로 결정이 난 성물은 레위인과 제사장 외에는 함부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 만약 피치 못할 사정이 생겼을 경우에는 편의상 제사장께 허락을 받아야 하지만 가급적이면 하나님께 바쳐진 물건을 활용하지 않는 것이 본인에게 복이 된다.

하나님께서 대신관계에서 섬기는 정성과 대물관계의 관리뿐만 아니라 인간들이 살아가는 삶 속에서도 세밀한 부분까지 관찰하시기 때문에 그분의 마음에 들도록 능동적인 봉사가 필요하다. 성도들은 항상 하나님의 면전에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은 완벽(完璧)하게 처리하고 깔끔하게 관리하는 일에 인정을 받게 되면 그를 불러 큰 사명을 맡겨서 위대한 일을 할 수 있도록 능력을 베풀어 주신다.

4. 영생의 핵심이 되는 십계명

출애굽기 20장에 기록된 열 가지 법은 하나님과 나 사이에 맺은 성문계약(成文契約)이므로 고향을 찾아가는 자들 개개인이 어느 한 계명이라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 율법의 중요한 핵심(核心)이 되는 부분 열 가지 계명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시며 자손 대대로 지켜야 할 중요한 문서가 되게 하신 동시에 신약시대의 성도들에게까지 연관을 지어 놓으신 것이다.

선민이라고 하는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400년 동안 애굽에 살 때에는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법조항이 없었지만 출애굽 이후에 율법을 입법(立法)화 한 다음에는 그 법을 준수해야 복을 받도록 하신 그 자체가 신약시대를 위한 것이었다. 그들이 광야에서 신령한 식물을 먹고 마신 것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어질 그림자로 보여주셨다. 고린도전서 10장 4절에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며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라고 하신 것을 볼 때 모세의 손에 들려진 두 돌판 역시 신약 시대에 말씀이신 예수 자신을 상징하는 것이다.

애굽에서 나온 백성들이 광야에 나와 금송아지 우상 앞에 경배한 범죄로 인하여 첫 번째 돌판을 깨버린 것 역시 예수께서 초림으로 이 땅에 오셔서 인류의 죄 때문에 십자가 상에서 그 옥체가 부서지므로 버림돌이 되시는 과정을 모세의 손에 들려진 두 돌판을 가지고 미리 예언적으로 보여주신 것이다. 모세를 중심했던 첫 번째 돌판이 깨어지고 모세도 광야에 쓰러진 것은 초림으로 오신 예수님의 죽음과 일치가 된다. 법궤를 앞세우고 가나안에 들어간 여호수아의 역사는 장차 이 땅에 강림하실 그리스도의 역사로 완성이 되도록 하신 것을 서로 비교했을 때 구약의 모든 역사는 신약시대의 모형이라는 것을 믿을 수 있도록 해 놓으셨다.

과거 출애굽 역사에서 두 지도자가 역사했던 두 시대를 가지고 전자는 모세 지팡이 역사를 했고 후자는 여호수아가 법궤를 앞세워 가나안 땅을 정복하게 되는 과정도 신약시대에 나타날 초림과 재림으로 이어질 것을 희미한 그림자로 나타내신 것을 확실히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모세의 뒤를 이은 여호수아가 출애굽한 2세들을 이끌고 가나안에 들어간 것 역시 예언적으로 볼 때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에 택한 백성을 천국으로 인도하는 역사의 거울이 되게 하신 것이다.

히브리음(音)인 여호수아는 헬라음(音)으로는 예수라는 이름인데 그 뜻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하실 자로 나타나셨다. 다시 말해서 애굽을 출발의 기점으로 하여 가나안 땅에 입성하기까지 두 시대(모세, 여호수아)에 일어났던 전 과정을 1차 모세와 2차 여호수아의 두 시대로 나누어 정리해 보면 신약시대에 죄인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는 1차가 되고, 심판주로 오실 그리스도의 역사는 2차로 짝을 맞출 수가 있다.

여호수아는 두 번째 돌 비석을 앞세우고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가나안에 입성한 것도 재림의 주님께서 머릿돌을 내어 놓으므로 택한 백성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승리의 노래를 부르며 천국에 들어가게 될 것을 출애굽 역사에서 실천적 예언이 되도록 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마지막 시대에 큰 구원과 영생을 바라보고 달려가는 성도들은 십계명을 돌비에 새겨주신 근본 뜻을 깨닫고 그 속에 기록된 계명대로 실천해야 약속의 땅을 밟을 수가 있다.

특히 십계명 안에 기록된 내용 모두 하나님과 나 사이에 일대 일의 불변의 계약서라는 것을 성도들에게 자세히 알려주고 이 계명을 완벽(完璧)하게 잘 지켜서 사망을 삼키며 안식세계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택한 백성들에게 열 가지 계명 속에 숨겨져 있는 진리를 설명할 때에 하나님 앞에 직접 범죄가 무엇이며, 간접 범죄가 어떤 것인지를 하나씩 정확하게 짚어 주면서 영생의 길로 인도해야 한 시대를 이끌어 갈 수 있는 증인의 자격이 주어진다.

5.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공관복음에 보면 재물이 많은 부자 청년, 율법사, 관원에게 영생을 얻으려면 계명을 지키라는 말씀을 하셨을 때 그들은 자신 있게 모든 계명은 어려서부터 다 지켰다고 대답을 하였다. 주님은 그들에게 칭찬을 하시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네가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寶貨)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고 하셨으나 여기서 모두 시험에 걸려 넘어지므로 영생을 놓치고 말았다(마 19:20, 막 10:20~21, 눅 10:25, 18:18).

ἔξεις 에케이스
네게 있으리라
θησαυρόν 데사우론
보화
ἐν
에서
οὐρανῷ 우라노
하늘

이 땅에서 재산이 많아 부요하게 사는 자와 관직에 앉은 자들은 세상에서 부러울 것이 없어 보이지만 주님이 그 사람들의 심령을 들여다보실 때에 하늘의 보화가 없다는 것이다. 과거뿐 아니라 현재에도 상류층에 속한 사람들은 어려운 생활을 모르고 풍족하게 살면서 행복을 누리고 있으나 이들의 마음속에는 세상 것이 너무 가득차 있기 때문에 영생의 진리가 들어갈 수 있는 빈자리는 없고 심적 상태는 말할 수 없이 공허해져 있었다.

예수께서 그들을 향하여 영생을 쟁취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말씀해 주셨는데도 기쁘게 받아들이지도 않고 외면해 버린 것은 재물의 노예가 되었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을 해 준 것이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진귀한 보화(θησαυρόν 데사우론 ἐν 엔 οὐρανῷ 우라노)는 하늘 아래뿐 아니라 우주에서 하나밖에 없는 희귀한 보물을 찾으면서도 소유하지 못하고 놓쳤다는 것은 참으로 애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예수께서 이 세상에서 아무나 구할 수 없는 귀한 보화(남성명사 단수)가 네게 있으리라, 즉 소유하리라(ἔξεις 에케이스)고 하신 말씀은 영생의 주체자이신 그리스도 자신을 놓고 하신 것이다. 영생의 보화를 구하러 다니지만 세상 재물이 걸림돌이 되어 그 큰 축복을 놓치고 안식 세계에 들어갈 수 있는 길까지 막혀 버리는 일이 과거 예수님 당시뿐 아니라 현재에도 계속 일어나고 있다.

6. 하늘의 보화인 예수 그리스도를 소유한 자만이 영생하게 된다

이 땅에 다시 오실 메시야는 하늘과 땅의 보화이며 그분을 소유하기 위하여 세상 것은 분토(糞土)같이 버리고 모든 희생과 전력을 다 쏟아 영생을 쟁취한 자는 가장 현명한 사람이다. 부자 청년같이 세상 살아가는 즐거움과 재물의 애착의 암초들이 영생의 길을 막아버리면 하늘의 보화를 소유할 기회는 영영 자기 곁에서 떠나고 만다. 예수께서 영생을 놓치고 돌아가는 이들을 바라보시고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힘든 일인지 낙타가 바늘귀로 통과하는 것보다 어렵다고 하셨다(마 19:23~24, 막 10:23~25, 눅 18:24~25).

세상 것만을 위하여 살아가는 자들이 보화의 희귀함이나 가치도 모르고 귀중함과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다가 영생을 소유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치고 슬픈 기색(氣色)을 띠고 돌아간 행위는 어리석은 인생들의 단면(斷面)을 보여주신 것이다. 성경에 슬픈 기색이라는 단어는 언짢은 표정 또는 충격을 받아(στυγνάσας 스튀그나사스) 고민하고(λυπούμενος 뤼푸메노스 : 슬퍼하다, 짜증내다) 돌아가 버렸다는 뜻이다.

마태복음 13장 44절 밭에 감추인 보화(τῶν 톤 οὐρανῶν 우라논 θησαυρῷ 데사우로)를 소유하려고 그 밭 전체를 사들인 농부와 비교할 때 누가 지혜롭고 현명한 자인가?(참고. 질그릇에 담긴 보배 : 고후 4:7~9) 이 세상 것은 육이 살아가는데 도움은 될 수 있어도 참 보화가 아니기 때문에 내세에 영혼구원도 보장되지 않는다. 이 땅에서 가진 것이 많고 잘 배운 지식인이라도 원시(遠視)치 못한 자들은 영생의 길을 전혀 알지 못하고 세상 것만 위하여 동분서주(東奔西走)하며 현실에만 매달려 바쁘게 살다가 이 세상 끝나는 날에 허무하다는 고백으로 끝나고 만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사람들이 영생을 원하고 찾는 자들이 많지만 세상 재리(財利)에 심취(心醉)되어 한평생 바람만 잡다가 하늘의 보화인 그리스도를 소유하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이런 류(類)의 사람들은 썩어 없어질 재물을 위하여는 가산(家産)을 탕진하며 혼신(渾身)의 힘을 기울이면서도 생명의 보화를 찾는 일에 투자도 하지 않고 인색하게 살아가는 자들은 현대판 부자 청년, 율법사와 서기관들보다 나은 것이 없다.

잠깐 머물렀다가 영원한 처소로 떠나갈 자들이 영생을 위한 준비는 하지 않고 땅의 재물만이 보화인줄 믿고 따라다니다가 진귀한 보물인 그리스도를 놓친다면 이 땅에서 가장 크게 패배한 자들이다. 이러한 시대에 참된 성도의 보람은 영생의 말씀을 전하는 자들을 돕고 세상 물질이 있으면 가이오 감독과 같이 선한 사업에 힘쓰는 자들은 마지막 날 그 종과 함께 축복의 반열에 서는 것이다(요한 3서 1~8).

이 지구상에 70억이 넘는 인구가 산재(散在)해 있어도 하나님의 긍휼을 입은 소수의 무리들만이 영생의 보화를 소유할 수 있으나 그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소망 없이 살아가고 있다. 사도 요한은 말씀을 믿는 것과 하나님이 보내신 자, 즉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영생이라고 하신 것은 성자 하나님이 되신 말씀이 곧 영생의 보화라는 것을 깨닫고 그분을 소유한 자는 이 세상 명예나 삶의 풍요로움도 부럽지 않다는 것이다.

베드로전서 1장 24~25절에 보면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라는 성경 구절이 얼마나 힘과 용기를 주는지 모른다(사 40:6~8, 시 103:15). 요한복음 5장 24절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연이어 38~39절 "그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하지 아니하니 이는 그의 보내신 자를 믿지 아니함이니라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라고 하였다.

또 6장 51절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 하시니라" 그리고 17장 3절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라고 하였다. 지금까지는 십자가 구속의 은총 아래서 믿음 하나만으로 주님의 사랑을 받고 살아 왔으나 앞으로는 단단한 식물도 먹을 줄 알아야 사망을 삼키며 영생을 소유할 수 있다.

히브리서 5장 13~14절 보면 "대저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단단한 식물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저희는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변하는 자들이니라" 이 땅에 사는 성도들은 영원한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소유하는 것과 큰 구원을 얻는 일에 목적을 두어야 하고 또 한 가지는 환난 날에 많은 생명을 살리는 사명을 위하여 힘써야 한다.

그러므로 큰 그릇으로 쓰임을 받기 위하여 험한 세상에서 천신만고(千辛萬苦)의 시련과 연단을 견디어 내고 불같은 환난을 통과하는 것과 쓰디쓴 시련의 잔을 외면하지 말고 받아야 한다. 그 다음에 말씀으로 양육을 받고 잘 다듬어진 종이 되어야 어두움을 밝히는 진리의 등불이 되게 하시고 한 시대를 그에게 맡겨 빛의 역사를 하도록 해 주실 것이다.

- 아멘 -

EPILOGUE

에필로그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십계명이 단순한 도덕적 규범이 아니라, 하나님과 각 개인 사이에 맺은 일대일의 성문계약임을 깨달았습니다. 출애굽기 20장에 기록된 열 가지 계명은 고향을 찾아가는 모든 자들이 반드시 지켜야 할 영생의 초석입니다.

우리는 십계명을 직접 범죄(1~4계명)와 간접 범죄(5~10계명)로 나누어 살펴보았습니다. 이 구분은 단순한 분류가 아니라, 영생을 얻기 위한 진리의 열쇠입니다. 각 계명 속에 숨겨진 영적 의미를 발견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깊은 뜻을 이해하게 됩니다.

특히 우리는 "네 이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 자신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분이 우리의 참 이웃이며, 그분의 신부가 바로 성도들입니다. 이 깨달음은 십계명 전체를 이해하는 핵심입니다.

예수께서 부자 청년과 관원에게 말씀하신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는 약속은, 하늘의 보화인 예수 그리스도 자신을 소유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세상의 재물은 썩어 없어지지만, 그리스도를 소유한 자는 영원한 생명을 얻습니다.

이 책을 읽으신 독자 여러분께서는 말씀의 거울 앞에 자신을 세워놓고, 직접 범죄와 간접 범죄를 구분하며, 하나님과의 일대일 계약을 완벽하게 지키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안식세계에 들어가기 위한 길은 이미 말씀 속에 명확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돌비에 새겨진 십계명은 광야에서 생을 마감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그림자였지만, 안식할 땅에 들어갈 자들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필수과목입니다. 신약시대에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언약을 맺은 우리는 이 계명들을 영적으로 이해하고 실천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의 모든 내용이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며, 그분을 통하여만 영생을 얻을 수 있음을 강조합니다. 단단한 식물을 먹을 줄 아는 장성한 자가 되어, 사망을 삼키며 안식세계에 들어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모든 영광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읽는 모든 분 위에 성령의 조명과 평강이 함께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 아멘 -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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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감상·품평

이 책은 '은혜로 구원받는다'는 익숙한 신앙 언어에 안주한 독자에게 영생과 계명의 관계를 정면으로 재질문하는 도전적인 신학서이다. 저자는 십계명을 윤리 규범이나 율법주의로 축소하지 않고, 영생과 직결된 하나님의 일대일 언약으로 해석하며 특히 '직접 범죄'와 '간접 범죄'라는 구분을 통해 계명의 영적 깊이를 드러낸다. 예수께서 영생을 묻는 자들에게 1~4계명을 언급하지 않고 5~10계명부터 말씀하신 이유를 영적 살인, 영적 간음, 지도자의 책임 문제로 풀어내는 논지는 매우 날카롭다.

이 책은 성도의 삶뿐 아니라 말씀을 가르치는 자의 책임을 강하게 환기시키며, 잘못된 해석이 곧 영혼을 해치는 죄가 될 수 있음을 경고한다. 다만 긴장감 있는 논조와 단호한 결론은 독자에 따라 부담이 될 수 있으나, 신앙을 깊이 성찰하게 만드는 문제의식만큼은 매우 분명한 소책자이다.

작성 : 챗G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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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목 목사님의 「영생과 계명」부자 청년·율법사·관원의 영생 질문을 십계명 준수로 연결하며, 출애굽 광야를 현대 성도들의 안식세계 여정으로 재해석한 도발적 글이다. 1~4계명을 직접 범죄(우상·망령·안식 위반), 5~10계명을 간접 범죄(살인·간음·도둑·거짓·탐욕 등)로 분류"한 계명 어기면 전체 범죄"라 경고하며, 재물 포기와 그리스도 좇음을 영생 조건으로 제시한다.

세상 성공자조차 영생 불안에 빠진 현실을 날카롭게 찌르며, 계명을 구속사적 필수법으로 승화시킨다. 과감한 적용이 논쟁적이나, 물질주의 시대에 영적 각성을 촉구하는 강렬한 메시지로 빛난다.

작성 : Perplexity 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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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영생에 관한 갈망과 십계명의 준수 사이의 상관관계를 구속사적 관점에서 명쾌하게 풀어낸 신앙 지침서입니다. 저자는 단순히 도덕적인 차원의 율법 준수를 넘어, 계명이 하나님과 나 사이의 '일대일 계약'임을 강조하며 신앙의 본질을 파고듭니다.

특히 세상의 부와 지식을 갖추었더라도 영생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결코 참된 안식을 누릴 수 없음을 지적하며,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기는 우상 숭배가 영생을 가로막는 가장 큰 걸림돌임을 경고합니다. 살인, 간음, 도둑질 등 각 계명을 직접 범죄뿐만 아니라 영적인 간접 범죄의 영역까지 확장하여 해석함으로써 독자들에게 깊은 자기 성찰의 기회를 제공합니다.

은혜 시대의 믿음을 바탕으로 이제는 더욱 '단단한 식물'과 같은 말씀을 먹고 장성한 분량에 이르러야 한다는 권면은 종말을 준비하는 성도들에게 매우 시의적절합니다. 영생이란 단순히 죽지 않는 것이 아니라, 참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임을 다시금 일깨워주는 이 책은 바른 신앙의 궤도를 찾고자 하는 이들에게 훌륭한 나침반이 될 것입니다.

작성 : 구글 Gemi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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