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6장 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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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6장 분해
"내가 보매 어린 양이 일곱 인 중에 하나를 떼시더라"
— 요한계시록 6:1
박성목목사 저
책 머리에 …
요한계시록 6장은 시대의 변천 속에서 일어나는 전쟁과 승리에 관한 목록적 계시를 심층 분해하여 바른 이해를 돕고자 한다.창세기 3장 15절에 하나님께서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리라고 하신 말씀이 요한계시록에 와서 완전 성취가 된다. 마리아의 몸을 빌려 여자의 후손으로 나신 어린 양 예수께서 일곱 인으로 봉한 책을 보좌에 앉으신 이에게로부터 넘겨받은 즉시(계 5:7) 지체하지 않으시고 첫째 인부터 여섯째 인까지 차례대로 열어 공개하신 내용은 장차 이 땅에서 일어나게 될 심판과 구원을 자세하게 기록되어져 있다(계 6장). 어린 양이 차례로 떼신 인(첫째 인 ~ 네째 인)들 안에 무서운 전쟁을 상징하는 네 마리의 준마들이 등장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싸움에 나가는 자들이 흰 말을 타지 않은 것은 적에게 쉽게 노출이 되고 공격의 목표가 되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기독교의 역사는 두려워 할 것이 없다. 왜냐하면 첫째 인을 떼실 때에 맨 먼저 흰 말 탄 자가 면류관을 썼다는 것은 기독교의 승리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상식적으로 알고 있듯이 전쟁터에 나갈 때에 갑옷을 입고 투구를 쓰는 것이 기본적으로 갖추어야할 복장(服裝)인데 본문에는 흰 말 탄 자가 싸울 수 있는 무기를 휴대한 것이나 월계관을 쓰고 이기고 또 이긴다고 하신 말씀은 1차 승리(요 16:33, 십자가의 피)와 2차 승리(계 19:11~16, 말씀)를 확실하게 나타낸 것이다(참고. 시 145:5). 흰 말의 색상은 성결과 평화를 상징한 것이며 그 탄 자가 쓰고 있는 월계관(στέφανος 스테파노스) 역시 이긴 자 만이 쓰게 되는 영광의 관(冠)이라는 것에서 확신을 가질 수가 있다. 이 세상의 제국들이 타고 나온 말들은 다 망하고 자취도 없이 사라졌지만 그리스도의 나라는 백마 탄 자의 승리로 이루어지게 된다.
2015. 4. 5
저자 박성목 목사
요한계시록 6장 분해(分解)
1.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구약 말라기 선지자 이후 4백 년 동안 암흑시대가 계속 될 때 선민이라고 자부하던 이스라엘 민족은 강대국에 예속(隷屬)되어 있는 동안 많은 고통을 받고 있었다. 유대인들이 기다리던 메시야가 그 땅에 탄생하셨을 때에도 사회는 계속 혼란스러웠고 정치와 종교는 부패하여 백성들은 도탄에 빠져있는 상태였다. 로마제국이 세계를 지배하던 시대에 황제 숭배 사상이 만연(蔓延)해지므로 이방 모든 나라들이 그 앞에 머리를 숙이며 엎드렸지만 유대인들은 하나님 외에 어떤 피조물도 경배의 대상이 아니라고 하여 그 세력에 동조하지 않았다. 여기에 불만을 품은 네로 황제는 기원후 64년 7월 18일에 일어난 로마의 대화재는 기독교인의 소행이라고 헛소문을 퍼트려 종교 탄압을 하기 시작하였다. 이 불은 기독교와 아무 연관이 없는데도 엉뚱하게 예수를 믿는 성도들에게 뒤집어 씌워 박해를 가했던 것이다.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들을 체포하여 화형이나 참수형과 십자가 처형 또는 원형경기장에서 맹수의 밥이 되게 하는 등 온갖 악행과 모진 고문을 저지를 때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희생이 되었고 살아남은 자들도 혹독한 시련을 겪어야만 했다(AD 54~96). 환난의 칼바람이 폭풍우처럼 거세게 몰아치고 잔인한 학살을 자행(自行)하여도 사도들이 전하는 복음을 가로막을 수가 없었던 것은 성령의 역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강대국의 탄압과 동족의 박해는 수그러들지 않고 핍박의 강도를 계속 높여도 십자가의 진리는 멈추지 않고 국경을 넘어 타 문화권까지 들어가서 많은 사람을 개종시키는 이변이 일어나고 있었다. 도미시안(Domitian, AD 81~96) 황제가 통치하던 시대에도 많은 순교자가 나왔고 이런 시기에 사도 요한은 정치범들과 함께 에베소 건너편의 밧모라는 섬으로 유배(流配)되고 말았다.
에게해(Aegean Sea)의 동남쪽에 위치한 조그마한 외딴 섬에 자리 잡고 있는 수용소의 분위기와 환경은 육지생활보다 너무나 열악한 상태였다. 그 섬에는 보통 민간인의 인적(人跡)은 없고 스쳐가는 바람결에 파도소리만 들려오고 물새 떼들도 날아 왔다가 울고 떠나가는 외로운 곳이다. 조류(潮流)가 심하고 풍랑이 거센 바다 가운데 있는 섬이라 소란을 피우는 죄수들도 탈출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삼엄하게 감시를 받으며 살아가는 수용소에 사도 요한도 같은 처지였다. 그는 신앙의 동료를 다 잃고 죄수의 몸으로 홀로 남아 흉악범들과 같이 수감생활을 하며 한(恨) 많은 세월을 보내고 있었으나 그에게 슬픈 애환을 달래주며 위로할 자는 아무도 없었다. 그 옛날 주님과 함께 유다와 갈릴리 지방을 오가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던 시절에는 누구보다도 사랑을 많이 받던 제자였지만 이제 지나간 과거는 역사 속에 다 묻어 버리고 하나의 추억으로만 남을 뿐이다.
2. 사도 요한의 사명
나라의 회복을 함께 기다리던 동료들은 모두 순교의 잔을 받았는데도 사도 요한만은 도미시안 황제가 암살 당하기까지 1년 반 동안 유배지에서 외롭게 지내고 있었다. 부활하신 이후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찾아오셔서 이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고 하신 말씀도 그들에게 부딪혀 오는 현실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고 가는 길이 험난하였다. 정치범들의 포악스런 난동과 폭력이 심한 수용소 생활이 괴롭고 힘들 때마다 주님을 그리워하며 기도처를 찾던 흔적이 2천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험한 동굴 바위틈에 옛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그는 죄수(罪囚)의 몸으로 살다가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한적한 곳을 찾아 기도의 시간을 보내고 있던 어느 날 뜻밖에 그토록 그리워하던 주님이 찾아 오셨다.
마치 벧엘 광야에서 피곤에 지쳐 누워있는 야곱에게 하나님이 나타나셨던 것같이 예수께서 사도 요한에게 직접 오셔서 격려와 위로의 말씀을 해 주시는 그 순간 수용소 생활의 괴로움은 다 잊어버리고 희망의 서광(曙光)이 비취고 있었을 것이다. 그 중에 가장 경이(驚異)로운 것은 제자들이 그렇게 염원(念願)하였던 나라를 회복하시겠다는 약속과 이제 환난을 당한 자들에게 극진한 보상을 해 주시겠다는 말씀은 사도 요한으로서는 그보다 더 반가운 소식은 없다. 시련이 연속되는 유배지에서 고달픈 몸을 추스르며 기약 없이 살아가는 자신에게 열거하신 내용 중에 중요 핵심은 주의 재림과 성도의 나라를 목적하셨고, 그 다음에는 살아서 주를 맞이할 자들에 대한 축복과 인류 심판에 대한 말씀을 구체적으로 언급을 해 주셨다.
앞으로 이 땅에 전무후무한 환난과 기근의 재앙이 오고 질병이 엄습해 온다고 해도 사도 요한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신 예수께서 소아시아 지방에 고난을 받고 실의에 빠져 있는 일곱 교회의 이름까지 열거(列擧)하시며 이 편지를 급히 보내라는 지시를 내렸던 때가 주의 날이었다. 이 땅위에 악인의 심판과 의인의 구원은 처음부터 하나님의 계획하신 뜻이며 이루시는 과정을 이 책 속에 함축(含蓄)해 놓으시고 그 내용과 순서를 사랑하는 제자에게 알려 주시면서 이 환난을 겪어야 메시야 왕국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크게 두려워하거나 동요(動搖)하지 말라는 말씀을 해 주셨다. 요한1서 5장 13절을 보면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쓴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는 말씀은 내세를 바라고 믿는 성도들에게 큰 소망이 될 것이다.
3. 일곱 인으로 봉한 책과 사대병마
요한계시록 5장 1~5절을 보면 일곱 인(σφραγίς 스프라기스, 봉인, 도장)으로 봉인(封印)된 책을 펴거나 그 인을 떼기에 합당한 자가 상천하지(上天下地)에 없다는 말을 듣고 사도 요한이 방성대곡을 할 때 장로 중에 한 분이 울지 말라 유다 지파의 사자(獅子) 다윗의 뿌리가 이기었으니 이 책과 일곱 인을 뗄 것이라는 말씀으로 위로해 주었다. 육적으로는 다윗의 혈통이 되시고, 인성과 신성을 겸비하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이 책의 비밀을 개봉(開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천지창조 사역에 처음부터 동참하신 분이시며(요 1:1~5, 골 1:16~17), 인류의 죄를 구속하시기 위하여 육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으나 3일 만에 부활하신 이후에(롬 5:8) 현재 하늘 보좌에 올라가 계시지만 장차 만왕의 왕으로 강림하실 분이시다.
시편 110편 1절 다윗의 글에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으라 하셨도다라고 하셨고, 또한 사도행전 3장 21절에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거룩한 선지자의 입을 의탁하여 말씀하신바 만유를 회복하실 때까지는 하늘이 마땅히 그를 받아두리라는 말씀이 응하게 되며 그는 유다 지파를 좇아 나신 영원한 제사장으로 계시게 된다(히 7:13~14).
1) 사대병마의 출현과 나타나는 징조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도 요한에게 말씀하신 내용 중에 일곱 인과 일곱 나팔과 일곱 대접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고 그 속에는 환난의 순서와 주의 재림 시에 일어나는 징조들과 심판 후에 세워질 메시야 왕국에 대한 것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었다. 일곱 인(印)으로 겹겹이 봉해 놓은 책을 어린 양이 하나씩 떼실 때마다 등장하는 말들은 동일한 색상이 없고, 종류별로 다른 형태로 나타나면서 제각기 자기 고유의 특색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모양은 이 땅에서 일어날 여러 가지 환난과 재앙을 예고한 것이며 세상이 크게 혼란해질 것을 색깔별로 보여준 것이다.
전쟁에 동원되는 준마들은 기민(機敏)성과 신속성은 동일하게 갖추어져 있지만 요한계시록에 나타나는 말들은 환난과 재앙을 동반하고 있음을 보여 주셨다. 요한계시록 6장에 나오는 사대병마는 스가랴 6장에 사대병거(四大兵車)에서 유래된 말들이다. 기원전 500년 경에 하나님께서 스가랴 선지자를 통하여 사대병마가 출현할 때에는 네 병거들이 두 산 사이(양대 세력)에서 나왔는데 그 산을 놋 산이라고 한 것은 사람의 힘으로 무너트릴 수 없다는 뜻이다.
이 말들의 등장은 마지막 시대에 양대 세력, 즉 공산권의 통치 산에서 붉은 말과 얼룩진 말이 나오고 민주주의 정치 산에서 백마와 흑마가 나타나게 되면서부터 이들이 서로 대립의 각을 세우고, 크게 충돌할 것을 나타내신 것이다(슥 6:1~8). 스가랴의 예언으로부터 600여 년이 지난 이후에 사도요한을 통하여 사대병마를 다시 보여주신 목적은 이 땅에 반드시 선지자의 예언대로 재난이 일어난다는 것을 재확인시켜 놓은 동시에 이 내용을 서로 짝이 되게 하였다.
스가랴서에 나오는 네 병거에는 말을 탄 자가 없고 색상에 대한 설명도 없이 홍마, 흑마, 백마, 어룽지고 건장한 말이라고만 하였다. 그러나 계시록에서는 흰 말, 붉은 말, 검정말, 청황색 말들의 색깔뿐 아니라 그 위에 탄 자들의 모습과 그들이 가지고 있는 무기까지도 세밀하게 구분을 해 놓았다. 이 말들은 제각기 독립성을 가지고 나타나는 것과 시대마다 역사하는 과정이 제각기 서로의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메시야 왕국을 세우실 때 네 종류의 말들이 등장하면서부터 재난이 계속 될 것이라는 설명을 하시며 사도 요한에게 알려 주셨다. 첫째 인(σφραγίς 스프라기스)부터 넷째 인까지는 시대의 변천과 재난의 목록을, 말 탄 자들의 모습에서 세상의 흐름을 잘 보여주었으나 다섯째 인부터 일곱째 인까지는 말들이 나오지 않는다.
(1) 백마(白馬) ………… 복음의 승리(福音勝利) 계 6:1~2 (2) 적마(赤馬) ………… 붉은 사상의 혁명(革命) 계 6:3~4 (3) 흑마(黑馬) ………… 식량기근(食糧飢饉) 계 6:5~6 (4) 연록색마(軟綠色馬) … 종합재앙(綜合災殃) 계 6:7~8 (청황색마, 靑黃色馬)
네 종류의 전마(戰馬)와 그 탄 자의 모습은 인을 뗄 때마다 동일하지 않고 각 시대마다 나타나는 역사와 변천(變遷)과정이 다르고 일어나는 사건들은 모두 세상 끝 날에 쏟아질 재앙들이다. 인을 떼는 순서에 따라서 첫째 인에서 시작하여 마지막 다섯째 인을 뗀 후에는 진리를 위하여 억울하게 죽은 순교자들이 제단 아래에 엎드려 피 값을 갚아달라는 호소와 여섯째 인은 심판의 내용을 기록해 놓았다.
일곱 인을 다시 시대별로 세분해 보면 첫째 인을 시작해서 네째 인까지는 은혜시대의 말기적인 현상이라는 것을 보여주신 것이다. 이 때에는 극한 사상대립과 큰 전쟁이 있을 것과 대기근이 일어나고 온역이 뒤따르게 될 것을 말 탄 자들의 상태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또 다음에 다섯째 인과 여섯째 인 안에는 말들이 등장하지 않은 것은 신원(伸怨)의 날로 바뀌는 동시에 마지막 주의 재림과 심판에 대한 순서가 들어있다.
2) 흰 말과 그 탄 자의 역사
요한계시록 6장에 나오는 말의 순서와 색깔에 따라 시대가 바뀌게 되고 등장하는 모습도 제각기 다르다는 것을 유심히 살펴보아야 한다. 그리고 또 말 탄 자들이 가지고 있는 무기와 그 형태에 따라서 싸우는 방법도 각각 자기들의 특성을 가지고 나타나는 것도 관찰할 대목이다. 네 종류의 말들이 활동하는 모습을 보면 제일 먼저 흰 말(馬) 탄 자로부터 시작하여 차례대로 그 뒤를 이어 계속 등장하는 세 종류의 말들은 모두 전쟁과 재앙들이다.
첫 번째 나오는 흰 말과 그 탄 자를 세밀히 분석해 보아야 기독교 복음의 완전 승리라는 것을 알게 된다. 흰 색인 λευκός(류코스)의 상징적 의미는 성결, 속죄, 평화, 승리의 표시를 신약에 28번 이상 기록되었고, 그 중에 요한계시록에만 17번이나 들어 있다. 이 흰 색이 기록된 곳을 찾아보면 모두 하나님 편에만 들어 있고(흰 옷, 흰 구름, 흰 보좌, 눈같이 희다 등등 …) 거짓 선지자나 마귀 편에서는 단 한 번도 거론(擧論)한 적이 없다. 흰 말 역사는 더럽고 추한 세상을 희고 깨끗한 평화로운 세상을 만드시겠다는 성결한 의미가 담겨져 있다.
여기에서 주의해야 할 것은 흰 말을 기독교 역사라고 인정을 해도 그 말 위에 탄 자를 그리스도라는 말을 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어린 양이 인을 떼실 때에 벌써 면류관을 쓴 자가 마상(馬上)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보여주셨는데 주께서 인을 떼실 때마다 말에서 내렸다가 다시 말을 타시는 일을 계속 반복 할 수가 있겠는가? 만약 흰 말을 탄 자가 어떤 인물이라고 하면 나머지 말을 타고 있는 자들 역시 어떤 장군이나 권세 있는 용사들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 대목에서 꼭 지적해야 할 것은 말 위에 탄 자들은 그 시대의 등장하는 인물이 아니라 역사라고 해야 무난하다.
그 이유는 흰 말을 타고 나타난 자가 면류관을 쓰고 있다는 모습은 승리의 역사로 보아야 하고 나머지 세 마리 말도 그 위에 탄 자들 모두 강력한 힘을 나타낼 수 있는 능력으로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① 면류관을 받은 것은 승리를 뜻한다
어린 양이 일곱 인 중에 하나를 떼실 때에 내가 이에 보니 흰 말이 있는데 그 탄 자가 활을 가졌고 면류관을 받고 나가서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하더라는 말씀에서 해답을 찾아야 한다(계 6:1~2).
ἐδόθη(에도세) στέφανος(스테파노스) νικῶν(니콘)
받고(s) 면류관(s) 이기고(s)
καὶ(카이) ἵνα(히나) νικήσῃ(니케세)
또(그리고) 하더라 이기려고(s)
어린 양이 첫째 인을 떼실 때에 흰 말은 처음부터 있었고 다른 말들에게는 나오더라는 단어(ἐξῆλθεν 엑셀덴)를 쓰고 있다. 흰 말만은 어느 한 시대에 나타났다가 없어지는 말이 아니다. 기독교 역사는 아담 이후부터 종말까지 계속 존재하면서 구원받을 자들을 위하여 싸우기 때문에 나온다는 말을 하시지 않고 있다라고 기록을 하였다. 그러므로 이 흰 말만은 이미 면류관(στέφανος)을 받은 상태에서 최후까지 싸워 승리자로 남게 된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흰 말 자체가 처음부터 하나님 편에 선 역사이므로 도중에 없어지거나 변질될 수가 없지만 다른 세 마리 말들은 제각기 위력을 가지고 등장했다가 자기 사명이 끝나게 되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기 때문이다. 흰 말을 탄 자가 활을 가졌다는 것은 말씀의 무기를 들고 어두운 악의 세력과의 싸움을 뜻하는 것이며 면류관을 받은 것은 승리의 영광을 나타내는 모습이다.
이긴다고 하는 단어인 니콘(νικῶν)은 니카오(νικάω 정복하다)의 현재 능동태이고 이기려고 한다는 단어 니케세(νικήσῃ)는 목적을 나타내는 승리의 표현이다. 그러므로 흰 말 역사는 과거에도 확실하게 이겼고 현재와 미래에도 계속 이긴다는 뜻이 된다.
본문에 이기고 또 이긴다고 한 표현은 두 번 승리를 나타낸 말씀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먼저 십자가의 부활로 사망권세를 이기시고, 그 다음 재림하시는 날에 말씀으로 악한 세상을 심판하신 후에 완전 승리를 하신다는 말씀이다. 만약 싸움에서 이기지 못한 자가 면류관을 받았다면 오히려 부끄러움이 되고 아무 가치도 없는 면류관은 자랑도 못 하고 누구에게도 내놓을 수가 없다.
요한복음 16장 33절에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고 하신 것도 초림으로 오신 예수께서 십자가의 피로 1차 승리로 완성하셨다는 뜻이다. 그 다음에 다시 이 땅에 강림하셔서 말씀의 검으로 원수를 이기게 되는 과정이 2차 역사이므로 1차 초림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재림의 주로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두움의 자식들을 심판하시는 날에 두 번 이기게 된다는 말씀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계 6:1~2).
스가랴 9장 13절에 내가 유다로 당긴 활을 삼고 에브라임으로 먹인 살을 삼았으니 시온아 내가 네 자식을 격동(激動)시켜 헬라 자식을 치게 하며 너로 용사(勇士)의 칼과 같게 하리라고 하신 말씀은 마지막 때 하나님의 종들이 복음의 활을 들고 용맹스럽게 싸워 이기는 장면을 보여주셨다. 여기에서 유다와 에브라임은 하나님의 택한 백성을 나타내었고 헬라 자식은 세상에 속한 사탄의 무리들을 놓고 하신 말씀으로 보면 별 무리가 없을 것이다.
인류의 전쟁 역사를 보면 흰색 말은 적(敵)들에게 빨리 노출이 되고 쉽게 표적이 되기 때문에 그 말을 잘 타지 않으려고 하며 꺼리거나 피하려는 자들이 많다고 한다. 그러나 하나님 편에서 싸우는 백마 앞에 그 어떤 말도 승리할 수가 없으므로 원수들을 두려워하지 않고 정정당당하게 나와서 싸울 수가 있다. 성경 본문에 기록되어 있는 말씀을 종합하여 문장의 흐름을 자세히 살펴보면 흰 말의 역사가 기독교의 승리라는 것을 문맥에서도 확실하게 증명이 되는데도 적그리스도라고 하는 것은 큰 모순이다.
② 흰 말과 백마는 동일한 기독교의 승리이다
요한계시록 6장 2절에 흰 말[ἵππος(힙포스, 말) λευκός(류코스, 흰)]이라는 흰색과, 19장 11절 백마[ἵππος(힙포스, 말) λευκός(류코스, 흰)]라고 할 때에 백색은 모두 같은 단어이다. 그러므로 흰 색의 말이 싸우는 과정에서 이기고 또 이긴다는 것이나 백마 탄 자 입에서 나오는 검으로 싸워 승리하는 내용을 서로 같은 맥락에서 보아야 한다.
이렇게 동일 색상의 흰 말 역사를 가지고 요한계시록 19장 11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가 되고 6장 2절은 적그리스도의 역사라고 해석을 한다면 말씀이 앞뒤가 서로 어긋날 뿐 아니라 이치적으로도 맞지 않는다. 다만 요한계시록 19장의 백마 탄 자는 순금 면류관들(διαδήματα 디아데마타)을 쓰고 하나님의 말씀의 검(劍)으로 원수들을 완전 소탕하는 것을 나타내셨고, 6장에 나오는 흰 말 탄 자가 쓴 면류관은 싸움에서 이긴 자가 쓰는 스테파노스(στέφανος)라는 월계관(月桂冠)이다.
죽도록 충성한 자에게 생명의 면류관이나 말씀으로 싸워 이긴 자에게는 의의 면류관, 영광의 면류관,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에 가시 면류관 등 신약성경에 18번이나 쓰여진 월계관은 모두 승리자들에게 돌아갔다. 그러므로 이미 면류관(월계관)을 받고 이기고 또 이긴다라는 표현은 흰 말밖에 없는데 어떻게 적그리스도가 승리의 월계관을 쓸 수가 있겠는가?
다시 말해서 월계관은 하나님 편에서 이긴자들만 이 단어가 사용되어 있고 사탄과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들에게는 월계관을 받았다거나 썼다고 한 구절은 신구약 전체에 한 곳도 없다. 흰 색도 역시 마찬가지로 성경 어디를 찾아보아도 마귀 편이나 어두움의 자식들에게는 밝고 깨끗한 색이 전혀 들어있지도 않고 쓰지도 않았다.
그러므로 본문에 흰 색이나 승리의 면류관은 하나님의 역사와 관계되어 있다는 것이 문맥상으로도 명백히 드러나고 있기 때문에 반론을 제기할 수가 없다. 기독교의 최후 승리를 나타내실 때에 흰 말 탄 자가 월계관을 쓴 모습으로 보여준 것을 엉뚱한 방향으로 해석을 한다면 성령을 근심케 할 뿐 아니라 하나님을 노엽게 하는 일이 된다.
객관적인 입장에서 이 문제를 분석해 보아도 네 마리의 말들 중에 하나님 편에서 역사하는 말이 반드시 있어야 된다는 것은 기본 상식이 아니겠는가? 성경에서 희다는 색상과 면류관(월계관)을 받고 이기고 또 이긴다는 말씀은 적그리스도의 역사가 아니라는 것이 문장 상으로도 증명이 되고 바로 지적해 낼 수가 있다.
③ 흰 말이 기독교 역사가 아니라는 자들의 모순
흰 말을 탄 자를 적그리스도라고 주장하는 자들은 활은 가졌는데 싸워야 할 화살이 없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당당하게 승리할 위세로 나타났으나 공격할 무기가 없는 것을 보니 사단의 역사라고 결론을 내리며 문제를 삼는 것은 잘못된 판단이다. 예를 들어 학생이 등교시간에 가방을 메고 학교에 갔다라는 말을 하면 책을 말하지 않았다고 학생이 아니라고 하거나 빈 가방이란 말을 할 수가 있겠는가? 분명히 교복을 입은 학생이 가방을 들었거나, 메고 등교를 할 때에 책을 말하지 않아도 당연히 그 학생의 가방 속에는 공부할 책이 들어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와 같이 활을 가진 자가 면류관까지 이미 받아 놓은 상태에서 과거에 이겼고 또 이긴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야 하는데 화살이 없어서 적그리스도라고 우긴다면 삼척동자(三尺童子)라도 웃을 일이다. 히브리서 11장 7절의 말씀을 예를 들어 보면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예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좇는 의의 후사가 되었느니라"고 하신 우리말 성경과 원문을 대조해 보아도 노아는 방주를 예비한 후에 그의 집을 구원하였다라고 하는 내용을 가지고 식구들은 제외되었다고 말을 할 자가 있겠는가? 분명히 집을 구원하였다라고 하면 그 집에 식구들이 있다는 것을 말하지 않아도 누구나 상식적으로도 다 알 수가 있다.
κατεσκεύασεν(카테스큐아센) κιβωτόν(키보톤) εἰς(에이스)
예비하여 방주를(s) 하였으니
(준비하다, 갖추다, s) (나무로 된 상자, s) (안으로)
σωτηρίαν(소테리안) τοῦ(투) οἴκου(오이쿠) αὐτοῦ(아우투)
구원(s) (그) 집을(s) 그의
(구출, 구조, 석방, s)
그와 같이 하나님 편에서 나타나는 승리의 흰 말이 화살이 없다고 적그리스도 또는 거짓 선지자로 해석을 하는 실수만은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기독교의 흰 말 역사의 1차 승리는 예수께서 십자가로 사망 권세를 이기셨고 2차 승리 때에는 말씀 권세로 악인을 완전히 소탕해 버리신다는 뜻을 왜곡(歪曲)해서는 안 된다.
예수 십자가의 보혈로 하나님의 친자녀가 되는 과정이나 때를 따라 돕는 은혜와 성도가 환난 날에 보호받는 것도 흰 말 역사의 승리로 이루어진다. 만약 백마 탄 자의 승리의 역사가 없었다면 하나님의 자녀들이 사단과 싸우며 십자가 복음을 전파할 수도 없거니와 지금까지 기독교인들이 살아남을 수가 없다.
구약시대로부터 현재까지 하나님의 편에 선 흰 말 역사는 중단 없이 진리 편에서 싸워 주시는 것을 모르고 적그리스도라고 한다면 주님 앞에 큰 실례(失禮)가 될 것이다. 고의성이 없더라도 진리를 바로 증거하지 못하고 성도들 앞에서 위증을 했을 때에는 구원문제가 결부되기 때문에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대인 관계에서 말의 실수나 인간과의 주고받은 상처보다도 잘못된 말씀을 전하다가 성도들의 영혼이 죽게 된다면 주께서 그에 대한 책임을 물을 것이다.
지금 시중에 나돌고 있는 주석들이나 설교집에 흰 말을 적그리스도라고 하는 책들이 서점에서 버젓이 팔려나가고 있고, 순수한 성도들은 잘못된 줄도 모르고 받아들이고 있다. 근본적으로 잘못된 해석이 문자로 인쇄가 되어 많은 성도들에게 읽혀지고 있는데도 수거하여 폐기 처분할 방법도 없고 널리 퍼져 있는 책들을 일일이 가정 방문을 하여 수정 하거나 고쳐줄 수는 더더욱 없다. 그렇다고 막연하게 잘못된 그대로 계속 방치할 것이 아니라 경제적 부담이 되더라도 일간신문이나 전파를 타고 퍼져나가는 방송을 이용하여 잘못된 부분을 바로 고쳐 주어야 어느 정도 책임을 면할 수가 있고 이로 인하여 여러 생명들이 살아나게 될 것이다.
3) 붉은 말과 그 탄 자의 역사
붉은 말 탄 자의 역사는 피 흘리는 투쟁을 말한다. 둘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들으니 둘째 생물이 말하되 오라 하더니 이에 붉은 다른 말이 나오더라 그 탄 자가 허락을 받아 땅에서 화평을 제하여 버리며 서로 죽이게 하고 또 큰 칼을 받았더라고 하였다(계 6:3~4). 어린 양 되신 예수께서 둘째 인을 떼실 때에 붉은 말이 나와서 땅의 화평을 제(除)하여 버리고 큰 칼을 받았다는 것은 살육전쟁(殺戮戰爭)을 뜻하는 것이다.
붉다(πυρρός 퓌르로스)고 하는 단어의 뜻은 불같이 붉게 탄다고 하는 것인데 어근은 불(πῦρ)에서 파생되었고 이 단어가 성경에 3번 기록되어 있다(계 6:4, 12:3, 행 20:4은 부로의 아들). 붉은 말은(ἵππος 힙포스, 말, πυρρός 퓌르로스, 붉은) 색깔 자체도 아주 정열적이지만 맹렬한 불길이 훨훨 타오르는 듯 한 위력과 기세는 천하를 삼킬 듯이 거세기 때문에 얼마나 두려운지 섬뜩한 느낌을 받게 한다.
붉은 말의 성질은 잔인하고 포악하여 마치 불이 타오르는 것 같은 혁명의 불길이 강력한 힘을 가지고 나타나면서 붉은 사상에 물들지 않은 자들은 무자비한 학살과 숙청을 일삼는 정책이다. 붉은 말이 날뛰는 곳에는 칼을 들고 생명을 해하는 살인마(殺人魔)들이나, 남의 재물을 착취하는 악당들은 사람이 아니라 인간 맹수들이기 때문에 이들은 기본 양심도 없는 자들이다.
요한계시록 12장 3절에 용의 색상을 말할 때에 붉다고 한 것이나 사단의 감화를 받은 자의 마음까지도 붉은 색으로 표시하였다. 용, 즉 사단의 사상이 들어간 자들은 무슨 일이든지 거짓을 말하며 속이기 위하여 가면을 쓰고 나타나기 때문에 작심하고 덤벼드는 자들 앞에 당할 수가 없다.
붉은 말의 속성(屬性)은 미소의 손짓을 하며 자연스럽게 접근을 하다가 결정적인 시기에 가서는 본색을 나타내며 기습적인 공격을 주의해야 한다. 그들은 마음속에 칼을 품으면서도 겉으로는 정다운 마음과 사랑으로 대하며 고도의 기만과 궤휼(詭譎)정책을 쓰므로 얼굴 표정을 보고는 다 속게 된다.
간교한 사단은 자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하수인들을 다 동원하여 필요한 사람을 포섭하여 이용한 후에 쓸모가 없을 때에는 가차 없이 처단해 버리고 재물까지 다 몰수해 간다. 만약 계획한 뜻을 이루지 못하게 되면 입을 열 때마다 상대방에게 독설(毒舌)을 퍼붓고 험담을 쏟아내며 모함을 하다가도 또다시 기회가 올 때에는 능수능란한 입담과 변장술로 접근해 와서 계교(計巧)를 부릴 때에 그 언변에 속아 마음을 열다가는 낭패를 당하고 만다.
용의 사상에 감염된 자들은 끝없는 분쟁을 일으키며 투쟁과 협박으로 모든 일을 해결하려고 하며 사람의 생명을 경시(輕視)하고 중상모략을 업(業)으로 삼는 악인들 앞에서는 살았으나 죽은 목숨과 같다. 악의 무리들은 자기 뜻에 따르지 않거나 비협조적인 자들을 색출하여 범죄자로 몰아 죽이는 일을 예사로 하고 있지만 결국에는 자기가 파 놓은 함정에 스스로 빠지고 만다.
① 많은 사람의 희생이 따르는 전쟁
붉은 말이 날뛰는 활동권 안에서는 크고 작은 분쟁과 폭력이 그치지 않고, 서로 간의 칼부림으로 피를 쏟는 비극은 너무나 끔찍하여 전율(戰慄)을 느끼게 한다. 악인의 권세 아래에서는 함께 사는 부모형제 집안 식구들끼리도 다투며 사상 문제 앞에서는 원수가 되어 등을 돌리고 부부뿐 아니라 부자(父子)지간도 서로의 마음을 열지 못한다.
이러다 보니 가까운 친인척이나 직장동료와 선후배 사이라도 자기 사상에 맞지 않으면 적(敵)으로 생각하여 감시하고 모함(謀陷)을 하므로 언제 죽음의 덫에 걸릴지 자신도 모른다. 붉은 용의 사상은 출발부터 잔인한 행동을 하며 타협보다 폭력을 앞세워 상대를 제압하고 만약 반대하면 배신자로 분류하여 숨통을 조여오기 때문에 그들 앞에 머리를 숙이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가 없다.
붉은 세력의 감염된 자들은 두세 사람만 모여도 분쟁을 일으키고 서로 기만(欺瞞)정책을 쓰다가 이용가치가 없고 쓸모가 없을 때 즉시 처형하거나 숙청(肅淸)을 해버리는 것을 보면 참 행복의 척도는 재물의 많고 적음에 있지 않고 직위가 높고 낮음에 있는 것도 아니다. 자유가 없는 삶 속에는 참 평안을 찾아 볼 수가 없고 미래가 분명하지 못한 자들의 생활은 너무나 비참하여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니다.
사단의 하수인들이 통치하는 세계에서는 사람의 생명을 경시하기 때문에 참된 평화와 즐거움은 찾을 수가 없고 기쁨의 감사가 없는 나라에서는 인간의 삶 자체가 지옥생활이다. 특히 붉은 말들이 설치는 지역에는 종교의 자유가 없고 그들의 사상에 동조하지 않으면 즉결재판에 회부하여 바로 처단해 버리므로 언제 무슨 일을 어떻게 당할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항상 불안한 생활이 계속된다.
어리석게도 신앙의 자유가 있는 남쪽 기독교인들이 붉은 사회주의 사상을 가진 자가 종교의 탈을 쓰고 나오는 것도 모르고 함께 화친하며 섞이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발상이다. 무신론 세계에서는 종교인을 억압하고 자유를 박탈시키며 탄압을 하기 때문에 마음 놓고 신앙생활을 할 수가 없고 그곳에 사는 성도들은 언제 어떻게 순교를 당할지 안심할 수가 없다.
② 정부, 국민, 사회가 붉은 말을 타고 있다
붉은 말을 탄 자들이 입법, 사법, 행정뿐 아니라, 교육, 정치, 경제, 사회 전반에 걸쳐 모든 분야를 총망라하여 그들이 침투하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다 들어가 자리를 잡고 활개를 치고 있는데도 공안 당국은 손을 놓고 있는 것 같다. 과거에 수면 아래에서 음성적으로 활동하던 붉은 세력들이 오늘날에는 자기 때를 만난 듯이 날개를 달고 활보하면서 남남 갈등을 일으키며 이간질하여 마음이 하나되지 못하도록 사분오열(四分五裂)로 갈라지도록 부추기는 자들의 국적이 어디인지 묻고 싶다.
더욱이 이들은 평화통일을 위장한 불순세력들을 민주투사로 변장하여 국민의 혈세를 낭비하고, 생산기업체나 공공기관에 입사한 이후에는 노사분규와 내분을 일으켜서 기업을 망치고 사회를 혼란에 빠트리며 나라의 장래를 불안하게 만드는 장본인들이다. 정부와 국민이 붉은 말의 궤휼정책 앞에 이용을 당하면서도 속는 줄도 모르고 인면수심(人面獸心)을 가진 자들 앞에 마음을 열다가 결국 그들의 손에서 큰 화를 당하게 될 것이다.
현재 분단된 이 나라는 다른 국가보다 붉은 말이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는데도 막지 못하고 묵인을 하다가 그들의 작전에 말려들면 늘 푸르고 청청했던 민주주의가 서서히 생기를 잃고 시들어질 때 국운이 위태로울 수가 있다. 나라를 책임지고 국민을 잘 다스려야 할 통수권자와 지도자들은 민주주의를 지키겠다고 하면서 유물사상과의 고리를 끊지 않고 타협을 하는 것은 보수(保守)단체의 사상과 이념까지 변질시키게 된다.
이 나라의 지도자와 국민이 뭉쳐 사회주의를 모방한 좌경세력들의 발을 붙이지 못하게 해야 하는데 그들과 힘겨루기를 하는 동안 사회 경제는 마비되고 선량한 국민들은 서로 간의 분열과 대립으로 병이 들어가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특히 극동아시아에 위치한 한반도는 더욱 위험에 노출되어 있고 지정학적으로 강대국인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의 틈바구니에서 샌드위치가 되어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항상 불안할 수밖에 없다.
이웃나라 일본과는 과거 앙금을 씻을 수가 없고 중국은 현재 우리와 가까워졌다고 하지만 사회주의 국가인 그들에게 어떻게 뒤통수를 얻어맞을지도 모르고 우방인 미국도 언제 어떤 모습으로 변할지 안심할 수 없는 데다가 러시아는 점점 두려운 존재로 부각되고 있다.
③ 붉은 말은 붉은 용의 하수기관이다
붉은 말의 정체가 완전히 드러난 것은 1917년 10월 17일 낫과 망치가 그려진 붉은 깃발을 들고 일어난 러시아 볼셰비키 혁명으로 시작된다. 프롤레타리아(무산계급) 혁명 세력에 충성하지 않고 걸림돌이 되면 가차없이 처단해 버리는 행동은 붉은 말의 전성시대(全盛時代)에 나타나는 특징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지나간 인류의 역사를 보면 국익을 위한 무역 전쟁이나 세력 확장을 위한 영토 분쟁은 계속 되었지만 서로 다른 사상이념(思想理念)으로 오는 대립은 한 치의 양보도 없고 상대를 먼저 죽이지 않으면 자신이 죽는 극단적인 행동을 저지르게 된다. 붉은 세력들은 아무 죄가 없는 자들도 누명을 씌워 무자비한 학살을 가하므로 억울한 피가 얼마나 쏟아졌는지 지나간 역사가 증명을 하고 있다.
종교인, 지주(地主), 공무원들을 포함하여 4,500만이 넘는 백성들을 구소련 땅에서 죄명도 없이 희생시킨 것을 보면 과거 2차 대전 당시 유대인 6백만을 가스로 학살한 독일의 히틀러의 만행보다도 더 악랄하고 끔찍한 행동이다. 러시아의 공산 혁명가인 레닌의 붉은 사회주의 사상으로 온 땅이 붉게 물들 때에 종교인이라는 이유와 많이 배웠다는 지식인, 재산이 많아 풍요롭게 산다는 것이 문제가 되어 죽였고, 심지어 노약자나 불구자까지도 소비만 하고 생산에 걸림돌이 된다고 다 제거해 버렸다.
그리고 아시아의 거대한 대륙 중국의 모택동과 주은래는 붉은 공산당의 혁명 아래 7천만이나 죽인 끔찍한 사건은 자고이래로 없었던 일이다(비공식 통계 자료에는 1억 명 이상이 희생되었다고 한다). 붉은 사상에 동조하지 않는 인민들을 한 개인이 대량으로 살생한 일은 인류 역사에서 찾아볼 수가 없는 사건이기에 기네스북에 올라 있다.
누구든지 레닌의 이론과 사상을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직위고하를 막론하고 체포하여 종신형에 처하거나 아니면 붉은 사상을 비판하는 자들은 형장(刑場)의 이슬로 사라져 버렸다. 그 시대에 불어 닥친 살인 바람은 마치 바다의 풍랑이 흉흉할 때 성난 파도처럼 사단의 괴수(魁首)들이 설치는 불호령 앞에 떨지 않을 자가 어디에 있겠는가?
캄보디아의 무장단체였던 크메르루즈 정권은 유토피아를 건설한다는 명분 아래 수백만 명의 동족들을 살해할 때 외국어에 능통한 자, 의사, 약사, 판사, 검사, 공무원,지주, 노동자, 농민들을 가리지 않았으며 심지어 안경을 썼다거나 살결이 곱고 손이 깨끗한 부녀자와 어린 핏덩어리까지 모두 쓰레기 청소를 하듯이 자국민을 쓸어버렸다.
악인들이 휘두르는 칼날에 상당수는 반동으로 몰아 형식적으로 인민재판에 붙여 속전속결로 처형해 버리므로 시체는 산더미처럼 쌓였고 흘린 피는 하수처럼 흘러 강산은 붉은 피바다를 이루었다. 붉은 말을 탄자들은 용서와 사랑보다는 투쟁과 폭력을 앞세우며 타협과 관용 대신에 파괴를 일삼고 납치와 살인을 저질러도 전혀 마음의 가책도 없는 그들은 양심에 화인(火印)맞은 자들이다.
붉은 혁명의 깃발 아래에서 한 세기(100년)가 다 되도록 아시아 대륙을 피로 물들이고 순진한 백성들은 어떤 원인이나 이유도 모르고 무자비한 자들의 창검에 쓰러진 자들의 수는 셀 수가 없을 정도이다. 이뿐 아니라 오늘날에 와서 또 다른 암적 존재가 되고있는 것은 중동지역에서 일어나는 종교의 이념 갈등으로 폭탄 테러가 그치지 않고 아까운 생명들이 희생이 되어 피바다를 이루는데도 강대국들까지도 근절시키지 못하고 전전긍긍하고 있는 형편이다.
④ 전쟁에 광분한 나라들의 비극
나훔서 2장 3절에 보면 그의 용사들의 방패는 붉고 그의 무사들의 옷도 붉으며 그 항오를 벌이는 날에 병거의 철이 번쩍이고 노송나무 창이 요동하는도다라고 하였다. 또 3장 1~3절을 보면 화 있을찐저 피 성이여 그 속에서는 궤휼과 강포가 가득하며 늑탈이 떠나지 아니하는도다 휙휙하는 채찍 소리, 굉굉하는 병거 바퀴 소리, 뛰는 말, 달리는 병거, 충돌하는 기병, 번쩍이는 칼, 번개 같은 창, 살륙당한 떼, 큰 무더기 주검, 무수한 시체여 사람이 그 시체에 걸려 넘어지니라고 하였다. 요엘서 3장 10절에도 너희는 보습을 쳐서 칼을 만들고 낫을 쳐서 창을 만들라는 말씀은 국가 간의 전쟁으로 인하여 서로 죽이고 죽는 세상에서 평화로운 삶은 기대할 수가 없다.
붉은 말이 큰 칼을 받아 강압적으로 백성을 다스리고 위협적으로 지배하는 세력 앞에서는 진실은 찾아볼 수가 없고, 바른 양심을 가지고는 정직하게 살아가지 못한다. 특히 우리나라의 역사를 보아도 일본에게 침략당하여 36년이란 식민생활 속에서 민족 해방의 기쁨도 채 가시기 전에 붉은 공산집단들의 남침(1950. 6. 25)으로 세계 16개 국의 젊은이들이 이 땅에 와서 피를 쏟았고, 국군(UN군 포함) 18만 명이 희생되었으며 민간인은 무려 99만 명이 목숨을 잃거나 부상을 입었다.
그리고 또 8만 5천 명에 달하는 각계각층의 지도급 인사들이 납치를 당해 북으로 끌려간 자들은 모두 희생이 되었다고 한다(정치인, 종교인, 저명한 학자, 공무원 등등). 대한민국은 40년 동안 일제탄압 속에서 재산과 생명을 잃었고, 동족끼리 피비린내 나는 폭동과 전쟁으로 아름다운 강산을 피로 물들여 폐허가 된 상태였으나 70년이 지나는 동안 하나님의 도움으로 경제는 눈부시게 발전해 왔다. 그런데 이제 와서 또다시 극우(極右)와 극좌(極左)의 사상 대립으로 갈등과 분열이 일어나고 사회는 혼란과 혼돈 속으로 계속 빠져들어 가고 있는 것이 안타까운 일이다.
붉은 용의 사상에 감염된 자들은 빈부의 격차에 앙심을 품고 부요하게 사는 자를 증오(憎惡)하고, 생산에 힘쓰기보다 남의 것을 빼앗아 분배를 앞세우는 것이 그들의 철칙이다. 악인의 행동은 자신의 노력보다 가진 자의 것을 먼저 착취하고 양민(良民)학살과 온갖 만행(蠻行)을 저지르면서도 양심의 가책을 받거나 뉘우침도 없다.
그들의 주장과 트집은 못살고 가난하게 되는 원인이 많이 가진 자들 때문이라는 엉뚱한 논리를 펴고 삐뚤어진 마음과 생각으로 사회는 더욱 위축(萎縮)이 되고 있다. 인간의 마음과 생각을 누가 주장하고 다스리느냐에 따라서 악인과 선인이 될 수가 있고 빛과 어두움의 백성으로 갈라진다.
인권이 유린(蹂躪)되고 선량한 백성들을 짓밟는 세상에서 억울하게 희생되는 생명들의 울부짖음과 피맺힌 원한이 노아의 때와 같이 하늘에 사무칠 때 주의 심판은 악인들에게 쏟아질 것이라고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다. 세 번째로 붉은 말의 뒤를 이어 또 다시 검정 색상의 말이 등장하게 된다.
4) 검은 말과 그 탄 자의 역사
세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들으니 세째 생물이 말하되 오라 하기로 내가 보니 검은 말(ἵππος 힙포스, 말, μέλας 메라스, 검은)이 나오는데 그 탄 자가 손에 저울을 가졌더라 내가 네 생물 사이로서 나는 듯하는 음성을 들으니 가로되 한 데나리온에 밀 한 되요 한 데나리온에 보리 석 되로다 또 감람유와 포도주는 해치 말라 하더라고 하였다(계 6:5~6).
검정말은 시기적으로 붉은 말의 역사 뒤에 곧바로 뒤따라 나왔다. 검은 말이 뛰는 시대의 사회 형편을 보면 모든 것이 물질을 중심으로 하고 있으며 이 때 두려운 것은 경제적인 환난이 엄습하게 된다. 검은 색을 메라스(μέλας)라고 하는데 신약 성경에서 3회밖에 기록되지 않았다.
마태복음 5장 36절에 네 머리로도 말라 이는 네가 한 터럭도 희고 검게 할 수 없음이라고 할 때에 검게라고 하는 단어가 메라스이며 그 나머지는 요한계시록 6장 5절과 12절에 검다는 단어, 메라스가 두 번 기록되어 있다. 세 번째 나오는 말의 색깔을 검다고 한 것은 물질과 경제를 상징(象徵)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욕심 많은 사람을 흑심(黑心)이 가득하다고 하는 것이나, 남의 재물을 훔쳐가는 도둑의 마음이 검다고 하는 것은 이들 모두가 물질과 관계를 가지고 살아가는 자들을 향하여 양심이 검다라고 하는 것도 의미가 있는 것이다.
또 물건을 사고파는 상인들이나 돈을 관리하는 은행들도 수지가 맞고 이익이 생겼을 때에 흑자(黑字)가 났다고 한다. 그러므로 지출보다 수입이 많을 때나 경제 지수가 높아지면 반드시 흑자로 표시하게 되고 그 반대가 될 때에는 적자(赤字)로 기록하게 된다.
① 검은 말 탄 자의 손에 들려진 저울
검정말 시대에는 그 탄 자의 손에 저울이 들려 있는 것이 특이하다. 물질 중심이 되는 시대가 오면 통일된 도량형(度量衡)으로 상거래를 하며 모든 물건을 저울에 달지 않으면 매매가 이루어질 수가 없게 되었다.
세계를 움직이는 경제인이나 국제 무역상들이 도량형 사용을 강제로 결정하거나 각 나라와 모든 지역에 법으로 명령을 내리지도 않았는데 온 세계가 한결같이 저울을 쓰는 것은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검정말 시대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고대에는 물물교환을 하였고 그 이후에 화폐를 사용하는 시대에 와서는 말(斗)과 되(升 말의 1/10)와 홉(合 되의 1/10)같은 그릇으로 통용을 하였으나 검정말이 뛰기 시작할 때부터 자연스럽게 무게와 양(量)을 저울에 달도록 하는 제도를 시행해도 아무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게 되었다.
쌀 한 가마를 80kg, 배추는 3.75kg 등 저울로 달아서 값을 정하게 되고 모든 무게 단위를 저울로 통일시켜도 상거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심지어는 매매할 상품이 아닌 어린 아기가 태어나도 먼저 저울에 달게 되고 성인들도 수시로 자기의 몸무게를 달아보는 것만 보아도 검정말 시대라는 것을 본인 스스로 증명을 하게 된다.
이 지구 위에 산재해 있는 모든 나라가 물건을 달 때에 저울을 사용하는 것이 통일되어 있고 시장 거래에도 저울이 없으면 영업을 할 수가 없으며 생활에 많은 불편을 느끼는 것은 시대가 하나님의 말씀을 해석해 주고 있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세상이 변해가는 원인을 잘 모르고 살아가지만 사람의 생각과 행동하는 것들이 성경 말씀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움직여진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다.
인간의 삶 속에서 시대의 흐름을 어느 누구도 거역하거나 부인하지 못하고 자연스럽게 순응하며 받아들이는 것은 성경에 기록된 말씀대로 세상 심판과 주의 재림이 가까이 왔다는 증거로 보아야 한다.
② 인심 악화와 사회 혼란
검은 말이 뛰는 시대에는 물질만능주의가 세상에 팽배(膨湃)하게 될 때에 인간의 모든 생활 패턴과 삶의 방향이 물질에 맞추어져 있다. 이같은 시대에는 재물이 없으면 편안하게 살 수가 없고 인간 대접을 받지 못하는 것은 검은 말이 뛰고 있다는 것을 알려 주는 것이다.
누구든지 검정말의 사상에 물들게 되면 사람의 생각이 삐뚤어져서 정직하게 산다고 해도 삶 자체가 굽게 행하게 되고, 본인 스스로 진실한 마음으로 착하게 살려고 하지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깨끗한 양심은 자연히 오염이 되어진다. 생존경쟁이 심한 세상에 살면서 생활 문제로 분쟁이 일어나게 되고 탐욕으로 오는 과욕 때문에 인간들의 기본 양심마저 버리게 되는 것이 괴로운 일이다. 정다운 이웃끼리도 경쟁의식 속에 사회의 인심은 더욱 삭막(索莫)해져 가고 살벌해지는 상황이 마치 중병을 앓고 있는 환자같이 치유가 불가능한 느낌까지 들고 있다.
불법과 폭력이 성행하는 시대에서 자연히 약자가 짓밟히고 정직은 땅에 떨어지는 현실 앞에 검정말의 위력이 얼마나 거센지 직접 부딪혀서 피눈물을 흘려본 자는 절실하게 실감할 수가 있을 것이다. 배신과 무질서가 판을 치는 세상에서 물질의 아성(牙城)을 쌓은 자들은 그 재력(財力)을 등에 업고 나오는 세력 앞에 힘없고 약한 자들은 견디지 못하고 결국 굴복하게 된다.
이 땅에서는 재물을 많이 가진 자가 왕 노릇 하며 권세를 부리는 반면 없는 자들은 그들 앞에 머리를 숙이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시대상황이 마치 약육강식(弱肉强食)속에 사는 금수와 다를 바가 없다. 물질 만능주의로 기울어진 시대에는 만남과 교제와 대화의 잣대도 재물에 기준을 삼고, 인생의 평가를 손익계산을 하듯이 따지고, 모든 사물(事物)에 초점을 맞추어 논하기 때문에 가진 것이 없는 자들은 스스로 도태되고 만다.
검정말의 세력이 얼마나 강한지 같은 식구나 형제끼리도 재산 문제로 다툼이 생기게 되며 부모형제의 위계질서(位階秩序)까지 파괴되어 가족이 한 자리에 모여도 옛날 같지 않고 끈끈한 사랑이 메말라 서로 등을 돌리게 되므로 아름다운 미덕도 찾기 힘들어졌다. 검은 돈의 위력 앞에 금실(琴瑟)이 좋은 부부사이도 금이 가고 손위, 아래가 분명했던 사회 윤리마저 힘없이 무너져 버리고 좋은 인연이 악연으로 돌변하는 세상에서 참된 행복을 찾아볼 수가 없다.
이런 악순환이 거듭될수록 부익부 빈익빈의 격차는 크게 벌어지게 되어 부유층과 극빈층 사이에 상처의 골은 점점 깊어져서 황폐한 사회가 되어졌을 때 인간의 희망이나 국가의 장래도 어두워진다.
③ 자녀 교육이 어려운 시대
계산적으로 살아가는 핵가족 시대에 자녀들은 자기 외에는 어른이 없고 겁나는 사람도 없다. 본인 스스로 상전(上典)이 되어 윗사람들과 상의도 않고 남의 말을 들어보려고 하지도 않으며 자기 주관과 생각대로 행동하는 것이 오늘날의 젊은이들이다. 물질이 주인 노릇을 하는 시대에 태어나서 무서운 전쟁이나 보릿고개도 모르고 자라난 자들은 어떤 시련이나 고난이 부딪히면 그 문제를 스스로 헤쳐나가 보려는 노력보다 쉽게 자포자기 하고 만다.
이기주의가 팽배한 사회에서 자녀들의 기본 양심도 땅에 떨어지고 인간의 생명을 경시하며 극단적인 행동으로 자기 생명까지 자해(自害)하는 일이 발생하므로 사회를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우리 민족이 자랑하면서 전통적으로 내려오던 미풍양식(美風良識)과 예의도 사라지고 학교에서는 엄한 교육을 가르치지도 않고 가정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한 자녀들이 부모의 말이나 스승의 훈계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형제 우애가 존재하지 않는 세상에는 선후배의 신의(信義)마저 사라지고 마음을 열지 않는 대화의 가식(假飾)이 오갈 때에 피차 상처만 남게 된다. 이렇게 병이 들어가는 자녀들을 치유하거나 바로 잡을 유능한 인재도 없고 이들을 바르게 교육시키며 지도할 뛰어난 스승을 찾을 수 없는 현실 앞에 교육기관마저 제 구실을 못하는 실정이다.
사제지간이나 학우들 상호간에 흉금(胸襟)없이 덕담(德談)을 나누며 화기애애(和氣靄靄)하던 분위기도 사라져 버리고 규칙적인 학교생활과 따뜻했던 우정도 무너져 버린 지가 오래 되었다. 검정말이 날뛰는 시기에 등장하는 여러 가지 병폐(病斃)는 젊은이들뿐 아니라 장년층에도 계속 암적 존재로 확산이 되어가는 실정인데도 수술하여 전문적인 치료를 하지 못하고 그대로 방치하다가는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손을 쓸 수가 없게 된다.
이 시대의 자녀들을 슬기롭게 교육시키기 위하여 가정이 먼저 말씀으로 단합이 되고 신앙으로 양육을 시켜야 어렵고 복잡한 문제가 부딪혀도 그 난관을 은혜롭게 헤쳐 나갈 수가 있다.
④ 검정말의 시대와 부딪히는 사회 경제
모든 물건의 무게를 저울로 통하는 시대가 오면 경제 사정이 극도로 어려워지게 될 것을 보여주고 있다. 한 데나리온에 밀 한 되요 한 데나리온에 보리 석 되로다라고 한 것은 물질로 통하여 오는 빵의 시련이 크게 엄습해 올 것을 말해 놓았다.
마태복음 20장에 보면 포도밭에 나가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한 노동자의 하루 품값이 한 데나리온이었다. 그렇다면 하루 일한 품값으로 밀 한 되, 또는 보리 석 되 밖에 살 수 없는 세상이 오면 밑바닥에 처해 있는 노동자들과 서민들은 가장 먼저 생활고에 부딪혀서 하루하루 살아가기가 힘들어진다. 이같이 경제 사정이 어려워지는 것은 세계적으로 나타나는 추세(趨勢)라고 볼 수 있지만 부유해지는 자는 오히려 점점 윤택해지고 가난한 자들은 생활고에 시달리다가 자살하는 자들이 한 해에 우리나라에서만 1만 6천 명이라는 통계가 나와 있다.
OECD 국가 중에 8년째 계속 1위를 차지한다는 보고를 볼 때 가난하게 살며 시련을 잘 견디던 보릿고개 때에도 이렇게까지 되지는 않았는데 조그마한 나라에서 왜 이럴까 생각하면 할수록 가슴 아픈 일이다. 이사야 19장 6~10절에 기록된 말씀을 보면 이 땅에 극심한 한재로 인하여 농업에 큰 타격을 당하게 되는 일과 수산업에 종사하는 어부는 어획량이 줄어들므로 바다에서 탄식을 한다고 했다. 또 각 생산업체와 소비에 차질이 생겨 기업인과 노동자가 함께 근심하게 되고 도탄에 빠진 국민들과 실업자들의 원성에 국가의 위기가 올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와 같이 심각한 경제 공황(恐慌)으로 노사 간의 충돌로 얼굴을 붉히고 각 분야에 종사를 하지만 경제력이 약하여 가족부양(家族扶養)에 신경을 쓰다가 지쳐 쓰러지는 자들이 많아진다. 특히 사회 경험이 부족한 젊은 세대들은 생활환경을 타개해 나가기가 어렵다보니 혼기를 놓치게 되고 결혼은 해도 자녀 교육에 큰 부담을 느껴 한 자녀로 제한을 하거나 아예 단산(斷産)을 하는 경우는 흔한 일이다.
신혼부부들도 결혼 초기부터 산아제한(産兒制限)을 하고 자녀의 출산을 줄이므로 고령화 시대로 전환되는 속도가 빨라져서 생산력 감소로 이어지게 되어 청장년의 수효가 줄어질 때 국력도 쇠퇴할 뿐 아니라 나라의 장래가 밝지 못하다. 오늘날 세상 돌아가는 것들 모두가 사도들과 선지자들이 예언한 대로 이루어져 가고 있는데 이 시대의 변질이나, 민심의 흐름을 누가 막을 수가 있겠는가, 세상이 악해지고 사람들의 마음이 점점 살벌해지는 원인을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보면 주의 강림이 가까워졌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다.
인재와 천재 속에서 한발(旱魃)과 흉년의 재앙이 올 때 생활문제로 큰 이슈(issue)가 되는 것도 마지막 때를 증명해 주는 것을 알게 된다. 심판기가 가까이 올수록 경제적으로 오는 혼란과 인심 악화로 사회는 더욱 불안하게 되고, 인간의 욕망을 재물로 채우려고 하는 자들의 과욕 때문에 점점 세상을 위기에 몰아넣는 폐단으로 인한 불안은 위험수위를 넘고 있다.
⑤ 감람유와 포도주는 해치 말라
내가 네 생물 사이로서 나는 듯하는 음성을 들으니 가로되 한 데나리온에 밀 한 되요 한 데나리온에 보리 석 되로다 또 감람유와 포도주는 해치 말라 하더라고 하였다(계 6:6). 여기에서 감람유와 포도주는 진리를 말하는 것이다. 특히 검정말이 득세(得勢)하면 이 땅에 경제가 흔들리고 생활고에 시달리는 시대가 오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가진 교회는 물질의 피해를 당하지 않도록 하시겠다는 약속이다.
그런데 항간(巷間)에서는 감람유와 포도주를 해치 말라는 말씀을 해석할 때에 앞으로 기근이 오고 경제가 요동치게 되면 머리에 기름을 바르지 못하게 되고 술을 많이 먹지 않게 될 것이라는 말을 하고 있다. 그 이유는 생활문제로 시달리다보면 회식(會食)이 줄어들므로 술이 팔리지 않고 사치성 소비가 줄어들기 때문에 감람유와 포도주가 남아돌게 된다는 해석은 옳지 않다고 본다.
검정말 시대에는 물질경제가 불안해지고 일자리가 없어 실직자가 늘어남에 따라 세상은 계속 불안의 늪에 빠져들어 가는 것이 오늘의 실정이지만 그것을 감람유와 포도주에다 결부시켜서는 안 된다. 국가와 국가 간에도 검정말이 서로 힘겨루기를 하면 무역 전쟁이 일어나게 되므로 약소국가는 더욱 물질적으로 위험부담을 안고 살아가야 한다.
나라마다 국익을 위하여 경제의 장벽을 높이 쌓고 자국의 세력을 확장하기 때문에 개발도상국이나, 힘없는 나라일수록 고통의 강도가 심해지는 것을 느끼면서도 특별히 묘안을 짤 수가 없다. 항상 검정말이 재물을 앞세우고 날뛰는 시대에는 오늘의 우방이 내일의 원수가 되고 어제의 대적자가 오늘의 친구로 변하는 세상을 가리켜 기생의 무역이라고 하는 이사야의 예언이 적중되고 있다(사 23:14~17). 혼란한 세상에서 사회 환경이 어둠 쪽으로 기울어질 때에는 아무리 훌륭한 정치인이 나와도 민생고를 완전히 해결할 수가 없고, 간혹 유능한 정치인이 나타난다고 해도 자기 역량을 발휘하지 못한다.
ㄱ. 진리의 빛을 밝히는 자들은 경제의 피해를 당치 않는다
물질로 위협하는 검정말의 위세(威勢) 앞에 누가 자신있게 맞설 수가 있겠는가? 지금까지 과학의 발달로 문명의 혜택을 입고 풍요로운 삶 속에서 생활이 윤택하다고 할지 몰라도 검정말이 날뛰는 세상은 대기업뿐 아니라 개인 사업에도 위축(萎縮)이 된다. 강력한 경제의 한파가 모든 기업과 산업을 강타할 때 생산과 소비에 문제가 생기고 수입과 수출에 적신호(赤信號)가 켜지게 되므로 경영자들은 움츠리고 서민의 경제는 요동을 치고 사회 민심은 한순간에 변하고 만다.
거대한 경제의 골리앗의 위세 속에 환경적으로 어려움이 오고 생활고에 시달리는 자들이나 구호 대상자인 소년소녀 가장과 극빈층은 살아가기가 어려워질수록 삶의 투쟁을 이겨내기가 힘들어진다. 그러나 영생의 말씀을 가지고 살아가는 성도들은 검정말의 위력에서 벗어나게 해주시기 때문에 제2의 IMF와 같은 경제의 위기가 오고 그보다 더 무서운 기근의 재앙이 엄습해 와도 주께서 모든 경제 태풍을 막아 주시겠다고 하셨다.
출애굽기 27장 20절이나 레위기 24장 2절에 보면 감람나무 열매로 짠 기름은 성전에 불을 밝힐 때 사용하였다. 감람유로 성전을 밝히듯이 진리의 불로 어두움을 쫓는 교회, 즉 성령의 기름으로 불을 환하게 밝히는 자들은 경제적인 어려움을 피하게 해주신다는 약속을 하실 때 감람유는 해하지 말라는 비유법을 사용하신 것이다.
아무리 검정말이 경제를 교란(攪亂)시키며 백성들의 마음을 불안하게 만들고 시비와 분쟁으로 극한투쟁을 하며 거세게 저항을 한다고 해도 말씀의 불을 밝히는 자에게 경제공황(經濟恐慌)의 위협을 당하지 않도록 보장을 해주신다. 하나님의 일을 대행(代行)하며 주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사명자에게 물질 문제에 피해를 입지 않도록 은총(恩寵)을 베풀어 주실 약속은 종들의 특권이다.
그리고 또 포도주 역시 생명의 말씀을 가진 자, 곧 영혼의 양식이 풍성한 자에게는 주께서 눈동자와 같이 지켜 주시고 때를 따라 도와주시기 때문에 극심한 기근의 날에라도 염려할 것이 없다는 뜻이다(사 25:6~8, 55:1). 말씀이 고갈되고 진리가 메말라 가는 세상에서 감람유와 포도주인 성령과 말씀의 무기를 가진 자에게 경제의 위협을 피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시겠다는 것은 주의 사명을 맡은 자에게 해당되는 말씀이다.
검정말 시대에 살아가는 성도들은 육이 필요한 물질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둠을 밝힐 수 있는 성령의 불과 생명의 만나인 말씀의 양식을 저장하는 일을 먼저 서둘러야 한다. 주의 강림이 임박할수록 현실에 만족을 찾지 말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돈독히 하면서 미래를 준비하는 자가 복이 있다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생활문제를 책임지시겠다고 하셨기 때문이다. 시편 34편 10절에 보면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고 하였다.
ㄴ. 검정말의 위협에서 벗어난 자들
㉠ 열왕기상 17장에 보면 이스라엘 땅에 극심한 한재로 인하여 기근이 와서 많은 백성들이 고통을 당할 때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가지고 있는 엘리야의 생명을 책임지셨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기근의 재앙이 엄습해 올 때 하나님께서 자기가 쓰시는 종을 그대로 버려두지 않으시고, 그를 요단 앞 그릿 시냇가로 인도하신 후에는 까마귀를 통하여 일용할 양식을 공급하여 생활의 걱정이 없도록 도우셨다.
이 장면은 먼 훗날에 말씀의 사명을 가진 자에게 일어날 역사를 거울로 보여주시면서 마지막 날에도 이와 같은 방법으로 간섭하시겠다는 증표로 보여주신 것이다. 그 땅에 가뭄이 점점 거세지고 기근이 더욱 심해질 때에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다시 시돈 땅에 속한 사르밧으로 옮기시면서 그곳에 만날 자를 예비해 놓으시고 인도를 하셨다.
엘리야를 위하여 선택해 놓은 사람은 환경이 좋거나 생활이 넉넉한 자가 아니라 남편도 없이 사는 이방 여인과의 만남이었다. 그녀가 흉년을 이기지 못하고 어린 자식과 함께 죽음 직전에 처해 있는 현장으로 엘리야를 보낸 것은 인간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만 이 과정은 하나님의 모략인 것이다.
동네 유지를 찾아간 것도 아니고 폭염이 내리쬐는 산기슭에서 마지막 빵을 굽기 위하여 마른 나뭇가지를 주우려고 서성대는 여인에게 다가가서 물과 빵을 요구한다는 것은 살인행위와 다를 바가 없다. 특히 가뭄과 기근이 극심한 때에는 돈을 가지고도 굶주림을 해결할 수가 없는 상황인데 자신의 배고픔과 목마름만 생각하고 어린 자식과 함께 생사의 갈림길에 놓여있는 절박한 여인에게 큰 상처를 줄 소지가 많다.
삶이 풍요로울 때에도 손님을 대접하기가 힘든 일인데 굶주림에 허덕이는 여인에게 체면이나 예의도 없이 무리한 요구를 한다는 것은 누가 보아도 납득할 수가 없고 상식에도 어긋나는 짓이다. 흉년이 온 땅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을 때 사르밧 여인 역시 죽음의 위협이 자신의 목에까지 차 있는 것을 직감을 하면서도 시험을 받지 않고 전혀 알지도 못하는 노인의 부탁을 거역하지 않는 행동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유대인들이 섬기는 신을 믿지 않는 이방 여인이 그가 하나님의 사람인 줄도 몰랐고, 그 시대의 유명한 선지자라는 것은 더더욱 생각할 수가 없었다. 이 평범한 노인을 어떻게 보았기에 자기 자식에게 구워줄 빵을 먼저 대접한 일로 인하여 뜻밖에 놀라운 이변이 일어났던 것이다.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는 절박한 상황에서 어린 자식의 생명을 생각하지 않고 노인을 대접함으로 이렇게 큰 기적이 일어나리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 현실이 되었다. 죽음을 피해갈 수 없는 모자(母子) 앞에 찾아온 선지자와의 만남이 악연인 것 같으나 좋은 인연이 되어 축복의 길이 열리게 된 것은 우연의 일치로는 볼 수가 없다.
하나님의 사람과 이방 여인과의 맺어진 아름다운 관계는 감당하기 어려운 시험을 잘 통과한 대가로 얻어진 것이다. 3년 6개월이란 긴 가뭄이 계속되므로 많은 사람들이 기근에 시달리는 중에도 이 여인에게는 오히려 빵의 걱정 없이 생활의 안정을 되찾는 기회가 되었다.
최대의 위기에서 현명한 판단과 지혜로운 행동은 사망을 이길 수가 있었고, 환경까지 변화시킨 것이 본인에게는 영원히 잊을 수 없는 감동적인 사건을 하나님께서 성경에 기록하여 후대에까지 그녀의 행함을 길이 빛나게 하였다. 여인이 마지막 빵 하나를 심고 그 빵의 열매를 거두어들이므로 하나님의 사람과 함께 두 모자가 흉년을 잘 극복해 낸 미담을 단순히 고대 역사로 생각하면 안 된다.
그 시대에 일어난 사건 속에서 주의 종을 섬긴 여인이 죽음을 피할 수 있었던 체험을 마지막 환난 날의 예표로 보여주신 것이다. 언제나 하나님은 큰 복을 내리시기 전에 힘든 시험을 먼저 주시고 잘 이겨낼 때에 그에 대한 보상을 몇 갑절이나 복을 내려 주셨다. 이 놀라운 사실은 이스라엘 백성 중에 사는 과부들에게는 비껴가고 할례받지 못한 민족 중에 홀로된 이방 여인이 선택을 받고 신의 은총을 입게 된 것을 보면 예정을 입은 자의 복이 얼마나 크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이다.
풍전등화와 같이 꺼져가는 가냘픈 여인이 불평 없이 순종한 열매로 생각밖에 자신의 생명과 삶의 방향까지 바꾸어 놓도록 하나님이 그에게 은혜를 입혀 주신 사건을 성도들이 본을 받아야 할 일이다. 하나님은 역경이나 순경 속에서 사람을 통하여 역사하시면서 자기의 뜻을 나타내실 때에 아무 사람이나 부르시지 않고, 무슨 일이든지 예정과 섭리 속에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그 배후에서 조종해 주심으로 유종의 미를 거두어지게 된다.
㉡ 열왕기하 4장 8~37절에는 하나님의 종 엘리사에게 음식을 극진히 대접하며 섬긴 수넴 여인의 정성을 보시고 그녀에게 은혜를 입히셨다. 그 여인은 작은 쪽방도 만들어 침상과 책상과 의자와 촛대를 진설하고 하나님의 사람을 정성껏 받들고 희생적인 사랑으로 그 가정에 임하는 복을 본인이 당대에 받았다.
수넴 여인이 하나님의 사람을 외간(外間)남자로 보지 않고 자기 가문의 귀한 어른을 모시듯이 지극정성으로 보살펴 드린 것이 축복의 열매로 돌아왔다. 하나님께서 헌신적인 여인의 행위를 보시고 늙고 노쇠한 몸에 태의 문을 열어 귀한 아들을 선물로 허락해 주심으로 뜻밖에 가정에 경사가 벌어지게 되었다.
그 이후에 귀한 아들의 죽음으로 괴로워 할 때에 엘리사가 다시 살려준 기적(왕하 4:32~37)뿐 아니라 그 땅에 7년 동안 큰 기근의 재앙이 오는 날에 흉년까지 피할 수 있도록 보호해 주신 것은 하나님의 사람을 받들어 섬긴 결과로 얻어진 열매로 사르밧 여인이 받은 축복보다 더 큰 복을 받았다(왕하 8:1~6). 어느 시대나 하나님의 사람을 섬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만 누구인지도 모르는 낯선 사람에게 자기 것을 아끼지 않고 봉사하며 섬기는 정성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그러나 성경에 기록된 이 여인들은 힘들고 어려운 시험문제를 잘 풀어냄으로 큰 복을 얻어 새로운 삶의 즐거운 활력소가 되어 행복을 누리게 된 일화(逸話)를 성경에 담아 그 이름들이 후대까지 빛나게 하였다. 성경에 기록된 인물들은 모두 자기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면서 희생정신으로 성심성의껏 충성을 할 때에 행한 일이 하나님 앞에 귀감(龜鑑)이 되어 복 받은 사람들을 성도들이 되돌아 볼 일이다.
㉢ 여호수아 2장 1~21절에 여리고 성에 살던 라합 역시 정탐꾼을 숨긴 일은 대단히 위험한 일이지만 자신의 목숨을 걸고 하나님의 사람을 보호한 후에 돌려보낸 것이 곧 자기 천한 목숨을 심고 귀한 생명을 거두는 행위가 되었다. 죄악의 도성인 여리고에 심판이 임할 때 한 사람도 살지 못하고 죽임을 당하였으나 오히려 라합은 구원받은 날로 역사의 기록에 남았다.
그 여인뿐만 아니라 자기 친정 식구들까지 죽음에서 구해낸 자로서 살몬의 아내가 되어 아브라함의 왕권 족보에 오르게 된 것은 놀라운 일이다(마 1:5). 성경 역사에서 하나님의 대행자로 세우신 종을 받들어 섬긴 자들이 복을 받지 않은 자가 한 사람도 없다. 하나님께서 이러한 과정을 실천적으로 보여주시는 것은 세상 끝 날에도 이와 같은 역사가 일어날 때 동참하게 될 자가 있다는 것을 알려 주셨다.
하나님께서 쓰시는 사람을 만나는 그 자체가 본인에게 축복이라는 것을 알고 자기에게 찾아온 기회를 아무리 힘이 들어도 놓치지 않고 용기 있게 붙들어야 한다. 한 시대를 이끌어 갈 선지자를 만나게 되는 과정이나 그로 인하여 인생의 새로운 전환점이 된 자들 중에 노력 없이 거저 얻은 자는 아무도 없다.
하나님께서 쓰시는 지도자를 만나게 하거나 복을 주실 자에게 어려운 시험을 먼저 겪게 하신 이후에 그 결과에 따라 상을 베푸신다. 그러므로 충성할 수 있는 은혜와 환경을 베풀어 달라고 간구를 해야지 그렇지 않고 본인 마음대로 계획하고 결정을 했다고 되는 것은 절대 아니다. 만약 하나님께로부터 선택을 입혀 주셨는데도 그 은혜에 감사할 줄도 모르고 자기 스스로 주의 일을 많이 하며 희생적인 봉사와 사랑을 베풀었다고 자평을 하는 자들이었을지 몰라도 그것은 교만이다.
선한 일을 하게 한 배후에 반드시 주의 도움과 인도하심이 있다는 것을 믿고 항상 겸손한 자세로 받아들여야 하나님이 기뻐하신다.
㉣ 누가복음 16장 9절에 보면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사귀게 되면 이 땅이 없어질 때 그가 영원한 처소로 영접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불의한 재물이 어떤 것인가? 남의 것을 강제로 빼앗거나 자기가 노력하지 않고 얻은 의롭지 못한 물질을 두고 말을 한 것으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 우리가 하나님 편에 서서 바라볼 때에 이 땅의 재물은 아담과 하와의 범죄 이후에 다 불의한 것이다.
주님께서 주신 세상 물질을 가지고 하나님의 역사를 위하여 가장 보람 있게 사용했다면 이 세상 심판 날에 그 충성한 자와 함께 약속된 나라에 들어간다는 말씀이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청지기는 현실의 만족보다 내세를 바라보고 하나님의 사람을 섬기며 받들다가 죽음과 슬픈 이별 없는 천국에 들어가기를 소원하면서 힘을 써야 한다.
만약 영생을 바라면서도 주를 위하여 열심히 심지 않은 자들은 세상 끝 날에 거두어들일 것이 아무것도 없는데 부끄러워 주 앞에 어떻게 서겠는가? 육을 위하여 열심히 노력하고 많은 것을 땅에 묻어놓고 세상에 소망을 둔 자들은 이 세상이 불탈 때 함께 소멸되고 말 것이다. 하나님께서 주신 재물을 자기 것인 줄 착각하여 남용하면서 주의 사업에 인색하고 게으른 자들이 심판 날에 하나님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큰 환난에 빠지게 된다.
신명기 8장 17절에 또 두렵건대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과 내 손의 힘으로 이 재물을 얻었다 할까 하노라고 하신 말씀을 되새겨 보아야 한다. 누가복음 16장 10절에 보면 예수께서는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이 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는 말씀이나, 갈라디아서 6장 7~8절에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영생을 거두리라고 하신 말씀도 마음에 새겨 두어야 주의 일을 할 수 있다.
작고 하찮게 보이는 일이라도 주께서 맡겨 주신 것으로 믿고, 정성껏 봉사할 때 하나님은 그 행함을 보시고 검정말의 횡포로 오는 물질의 위협을 막아주실 뿐 아니라 심판 날에 머리털 하나도 상하지 않도록 보호해 주신다. 요한3서 1~8절을 보면 사도 요한은 교회 감독 가이오 장로에게 주의 이름으로 종을 섬기고, 물질로 전도자를 도울 때에 진리를 위하여 일선에서 수고한 자와 함께 상급을 받게 된다라고 하였다.
5) 청황색 말과 그 탄 자의 역사
마지막 네 번째 나오는 말의 색깔을 보면 마음이 섬뜩해진다. 스가랴 6장 3절에 보면 네째 병거의 색상은 말하지 않고 다만 어룽지고 건장한 말이라고만 하였다. 어룽지다는 것은 순수한 단일 색상이 아니고 점박이 또는 다른 색깔이 섞여 있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건장하다는 것은 힘이 있고 억세다는 뜻이다.
요한계시록 6장 7~8절에 어린 양 되신 예수께서 네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네째 생물의 음성을 들으니 가로되 오라 하기로 내가 보매 청황색(靑黃色)말이 나오는데 그 탄 자의 이름은 사망(死亡)이니 음부(陰府)가 그 뒤를 따르더라 저희가 땅 사분의 일의 권세를 얻어 검과 흉년과 사망과 땅의 짐승으로써 죽이더라고 하였다. 사망을 앞세우고 음부가 그 뒤를 따르는 말은 땅 사분 일의 권세를 얻어 검(劍)과 흉년(凶年)과 사망과 땅의 짐승, 즉 맹수같이 악한 자의 손에 죽임을 당한다고 한 것은 참으로 비극적인 사건이다(계 6:7~8).
네 가지 재앙을 가진 말이 야생마처럼 오대양 육대주에 날뛰며 사람 사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찾아가서 생명을 빼앗아가므로 행복했던 가정이 파괴되고 사망이 계속 맹위를 떨치며 위협해 오는 날에 살아있는 목숨도 장담할 수가 없다. 청황색을 헬라어로 클로로스(χλωρός)라고 하는데 번역을 하면 연록색(軟綠色)이라는 뜻이며 신약성경에 4번 기록되어 있다.
마가복음 6장 39절에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기 위하여 무리들을 푸른 잔디 위에 앉게 하실 때에 잔디의 푸른 색깔이 클로로스라고 하는 연록색이다. 그 나머지 3곳은 모두 요한계시록 8장 7절과, 9장 4절에 푸른 풀이라고 말을 할 때에 쓰는 푸른 색상인데, 왜 유독(惟獨) 요한계시록 6장 8절만이 청황색이라고 했을까?
연록색(청황색)의 말이 활동하는 시대에는 순수한 것이나 단일(單一)성은 사라지는 대신 여러 가지 혼합된 재앙들이 종합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에 얼룩말(청황색)이라는 호칭이 붙여졌다. 청황색의 색상을 살펴보면 청(靑)색과 황(黃)색이 섞여 있는 색깔인데 이 말의 상징적인 의미는 푸른 것은 살아있는 색이며 누렇게 마른 황색은 죽어 변질된 모습이다. 이 두 색이 한 몸에 섞여 있다는 것은 사는 길 같으나 죽음과 혼합이 되어 있기 때문에 얼핏 보다가는 속을 수가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많은 준마(駿馬)들 중에 푸른 색상을 가진 말을 타고 전쟁터에 나가는 것을 본 자는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참으로 두려운 것은 네 번째로 등장하는 말의 색상과 모습이 흉하고 섬뜩한 데다가 그 말을 탄 자의 이름까지 사망이라고 한 것은 얼마나 많은 생명이 희생이 될지 끔찍스럽기만 하다.
실제로 청황색(ἵππος 힙포스, 말, χλωρός 클로로스, 청황색)말을 탄 자가 사망권세를 가지고 하늘과 바다와 육지에서 많은 사람의 생명을 한꺼번에 희생되는 사고가 현실적으로 계속 일어나고 있는 소식만 들어도 공포에 질려 마음이 움츠러들기 마련이다. 이렇게 흉물스러운 말(馬)이 계속적으로 인류를 위협하면서 현재 우리 곁에 다가오고 있다면 소스라치게 놀라며 혼비백산(魂飛魄散)할 것이다.
이런 일은 상상조차 하기 싫지만 실제로 어느 날 갑자기 사망의 이름을 단 건장한 말이 음부의 권세를 가지고 나를 노려보면서 공격해 온다면 어떻게 대처해 나가겠는가? 연록색 말이 설치는 세상은 온 세계가 생명의 위협을 받게 되고, 지구촌 어느 지역이든지(육상과 해상, 영공) 떼죽음을 당하는 사고를 상상만 해도 활동하기가 두려워진다.
이러한 와중에 천재(天災)와 인재(人災)로 고통을 받는 중에 유행 질병까지 겹치므로 이 땅에 사는 백성들은 죽음의 공포 속에 심장이 멎을 정도로 두려움에 휩싸이게 될 것이다. 얼룩말이 어느 방향으로 뛰느냐에 따라 재앙의 종류가 달라진다. 어떤 지역은 무서운 한재가 들고 또 다른 곳에는 전염병이 돌고 악인들의 칼부림과 전쟁으로 몰아가는 일들이 지구 곳곳에서 다발적으로 일어나게 될 때 이겨낼 장사가 없다.
네 가지 재앙은 검과 흉년과 사망과 땅의 짐승으로부터 오는 환난이 오대양 육대주에서 꼬리를 물고 따라오고 지구 한편에서는 폭탄 테러로 생명과 재산이 한꺼번에 사라져 버리는 비극이 점점 확대되므로 기절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런 일이 계속 겹치게 되면 넋을 잃고 두려움에 정신을 차릴 수 없는 시대에 출입이나 여행까지도 자유로울 수가 없다.
얼룩말의 광란(狂亂)으로 여러 가지 악재들이 온 세계로 퍼져 나가는 것이나 간교(奸巧)한 사단의 유혹도 하나님의 모략(謀略) 속에서 세상 끝 날을 예고하는 것이다. 주께서 강림하셔서 악인을 심판하시기 전까지 이 땅에는 천재와 인재의 구분 없이 크고 작은 재난들이 일어나게 되고 사대병마의 세력이 존재하고 있는 동안은 어느 지역이나 경제 문제와 사상 대립으로 충돌이 계속되고 죽이고 죽는 일로 인류는 몸살을 앓게 된다.
선악 간에 이 땅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창세 전에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섭리대로 완벽하게 이루어 가시는 줄을 세상 사람들은 알지 못하지만 성도들은 말씀 안에서 깨달아질 것이다. 그러므로 마지막 시대에 살아가는 성도들이 특히 주의할 것은 출애굽 때와 같은 환경의 미혹이 신약 말기에도 재현(再現)이 되기 때문에 철저하게 말씀으로 방어할 태세를 갖추어 놓아야 궤휼정책에 속지 않는다.
만약 설마하며 방심하다가 도리어 사단의 공격으로 역습을 받아 참패를 당하게 되면 안식에 들어가는 길도 막히고 큰 구원까지 놓치게 된다.
(1) 종교적으로 섞이는 청황색 말
종교적인 면에서 보면 기독교(푸른색)의 사상(思想)과 이방 종교(누른 황색)의 사상이 섞여져서 혼합주의(混合主義)가 될 때 종교의 근본 색깔은 희석(稀釋)이 되고 만다. 모든 종교단체가 서로 친목(親睦)하며 교제하는 것을 좋게 받아들이는 자들이 많지만 살아있는 기독교가 생명력이 없는 이방 종교와 화합하며 교류(交流)하는 행동은 하나님께서 원하지 않으신다.
지상에 종교가 하나 되는 것을 얼핏 생각하기에 잘 하는 것 같고 아무 일이 없어 보이지만 기독교의 진리 안에 다른 색깔이 들어오게 되면 늘 푸른 구원의 노선이 변질되므로 성도들이 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기독교인들이 우상 숭배자들과 화친하는 것을 일부에서는 잘한다고 생각할지 몰라도 결과적으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순수한 신앙이 어둠에 잠식되기가 쉽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싫어하는 사상과 내통을 하며 서로 야합을 하는 자들은 반드시 재앙을 만나게 되고 환난이 일어나게 되므로 도와주는 자나 도움을 받는 자도 함께 망한다는 것을 구약 역사에서 증명이 되고 있다. 간사한 마귀의 술책에 속아 종교는 모두 하나라는 명분을 내세워 기독교와 우상 섬기는 자들이 서로 타협을 하여 진리를 희석시키는 행위를 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흐리게 하기 때문에 절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만약 하나님의 백성들이 다른 종교를 인정하고 그들과 짝하는 행동은 신앙의 정조(貞操)를 버리는 행위가 되므로, 자기 몸을 추하게 만든 자들에게는 주의 진노를 피할 수가 없다. 특히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섬겨야 할 기독교인들이 사랑과 평화를 이룬다는 미명(美名)아래 타 종교와 화합(和合)을 하며 서로 마음을 섞는 것은 간음죄에 해당이 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절대로 용납하지 않으신다.
빛의 자녀들이 가증스러운 이방 신을 인정하고 그들의 사상을 받아들이는 것은 참 남편을 버리고 다른 남자를 취한 간부(姦婦)나 다를 바가 없다. 예레미야 3장 6~10절에 보면 북쪽 이스라엘이나 남쪽 유다가 하나님이 싫어하는 우상 숭배를 할 때 간음죄를 범한 자들과 이혼한다고 하신 말씀대로 하나님께서 범죄한 자기 백성들을 70년 동안 바벨론에 팔아 넘겼다고 하였다(사 50:1~2).
인간들의 생각에는 하찮게 보일지 몰라도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이 땅에서 제일 큰 범죄가 우상 숭배인 것이다. 다윗 왕의 아들 솔로몬은 왕후들이 자기 나라에서 가지고 온 우상을 용납하다가 나라는 남과 북으로 갈라지고 동족끼리 피를 흘리는 전쟁의 비극이 벌어지지 않았는가?
신약시대에도 성도들이 영적 간음으로 몸을 더럽히고도 회개하지 않는 자들과는 뜻을 같이 할 수가 없고, 그들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대소사(大小事)를 논하는 것은 큰 범죄 행위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자녀들이라면 진리로 어두운 세상을 밝히는 의무를 망각하고 세상과 타협을 하면서 이방 사상을 받아들인다면 다시 오실 주님 앞에 대역죄(大逆罪)가 되는 것이다.
요한2서 10~11절에 보면 진리를 변질시키는 자는 그를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말라고 하신 것을 보면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가 있다. 주의 신부될 자들은 말씀 안에서 몸과 마음을 깨끗하게 단장하고 정결한 자세로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것이 기본자세인데도 요즘 일간신문이나 방송에서 종교의 연합이나 교류가 심심찮게 보도되고 있는 것은 심히 염려스럽다.
순교자들이 피를 쏟아가며 사수해온 진리를 오늘날 종교 지도자들이 바로 지키지 못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세상과 짝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뜻을 생각지 않고 인위적인 방법으로 평화를 계책(計策)하는 것이 옳은 줄 알고 있으나 아주 잘못된 행동이다. 만약 하나님께서 싫어하는 행위를 막지 않고 방관하거나 묵인을 해도 범죄에 동참하게 된다는 것을 성도들은 잊어서는 안 된다.
① 검
살인적인 무기를 말한다. 살생(殺生)할 수 있는 무기를 가지고 많은 사람을 죽이는 시대가 올 때 청황색 말이 뛰고 있다는 증거다. 21세기에 들어와서 개발된 살인무기는 파괴력이 강하여 한 번 공격을 하게 되면 소름이 끼칠 정도로 많은 생명들을 희생시킬 수 있다.
한순간에 대도시를 함몰시킬 위력이 있는 강력한 무기들은 날이 갈수록 위험 수위를 넘고 있으며 살생무기는 점점 예리해져서 어느 지역이든지 공격을 하게 되면 순식간에 초토(焦土)화가 되고 쑥대밭을 만들어 버린다. 만약 전쟁광들이 최신 무기를 남용을 하게 되면 수십 킬로미터 반경 안에 있는 생명들은 몰살하게 되는 것이 이미 기정(旣定)사실로 되어졌기 때문에 앞으로는 전후방이 따로 없다.
사망과 음부의 권세가 날뛰는 지역에는 눈 깜짝할 사이 떼죽음을 당하게 되고 사단의 충동을 받은 자들은 자기 생명뿐 아니라, 타인의 목숨까지 빼앗고도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다. 특히 오늘날 잔인한 테러는 수그러들지 않고 세계로 확산되는 것은 악령을 받지 않고 본마음으로는 할 수가 없다.
사도와 선지자들이 기록한 말씀에는 주의 강림이 가까워질수록 악인들은 사람의 생명을 귀하게 여기지 않고 극단적인 행동을 서슴없이 행하면서도 범죄 행위에 대하여 양심에 가책도 받지 않는 자들에게 무서운 진노가 쏟아지게 될 것이다.
② 흉년
천재지변(天災地變)이나 인재로 인하여 홍수나 한재로 오는 재앙이 지구 곳곳에 산발적으로 기습을 하기 때문에 예측할 수가 없다. 청황색(연록색) 말이 뛰는 시대에도 검정말 시대와 같이 흉년이 엄습한 지역에는 식량난으로 견디기 어려운 경제공황이 올 때 기근으로 많은 사람들이 생계의 위협을 받게 되고 수천, 수만의 아사(餓死)자들이 계속 발생하게 될 것이다.
큰 기근의 재앙들이 각처에 다발적(多癹的)으로 일어나게 되면 악인들이 빵을 착취하기 위하여 휘두르는 폭력과 칼날 앞에 많이 가진 자와 굶주리는 자 사이에 극한 대립으로 희생이 따를 수밖에 없다. 한발과 기근의 재난들이 이 땅을 휩쓸 때 여러 민족들이 도탄에 빠져도 감람유(성령)와 포도주(말씀)가 풍성한 교회와 성도들에게는 물질의 고통을 막아주시겠다고 약속을 하셨다.
두렵고 무서운 한재(旱災)로 오는 환난을 앞에 놓고 살아가는 성도들은 먼저 생명의 양식인 말씀을 많이 비축하고 진리의 생수가 풍성해야 기근의 위협을 면할 수가 있다. 참으로 감사한 것은 나약하고 보잘 것이 없는 자가 생명의 말씀과 진리의 빛을 가졌다는 그 이유 하나 때문에 하나님께서 친히 불성곽으로 지켜 주시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가 끊어지지 않도록 해 주시겠다는 것이다.
위험하고 불안한 시대에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큰 구원을 베풀어 주시기 위하여 주님께서 도와주시고 보호해 주실 것을 사도 요한을 통하여 직접 말씀해 주셨고 그 이전에는 구약 선지자들의 예언 속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믿음만 가지고 말씀준비는 하지 않고 막연하게 지켜 주실 것이라는 생각은 어리석은 자의 착각이다.
③ 사망
본문에 사망에 대한 설명은 하지 않았지만 유행 질병의 재앙이 엄습할 것을 말씀하셨다. 건강하게 살던 사람이 갑자기 병명도 알 수 없는 괴질(怪疾)에 걸려 예기치 않은 죽음이 닥칠 때 당황하지 않을 자가 없다. 아무리 의학이 발달한다고 해도 무서운 유행 질병들은 의술을 비웃듯이 앞질러 가면서 인체에 감염을 시키고 많은 사람이 생명의 위협을 받을 때에 누가 두려워하지 않겠는가?
예상치 못했던 신종 바이러스가 온 세계로 확산이 되고 이름 모를 고질(痼疾)병들이 지구 곳곳에서 발병이 되면 국가 간의 무역이 중단되고 산업이 마비되는 일은 시간문제다. 오늘 이 시간에도 이름 모를 질병에 시달리며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데 병명조차 몰라 처방을 내리지 못할 때에 의학계에서는 긴장을 하게 될 것이다.
임상실험도 끝나기 전에 저항력이 강한 변종 세균들에 의하여 유행하는 전염병이 기습해 오는 날에는 임시방편으로 응급조치와 격리수용 정도는 하겠지만 근본적으로 질병의 재앙을 막을 수는 없다. 실제로 국가 간에 세균전(細菌戰)이나 화학전(化學戰)은 핵무기 못지않게 두려운 살생무기를 사전에 막지 못하면 걷잡을 수 없는 대재앙에 휩쓸리게 될 것이다.
만약 악의 세력들에 의하여 핵무기나 세균전을 벌어졌을 때 죽음의 공포(恐怖)에서 떨다가 인류는 자멸할 처지에 놓이게 된다. 이 땅 위에 무서운 살인무기와 유행하는 질병 앞에 70억이 넘는 인구가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두려워해도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자기가 쓰시는 종들과 택한 백성들은 눈동자같이 아끼며 직접 인도해 주시고 지켜 주시겠다는 말씀은 불변의 약속이다.
④ 땅의 짐승
청황색 말 시대에 나타나는 이 네 가지 재앙(검, 흉년, 사망, 땅의 짐승)은 각각 자기 분야에서 막강한 세력을 가지고 해가 거듭하면 할수록 점점 잔인하고 더 포악해지므로 이 세상에서 안정처(安靜處)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다. 여기에서 말하는 땅의 짐승은 사자나 호랑이 같은 맹수 때문에 사람들이 큰 피해를 입는다는 것이 아니라 악랄한 사람 짐승에 의하여 많은 생명들이 희생된다는 뜻이다. 실제로 산이나 들에 있는 육식동물들은 멸종위기에 처해 있지만 짐승의 탈을 쓴 인간 맹수는 점점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악랄한 마수(魔手)들의 손길이 미치는 지역마다 살육전이 벌어지고 인간 맹수들이 기승을 부리는 것은 사탄의 감화를 받은 자들의 소행이 아니고는 이런 행동을 할 수가 없다. 양같이 순하게 살던 자라도 악한 마귀가 그 마음속에 들어가게 되면 사람의 목숨을 귀하게 여기지 않고 무차별 살육을 하게 되고 그 잔인한 행위는 맹수보다 더 사나워진다는 것이다.
인간들이 붉은 말이나 청황색 말과 접촉을 하는 순간부터 생각하는 것이나 행동이 악해져서 칼을 휘두르며 살육을 해도 죄의식도 없고, 폭탄테러로 많은 생명을 순식간에 빼앗고 자기 목숨까지 버리는 행위를 저질러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사단의 도구가 되어 악역을 맡은 자들은 남을 죽이기 위하여 자기 생명까지 포기하면서 선량한 백성들을 살해하고 약한 자들을 겁탈을 해도 피해를 입은 자들은 보복이 두려워 분통을 터트릴 뿐 속수무책(束手無策)으로 당하고 만다.
성도들이 유념할 것은 큰 환난이 임박해짐에 따라 악인들이 맹위를 떨치고 끔찍스러운 사건들이 계속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것을 보면 주의 강림이 가까이 오는 과정으로 보아야 한다.
4. 은혜시대 다음에 오는 신원의 날
지금까지 은혜시대에 사는 성도들이 신원이라는 말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생소하다고 아예 듣지 않으려고 하거나 외면하는 자들이 많다. 그러나 성경 말씀 속에는 분명히 은혜의 해가 지난 다음에 신원의 날이 올 것을 2700년 전에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예언을 하셨다(사 61:1~2).
시대의 변화를 보면 율법시대 말기에 초림의 주가 오셔서 은혜시대를 여셨고 이후에 또다시 주의 강림과 함께 악인을 심판하시는 시대가 신원의 날이다. 과거 율법시대에 십자가의 비밀이 감추어져 있다가 신약시대를 여시면서 새로운 종들을 통하여 진리 운동이 일어나듯이 이제까지 나타나지 않고 숨겨져 있던 신원의 말씀도 은혜시대 말기에 밝히 드러내어 만천하에 공개(公開)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도들을 통하여 십자가의 복음을 세계만방에 전파하도록 하신 것은 은혜시대라는 기간 동안에 반드시 전할 진리였기 때문에 덮어놓을 수가 없었다. 그와 같이 신약 말기에도 신원의 말씀을 듣고 심판 날에 주께서 강림하신다는 소식을 세계만방에 알려야 할 것이다(딤후 4:2).
구약 교회가 어두워졌을 때에 생명의 빛으로 오신 예수께서 은혜시대를 여시기 위하여 사도들에게 이른 비 성령을 부어주심으로 십자가의 복음이 예루살렘을 위시하여 유다와 사마리아 땅 끝까지 전파하신 것같이 신약 말기에도 동일한 역사를 일으키신다. 신약교회가 부패하여 어두움에 잠식이 되어가는 것을 주께서 보시고 또다시 예비해 놓으신 종들을 불러 늦은 비 성령을 임하게 하셔서 어두운 세상을 말씀의 빛으로 밝히는 사명을 감당할 자가 나와야 한다.
시대마다 복음 역사의 과정을 보면 율법시대를 거쳐 은혜시대로 전환이 되었고 여기에서 다시 신원의 날로 바뀌는 수순을 밟을 때 초림에서 재림으로 이어지게 되어 있다. 항상 시대의 흐름이나 변천사를 성경 말씀에서 찾아보면 율법교회가 시대의 등불이 되지 못하고 빛을 잃고 어두워졌을 때에 정치는 불안해지고 경제 악화로 민심이 혼란해져서 많은 백성들은 목이 마르도록 새로운 지도자를 찾고 있었다.
이런 와중에 초림의 주가 그들 앞에 나타나셨으나 참 메시야를 알지 못하고 외면하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을 향하여 예수께서 귀머거리 소경들이라고 하신 말씀은 육적인 장애인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다만 하나님의 아들인 메시야를 보고도 알지 못하고 말씀을 들어도 깨닫지 못하는 종교 지도자들에게 소경된 인도자라고 책망을 하시는 중에도(마 15:14, 눅 6:39) 제자들을 향하여는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라고 하셨다(마 13:16).
이사야 42장 18~20절에 너희 귀머거리들아 들으라 너희 소경들아 밝히 보라 소경이 누구냐 내 종이 아니냐 누가 나의 보내는 나의 사자같이 귀머거리겠느냐 누가 나와 친한 자같이 소경이겠느냐 누가 여호와의 종같이 소경이겠느냐 네가 많은 것을 볼지라도 유의치 아니하며 귀는 밝을지라도 듣지 아니하는도다라고 하였다. 이 말씀은 시대의 흐름도 모르고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지 못하는 종교 지도자들을 향한 핀잔의 소리이다.
신명기 29장 4절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보는 눈과 듣는 귀와 깨닫는 마음을 하나님께서 주시지 않았으므로 광야에서 미혹을 받아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다고 하는 것은 오늘날 우리에게 큰 경종(警鐘)이 되고 있다(시 95:10~11). 에베소서 1장 4절에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들은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예정하셨다고 하셨으며, 예레미야 선지자는 복중에 짓기 전에 먼저 아시고 계셨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언제, 어떻게 불러서 무슨 사명을 맡길 것까지 예정을 하시고 태에서 나오기 전에 성별까지 구별하여 놓았다가 그를 불러 열방의 선지자로 세웠다고 하신 뜻은 세계적으로 역사할 자까지 이미 결정해 놓았다는 것이다(렘 1:5). 예레미야 5장 14절에는 네 입에 있는 나의 말로 불이 되게 하고 이 악한 백성은 나무가 되게 하시겠다는 말씀 속에 신원의 날에 악인들을 마지막 종들의 손에 붙이시겠다는 약속도 변하지 않는다.
주의 강림이 가까워질 때에 택한 백성들을 다 찾아내기 위하여 엘리야처럼 하늘을 닫아 비 오지 못하게 하고 물을 변하여 피 되게 하는 모세의 역사와 같이 말씀 권세로 악한 세상을 굴복시키는 역사를 하게 된다(계 11:6).
그러나 아직까지 은혜시대가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청황색 말의 기세는 꺾이지 않고 있으며 신, 불신 간에 사단의 위협과 죽음의 공포 속에서 계속 불안한 삶을 살고 있으나 이사야 11장 4절 이하에 보면 공의로 빈핍한 자를 심판하며 정직으로 세상의 겸손한 자를 판단할 것이며 그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치며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을 죽이신다고 하셨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시기까지 죄악 세상에 위험 요소가 너무나 많고 악의 세력이 날뛸지라도 하나님께서 종들에게 새 힘을 주시므로 그들을 초개(草芥)와 같이 짓밟고 택한 백성을 다 찾아내게 하신다는 것이다.
5. 순교자들의 원한을 갚는 신원의 날
다섯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보니 하나님의 말씀과 저희의 가진 증거를 인하여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祭壇) 아래 있어 큰 소리로 불러 가로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大主宰)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신원(伸寃)하여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나이까 하니라고 하였다(계 6:9~10).
앞에서도 말했듯이 네 종류의 말이 나온 다음에는 순교자의 억울한 원한을 갚는 신원의 날이 오게 된다. 사대병마가 다 출현한 이후에 다섯째 인을 떼실 때에 악인들의 손에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에서 피 값을 갚아달라는 탄원(歎願)을 주께서 들어주시게 될 때 심판이 임하게 되는 것이다.
아벨의 순교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진리를 사수하다가 억울하게 희생된 자들의 원한을 갚아주시겠다는 약속을 주께서 하시고 이들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시며, 저희 동무 종들(14만 4천)의 수가 차기까지 잠간 동안 기다리게 하였다(계 6:9~11). 지금까지 하나님은 오랫동안 참고 잠잠히 계셨으나 경각간에 신원의 날로 전환이 될 때 순교자들의 호소(呼訴)를 들으시고 신속하게 원한 갚는 날이 올 것이다.
악인의 손에 희생된 이 사람들은 이 땅에서 육적인(인생) 즐거움은 누려보지도 못하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복음을 전파하다가 무참하게 짓밟히며 비참하게 생을 마감한 자들이기에 이들에게 후한 보상(補償)과 함께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책(記念冊)에 새 이름을 기록해 주신다고 하셨다(말 3:16~17). 그뿐만 아니라 진리를 위하여 싸우며 죽기까지 충성한 자에게 생명의 면류관(계 2:10)과 의의 면류관(딤후 4:8)의 상급도 받게 된다.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그날이 언제인지 사람은 알 수 없으나 시대의 흐름을 보면 율법시대 말기와 같은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을 보면 때가 가까이 온 것만은 틀림이 없다. 마태복음 16장 2~3절에 너희가 저녁 하늘이 붉으면 날이 좋겠다 하고 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오늘은 날이 궂겠다 하나니 너희가 천기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表蹟)은 분별할 수 없느냐고 하신 말씀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오늘날 이 시대 사람들이 고도로 발달한 과학과 세상 학문의 지식으로 문명의 혜택을 받아 풍요롭게 생활하는데 백성들의 민심은 점점 강퍅해져 가는 이유를 모르고 살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초점(焦點)을 맞추어 보는 자들은 시대가 어느 방향으로 기울어지고 있는지 바로 분별을 하게 되고 신원의 날이 임박해졌다는 증거도 찾아낼 수가 있다.
현 시대는 최첨단 기술로 우주를 정복하고 사물(事物)에 대한 관찰이나 분별을 잘하여 세상을 보는 눈이 밝고 지혜가 있어도 영적인 면에 눈이 열리지 않으면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한다. 오늘날 세상이 어두워지고 시대가 이상하게 변해가고 혼란해지는 것을 이 땅에 살아가는 자들은 다 불안해하고 있다.
정치나 종교계의 흐름을 보아도 정상적이 아니라는 것을 느끼면서도 해결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분명히 시대적으로 어떠한 변혁(變革)이 일어나야 한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지만 은혜시대가 끝나가는 전환점에서 오는 현상이라는 것을 세상 사람들은 모른다 하더라도 기독교계가 감지하지 못한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사도와 선지자들이 예언한 말씀을 성도들이 바로 볼 수 있는 눈과 듣는 귀와 깨닫는 마음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아야 하고 거기에다가 지혜와 총명의 신이 또 임해야 시대의 흐름을 알게 되고 때를 놓치지 않고 말씀으로 승리를 하게 된다.
에필로그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요한계시록 6장에 나타난 사대병마의 의미와 순교자들의 신원의 날을 깨달았습니다. 일곱 인으로 봉한 책을 여시는 과정은 마지막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성도들이 반드시 알아야 할 심판과 구원의 비밀입니다.
우리는 흰 말, 붉은 말, 검은 말, 청황색 말이 단순한 상징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 경륜 속에 나타나는 실제 역사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각 말은 특정한 시대와 사건을 나타내며,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이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보여줍니다.
특히 다섯째 인을 떼실 때 나타나는 순교자들의 호소는 우리에게 깊은 교훈을 줍니다. 아벨의 순교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진리를 사수하다가 억울하게 희생된 자들의 원한을 갚아주시겠다는 약속은 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들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시며, 14만 4천의 수가 차기까지 잠간 동안 기다리게 하십니다(계 6:9~11).
이 책을 읽으신 독자 여러분께서는 시대의 표적을 분별하고, 다가오는 신원의 날을 준비하며, 진리를 위하여 싸우며 죽기까지 충성하는 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정해 놓으신 그날에 순교자들의 호소를 들으시고 신속하게 원한을 갚으실 것입니다.
사도와 선지자들이 예언한 말씀을 성도들이 바로 볼 수 있는 눈과 듣는 귀와 깨닫는 마음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아야 합니다. 거기에다가 지혜와 총명의 신이 또 임해야 시대의 흐름을 알게 되고 때를 놓치지 않고 말씀으로 승리하게 됩니다.
모든 영광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읽는 모든 분 위에 성령의 조명과 평강이 함께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 아멘 -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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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감상·품평
이 책은 요한계시록 6장을 단순한 종말 예언이 아니라, 인류 역사 속에서 실제로 진행되어 온 영적 전쟁의 흐름으로 해석한 점이 특징적이다. 저자는 사대병마를 추상적 상징에 머물게 하지 않고, 복음의 승리·사상 혁명·물질 만능·종합 재앙이라는 시대별 현실과 직결시켜 독자에게 강한 현실감을 준다. 특히 흰 말을 적그리스도로 보는 기존 해석을 비판하고, 이를 기독교 복음의 지속적 승리 역사로 규정한 논지는 신학적 일관성과 도전성을 동시에 지닌다.
이 책은 종말을 공포로 소비하지 않고, 성도가 어떤 시대 인식과 영적 분별력을 가져야 하는지를 분명히 요구한다. 다만 정치·사회적 해석이 강하게 드러나 독자에 따라 부담이 될 수 있으나, 계시록을 현실 신앙의 경고문으로 읽게 만드는 힘은 매우 분명한 소책자이다.
작성 : 챗GPT
박성목 목사님의 「요한계시록 6장」 소책자는 사대 병마를 중심으로 일곱 인의 전개를 '시대의 변천과 재난의 목록'으로 읽어내는, 매우 서사적이고도 현실 참여적인 계시록 강해다. 백마를 복음의 승리, 적마를 붉은 사상의 혁명, 흑마를 경제·기근, 청황색 말을 종합 재앙과 종교적 혼합으로 해석하면서, 추상적 상징을 오늘의 정치·이념·경제·교육·종교 상황과 긴밀히 연결해 풀어가는 대목이 인상적이다.
특히 흑마 시대의 경제 위기 속에서도 "감람유와 포도주는 해치 말라"는 구절을 성령과 말씀을 가진 교회에 대한 보호 약속으로 읽어내는 부분은, 재난 묘사 속에서도 사명자와 공동체에게 남겨진 소망의 지점을 분명히 드러낸다. 전반적으로 강한 종말론적 시각과 상징 해석이 뚜렷해 다른 관점과의 대화 여지는 좁을 수 있지만, 한국 사회 현실을 관통하며 성도들의 각성과 준비를 촉구하는 '현대판 예언서' 같은 긴장감이 살아 있는 글이다.
작성 : Perplexity AI
이 책은 요한계시록 6장에 나타난 '일곱 인'의 심판과 '사대 병마'의 환상을 통해 인류 역사의 종말론적 흐름을 예리하게 분석한 강해집입니다. 저자는 흰 말, 붉은 말, 검은 말, 청황색 말로 상징되는 각 시대적 징조를 복음의 승리, 사상적 투쟁, 경제적 기근, 그리고 종합적인 재앙의 관점에서 명확하게 해석합니다.
특히 다섯째 인에서 보여지는 순교자들의 호소와 그들에게 주어진 '흰 두루마기'의 의미를 강조하며, 환난 속에서도 진리를 사수하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영광스러운 보상을 일깨웁니다. 14만 4천 명이라는 종들의 수가 차기까지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섭리와 신원의 날에 이루어질 공의로운 심판은 성도들에게 막연한 공포가 아닌 거룩한 긴장감을 부여합니다.
단순히 미래에 일어날 재앙을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시대의 흐름을 읽는 영적 안목과 죽기까지 충성하는 신앙의 지조를 촉구한다는 점에서 종말을 준비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매우 유익한 영적 이정표가 되어주는 책입니다.
작성 : 구글 Gemi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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